주의! 연애 요소 없습니다. 외전에 가까운 팬픽이므로 섣부른 기대를 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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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레키 호타로에게
전략
요즘은 남미의 여러 나라들을 돌아다니고 있어. 옛날에 사진으로나 봐왔던 동물들을 볼 수 있어서 황홀한 기분이 든달까, 이 곳의 기후와 어울리는
더운 분위기도 나한테 맞는 기분이 들어.
호타로, 이리스에게서 네 활약을 듣게 됐어. 아, 이리스와는 학교 선후배 사이야. 좀 더 구분을 두자면 졸업생과 재학생의 차이 정도?
아무튼 이번 일이 네게 있어서 큰 정신적 성장이 되었을 거라 생각해. 지금은 아픈 기억이겠지만 훗날 되돌아보면 분명 네게 뼈가 되고 살이 될
중요한 경험이니 기분 나쁘게 여기지 않아줬으면 좋을 것 같아. 물론 판단은 호타로, 너의 자유야. 난 적어도 이번 일에 있어선 너를 영웅이라고
부르고 싶어.
다음 편지는 여유가 되는 대로 또 보낼게.
이만 총총
오레키 토모에
편지를 찢어버릴까 고민하다 관두기로 했다. 편지의 내용은 요컨데 이것 아닌가. "네가 보여준 인형극은 정말 훌륭했어".
누나가 진정 그런 뜻으로 편지를 쓴건 아니겠지만 지금의 나에겐 그런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이리스와 아는 사이였다는 것도
왠지 모르게 배신감이 들기도 하고 말이다.
"..."
다시 떠올려 봤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리스에게 보기 좋게 놀아났다는 사실 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영웅이라'
누나가 보낸 편지를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영웅이라는 표현은 그저 날 치켜세워줘서 기분을 풀게 해주려는 거짓말에 불과하다는걸 쉽게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한것이라곤 고작 대롱대롱 줄에 매달려 관객들이 원하는 몸짓과 대사를 연기해줬을 뿐. 그런 표현, 진정한 영웅이자 같은 고전부 선배인
세키타니 쥰과 비교하자면 민망함을 느낄 정도다. 그나마의 공통점이라면 나나 그나 강제로 휘말렸다는 것 뿐이지만 말이다. ..아니다. 적어도 마지막에는
내가 하겠다는 의지가 있었으므로 그런 공통점에도 도달할 수 없다. 여하튼 누나의 영웅이라는 표현은 입에 발린 거짓말에 불과하다.
뭐,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것도 가식과 위선이다.
"너는 특별해"
침대에 누워 이리스가 내게 해줬던 말을 되뇌여 보았다. 난 이 말 하나에 영화가 제시한 퍼즐을 맞추는 탐정 역을 빙자한 각본가 역할을 자처하게 되었다.
물론 주위의 기대가 있긴 했지만 딱히 신경쓰지도 않았기 때문에 분명히 난 그 기대들을 전부 뿌리칠 수 있었다. 영화의 시사회에 참석했던 날, 사토시와의 대화에서는 확정짓지 않았지만 난 평범한 인생을 원하는 태도였는데 말이다.
"특별인가.."
원래 혼잣말을 잘 하지 않아서이지만 본의 아니게 내 생각이 입으로 새어나왔다. 그런건가. 특별, 난 내 자신에게 특별함이 있을지도 모른단 기대감 때문에 이 일을 자처하게 된 것이다. 만약 내가 사토시 같이 자신의 재능에 대해 한계점을 그은 녀석이었다면 아무리 이리스의 수완이 대단한다 한들 그 역할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잠깐 숨을 고른 뒤 생각을 가다듬어 보았다. 평범한 인생을 원하지만 자신의 재능의 발견에 있어서는 은근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참으로 모순적인 생각이다. 앞머리를 옆으로 쓸어넘기고 오레키 호타로라는 인간의 모순됨을 비웃는 뜻으로 한껏 시원하게 웃어제꼈다.
웃음소리를 내지 않는 편이라 그것 마저 어색하긴 했지만.
.....
"어이 치탄다"
"네. 오레키씨"
어차피 누구에게 묻는다 할지라도 이렇다할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부실에 치탄다와 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난 처음으로 치탄다에게 질문을 넌지시 던져 주었다.
"넌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냐?
"
네..? 저..저는"
사토시여 이바라여. 치탄다가 날 곤란하게 하는 모습은 수없이 봐왔겠지만 내가 치탄다를 당황케 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겠지. 너희 둘은 아무래도 진귀한 구경거리를 놓친 것 같다.
"질문이 애매했어. 넌 나를 특별하다 생각하고 있냐?"
