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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먹물처럼 좌파적 감성적 글쓰기를 해봐야 쓰겠구만.
게시물ID : open_159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박정희만세!
추천 : 0
조회수 : 23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1/12/25 05:35:26
나는 가끔 이런 종류의 난잡한 자기위안의 글을 수줍음 없이 늙고 노쇠한 성기처럼 드러내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테어도르 아도르노를 추억한다. 문화가 풍요로운 시간속에서 이런 괴리는 흔하게 찾아볼수 있다. 부를 갖추고 세태 예슐가,문인, 학자는흔하게 스스로 물질에서 자유로운 사람을 추구하고 생산적인일을 금권숭배로 혐오한다. 때문에 그안에서 부유한 자들은 동료라는 자들에게 너무나 자주 동족험오의 증상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러나 물질적 실천은 그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한 전제 조건일 뿐 아니라 이 세계의 본원이다. 그 토대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를 때 인간은 흔히 사실과 무관한 공허한 그림자를 쫓아간다. 그 그림자는 흔히 대단한 이념으로 포장되는데 이 지상에서 이루어질수 없는 묵시록적 메시지를 던지기 때문이다. 이런 그림자 안에서 인간의 존재는 매우 반동적이고 극단적으로 되어 당장의 경험주의에 빠져든다. 이 세계는 오로지 사실만이 존재하고 모든 해석은 의심스러운 이단의 가르침이라 믿는 열형당원들이 생겨난다.

그들은 존재하지 않는 자신의 신에 대한회의와 불안을 보상받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세계는 막스 베버의 말처럼 사회의 기능을 가지고 다양한 신분의 복잡한 구성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계층은 결코 단수로 표현될 수 없는 각각의 범주를 상대적으로 비교하여 우위를 점할수 없이 단절되어 모르는 모래의 강이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아베 코보가 만들어낸 모래의 여자를 찾아 헤매는 환상 속을 헤엄치며 허무의 바다로 떨어져간다.

"아우슈비츠 이후로 서정시를 쓰는것은 야만이다"라는 말을 읽을때마다 절대 0도의 차디찬 나선형의 비수처럼 내 심장을 파고들지만 이미 감정이 메말라버린 나의 심장은 읽는 순간일 뿐 그 찰나가 지나가면 다시 아무런 자각의 흔적도 남기지 안는다. 무엇일까 - 대지와 바다는 모두 생명을 품고 있으나 그경계면의 모래사장은 어떤생명도 품지못한채로 유리알의 모래만이 지평선까지 남아있을뿐이다. 오늘 우리가 불모의 모래사장에 애틋한 연민을 가지는것은 단지 그아름다움만이아니라 지적 풍요의 시대 속에서 그 어느곳에도 속하지 못한 채 그 틈바구니를 헤매는 자아의 향수가 보이짖 않는 우리들의 모습을 거울로 비치고 있기 때문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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