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란 관련글들을 보고 생각나서 쓰는 글입니다만,
그 이전에 개인적으로 중국과 한국과의 관계는 순망치한의 관계라고 보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때 동아시아의 터줏대감은 중국이었지만, 해당지역에는 이의 지배력에 순응하지 않고, 도전하려던 세력들이 역사적으로 종종 존재해 왔다는건 주지의 사실인데,
여기서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중국이라는 지역이 통일왕조 회귀본능을 갖추게 된 중세(중국의 경우 송) 이후로 중국에 대항하는 이들세력 모두가 중국을 공략하기전에 반드시 거쳐가는 한 지역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반도였다는 것.
요약하자면,
거란 : 송을 쳐서 전연의 맹을 맺기전에 수십만(+허장성세)의 병력을 동원하여 고려를 압박하여 송과 단교시킴. 전연의 맹 이후로 고려가 송과 수교를 계속 이어나가자 빡쳐서 고려를 두차례 침공하여 조공국으로 복속시켰다.
여진(금) : 역시 송나라를 치기전에 고려에 외교적 압력을 행사하여 속국으로 복속시켰다. 그 연후 북송을 침공하여 화북을 점령함.
몽골(원) : 남송을 침략하기 위해 남송을 지원할 우려가 있는 고려를 소수의 병력으로 침공하여 휘저음. 다만 고려의 침략의 경우 본의아니게 남송에 대한 지원을 저지한다는 목적 이상으로 종속국화시키기까지 하는 성과를 거두었고, 이에 고무된 몽골은 한술더떠 역시나 남송에 군사지원을 할 가능성이 있는 일본에까지 무력시위를 벌임.(몽골의 1차 일본침입)
일본(토요토미 가) : 명을 공략하기 전에, 조선을 복속시킨다는 계획을 가지고 실행에 옮김.
만주족(청) : 후금의 건국자인 누르하치는 '옛 금나라가 중국의 절반밖에 차지못한 이유는 고려를 제대로 밟아놓지 않았음에 있다'라고 주장하며 실제로 명을 공략하기 이전에 조선을 두차례 공격하여 복속시키고 자원까지 삥뜯어 중국 공략을 지속할수 있게 됨.
비단 중국에 대항하는 정규세력뿐만이 아니라, 중국의 정국이 혼란해짐에 따라 발생한 홍건적도 고려의 속을 꽤나 썩였는데,
이처럼 역사적으로 볼때, 중국-한국의 관계는 '이웃의 불행이 자국의 행복'이라는 정치외교학적인 보편적인 진리보다는 희한하게도 이웃의 불행이 자국의 불행으로 직결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할 수 있다고 봄.
즉, 임진란의 '조선과 일본의 전쟁'이라는 관점에서의 해석은 해당 역사적 사건을 큰틀에서 보지 못한 관점이라고 할수 있는데, 이는 통일신라 성립부터 1895년 청국이 일본제국에 패배하여 한국과 중국의 외교적 고리가 단절된 시점까지 한국과 중국은 지역외교무대에서 사실상 '별개의 입장을 가진 세력'으로 존재한 적이 없기 때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