치탄다는 얼굴에 홍조까지 띄우며 대답하기를 망설이다 질문을 바꾸자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럼요"
"이유는?"
"오레키씨는 항상 제 터무니없는 질문에 대답해 주시잖아요"
그래도 자기가 묻는 질문들이 터무니 없다는건 아는 모양이군. 하지만 이 정도는 내가 치탄다의 입장이 되보더라도 할 수 있는 대답이다.
"그렇다면 내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에 있어서 특별하다는거야?"
이토록 처절하게 해답을 갈구하는 내 모습에 나 또한 조금 놀랐다.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사토시씨나 마야카씨도 그렇고 이리스 선배까지 인정했으니까요"
음. 사토시나 이바라는 모르겠지만 과연 이리스까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잘 알겠어. 대답해줘서 고마워"
해답을 찾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상대가 잘못 되었다. 난 대충 대화를 끝내고 읽고 있던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슬슬 사토시가 올 때가 됐는데..
"오레키씨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신가요?"
"어.. 그게.."
..그러고보니 부작용을 생각 못했다. 치탄다는 평소와 같이 눈을 빛내며 얼굴을 들이대었다. 곧이곧대로 대답하면 더 귀찮아질 테고 대충 둘러대면 치탄다가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한마디로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모두 안녕? 어? 호타로 지금 뭐 하는 거야?"
마침 문을 열고 사토시가 들어왔다. 사토시 녀석, 내가 처한 상황을 한눈에 봐도 이해했을 텐데 능청을 떨고 있다.
"보면 모르겠냐"
"미안 미안, 또 치탄다의 호기심 레이더가 발동한 모양인데 나한테도 얘기해 줄 수 있을까?"
사토시의 질문에 치탄다는 친절히 대답해 주었고 치탄다의 설명이 끝나자 사토시는 상당히 놀란 표정으로 날 쳐다 보았다. 이젠 그런 반응은 식상할 지경이라고.
"호타로가 그 정도의 고민을 가지고 있었을 줄은 몰랐는걸"
너마저도 고민으로 치부하는거냐. 물론 사실이긴하지만.
"그래서, 넌 어떻게 생각하고 있냐"
"전에 말했을텐데 호타로. 아직 너에 대한 평가를 보류하고 싶다고 말이야"
역시 사토시도 이런 추상적인 주제의 대답은 힘든 건가.
"하지만 특이하다고는 말해줄 수 있을것 같아"
"뭐?"
"
그렇지 않아? 에너지 절약주의라는 좌우명을 가진 사람은 흔하지 않다고"
거의 농담 수준의 말을 하는군. 이런 무성의에 가까운 대답을 들으니 살짝 기분이 언짢아졌다. 뭐,어쩌겠는가. 애초에 개인적인 문제를 남에게 맡길려고 했던 것 자체가 문제였다. 난 사토시의 말에 대답도 않은채 읽고 있던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먼저 간다"
"잠깐만요. 오레키씨"
치탄다의 말에 살짝 고개를 돌려 그 쪽을 봤다. 갑자기 치탄다가 무척 진지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전에 오레키씨가 말씀하셨어요. 수수께끼가 풀리지 않더라도 언젠간 자신의 안에서 시효가 되어버린다고"
..그게 이거랑 연결이 되나?
"지금의 오레키씨가 그걸 중요하게 여기시고 계신다면 시효가 되기 전에..."
어째선지 치탄다는 말끝을 흐렸다. 사토시 쪽을 힐끔 보니 치탄다가 무슨 말을 한지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모를 수 밖에.
"죄송해요.. 괜히 나선걸까요"
분명 내가 말했었던대로 고민은 얼마 안가 내 안에서 잊혀져 시효가 되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난... 나는..
"가는거 아니였어. 호타로?"
"..이바라는 언제 와?"
난 책상 위에 가방을 두고 다시 자리를 잡았다.
"곧 오실 거에요"
치탄다는 평소 짓는 특유의 미소로 날 쳐다보았다. 처음엔 보는 것만으로도 부담을 느낄 정도였지만 이젠 뭐... 나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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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이리스 후유미 팬픽을 쓸 생각이였으나 바보의 엔드 크레디트를 다 본 후 마음이 바뀌어 쓰게 된 팬픽입니다. 바보의 엔드 크레디트편 직후의 호타로의 심적 피폐함과 그 해결을 나타내 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이 허접한 필력으로는 무리인가 봅니다. 아무튼 좋게 봐주셨으면 감사합니다.
ps. 11.5화에 호타로의 멘붕이 해결된다고 하네요. 원작에 비하면 매우 부족하겠지만 다른 방식의 해결이라 생각하시고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