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만났고 나이도 어리지 않으니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냐며 네가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네가 생각하는 결혼은
우리가 이렇게 계속 사랑하는 한 언젠가는 꼭 해야 하는 것이고
더 이상 서로 떨어짐을 아쉬워할 필요 없이
너의 옆에 항상 널 응원해줄 내가 있어 함께 나아가는 것인 듯 하다
그래서 너는 항상 네 인생 계획에 어떻게 하면 내가 동참할 수 있을 지 찾아보고 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결혼은
지금까지 나라는 사람이 살아오고 또 십 년 넘게 공부하고 쌓아온 모든 걸 버리고
내가 살고 싶었던 삶 살 수 있었던 삶을 다 포기한 채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더니 그저 남편이 가는 대로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그러다 애가 생기면 애를 낳고 애를 키우고
나는 누구였는지 내가 원한건 무엇이었는지 전부 잊은 채로 멍하니 너와 아이의 뒤치닥거리를 하다가
문득 기억난 내가 꿈꾸던 미래와 그걸 빼앗아간 너를 평생 증오하면서
어디에도 풀 수 없는 울분을 품은 채 살아가며
아무도 나란 사람을 알아주지 않고 내 남편 내 아이의 그림자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 삶을 살기엔 지금까지 내가 해온 공부 살아온 삶이 너무 아깝고
나는 그 누구와도 운명 공동체를 형성해서 그에게 휘둘릴 생각이 없으니
너는 네 갈 길 가고 그 길 위에서 좋은 여자를 만나라 했더니 역시나 너는 우린 그저 즐기는 사이냐며 서운해한다



맞아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너와 나는 즐기는 사이야
네가 아니라 그 어떤 남자와도 그 이상이 될 생각이 없어
그리고 난 아직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