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교학사 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무더기 사실오류·우편향 논란이 제기된 후 사실상 한국사 교과서의 '재검정'을 맡았던 수정심의위원회에서 뉴라이트 계열의 학부모단체를 이끌어온 인사가 활동한 사실이 확인됐다. 수정심의위원장은 교학사의 동아시아사 교과서 대표집필자가 맡아 중립적인 심의가 이뤄졌을지에 대한 의구심도 증폭되고 있다.
경향신문이 25일 입수한 수정심의위원회 명단을 보면 교육부가 지난해 11월 꾸린 위원회는 위원장 1명과 심의위원 8명, 연구위원 6명 등 15명으로 구성됐다. 연구위원은 출판사의 자체 수정 보완 내용에 대한 기초조사를 하고, 심의위원은 이를 재검토해 수정명령 사항을 결정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수정심의위원장은 조선시대를 전공한 손승철 강원대 교수가 맡았다. 손 교수는 교학사의 동아시아사 교과서 대표집필자이기도 하다. 지난해 검정 결과 발표 후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싼 역사왜곡 논란이 커지자 교학사의 세계사·역사부도 필자들은 회사가 출판을 포기할 것을 요구하는 입장을 전했으나, 손 교수가 대표필자인 교학사 동아시아사 저자들은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진형 자율교육학부모연대 대표가 연구위원으로 참여한 것도 논란이 일고 있다. 조 대표는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저자 중 한 명인 이명희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와 뉴라이트 계열의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에서 2000년대 중·후반 임원진으로 함께 활동했으며, 진보교육감이나 전교조와도 소송·갈등을 빚어왔다.
연구위원 중 이훈상 동아대 교수는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이 주축인 교과서포럼이 쓴 '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에 추천사를 써 뒷말을 낳고 있다. 역시 연구위원으로 참여한 이원환 경기 예당고 교감은 교학사 사태의 발단이 된 '2011 교육과정' 개정 당시, 국사편찬위원회에 파견돼 실무책임자로 활동했다.
위원회는 교수 6명, 교사 4명, 학부모단체 대표 1명 등으로 구성돼 전문성이 약하다는 점도 논란이다. 특히 가장 수정 보완 사항이 많고 논란이 집중된 근·현대사의 전문가 4명 중 3명은 국가 연구기관 소속으로 발언이 자유롭지 못할 수 있고, 현대사 전공인 나머지 1명도 서양현대사 전공자로 나치즘과 파시즘에 대한 논문을 주로 썼으며 현재는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통상 검정심사가 끝나면 심사 결과 발표와 동시에 심사위원 명단이 공표되지만,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최종 승인 결정을 내리면서 "불필요한 논란을 막기 위해 위원회 명단은 학교에서 채택을 마치는 즉시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교육부는 이후에도 명단을 밝히지 않았고, 지난 22일 열린 재판에서도 재판부에 "위원회 명단을 제출하는 대신 외부에 유출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