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집고양이 같은 외모에, 남들 보다는 머리가 더 좋은 편이고, 고양이 사이에서는 힘이 매우 약한 편인 이 회색 고양이는 이렇게 생각했다. “난 다른 도둑고양이들과는 다를 거야” 회색 고양이는 자신을 도둑고양이라고 부르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다른 고양이들은 사람들이 통에 넣은 음식들을 몰래 훔쳐 먹으니까(고양이들은 그게 버린 음식이라곤 생각을 못했다) 도둑고양이라고 불러도 되는데, 난 사람들한테 음식을 달라고 부탁해서 먹으니 도둑고양이가 아니다.” 라고 다른 고양이들한테 말하곤 했다. 그렇다면 뭐라고 불러야 되냐? 라고 다른 고양이들이 물어보면 매우 당황하면서 “훔쳐 먹진 않으니까 도둑은 아니고, 사람들이랑 같이 사는 것도 아니니 집고양이라고 할 수도 없고 나도 뭐라 할지 모르겠어.” 라고 말했다. 다른 고양이들은 그 고양이를 보고 사람들한테 밥이나 얻어먹는 거지고양이라고 놀리곤 했다. 그렇게 놀려도 힘이 약해 싸울 수도 없어서 회색 고양이는 속으로만 난 거지가 아니다 라고 말했다.
오늘도 평소처럼 회색 고양이는 밥을 얻으러 그 집에 갔다. 책이 많이 쌓여있는 반지하 건물에 흰 고양이 한 마리와 남자가 있는데 회색 고양이가 창문 근처에 오면 웃으면서 그릇에 먹을 것을 담아서 주곤 했다. 심지어 집 주인 남자는 다른 사람들처럼 지나치게 만지려고 한다던가, 집으로 데려가려 한다던가, 갑자기 때리거나 하지 않는 좋은 사람이었다. 단지 회색 고양이한테 사람처럼 말을 계속한다는 특이한 버릇이 있지만 회색 고양이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가끔은 정말 재밌는 이야기를 하는 적도 있어서 흥미 있게 들을 때도 있었다. 이 날도 그런 재미있는 말을 했던 날이었다. 그릇 가득한 밥을 다 먹고 난 뒤 흰 고양이랑 야옹 거리면서 회색 고양이가 창문을 사이로 두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갑자기 남자가 말을 꺼냈다. “고양이 나무라는 게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이랑 고양이들은 모르는데, 도저히 엄마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겠는 고양이들은 사실 그 나무에서 열려서 땅에 떨어진단다. 고양이들은 커가면서 그런 나무가 있었다는 걸 까먹게 되는데, 고양이들이 높은 곳을 좋아하는 이유가 그 나무를 조금은 기억하고 있다는 증거야.” 이 말을 들은 흰 고양이가 놀라서 회색 고양이에게 말했다. “정말인가?! 나도 엄마 아빠가 누군지 모르겠는데.” “모르겠어. 그럼 나도 사실은 나무에서 자란 거구나!” 두 고양이는 남자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정말 궁금해졌다. “그럼 난 이제 가볼게.” 몇 분 후 회색 고양이가 말했다. 남자에게 야옹 하면서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알았어. 내일 또 와.” 창틀에서 흰 고양이가 내려오며 말했다. 회색 고양이는 흰 고양이가 창틀에서 내려 온 후에도 높은 캣 타워에 올라가는 걸 보고, 정말로 나무에서 나온 고양이는 높은 곳을 좋아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시간에 회색 고양이는 오랜만에 고양이들이 모이는 공터에 갔다. 약한 편인 회색 고양이는 공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가봤자 힘자랑 하려는 다른 덩치 큰 고양이들에게 치일뿐이고, 회색 고양이와 마음이 맞는 고양이는 흰 고양이 한 마리뿐이었기 때문이다. 공터 구석에 쭈그리고 있다가 어떤 얼룩 고양이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오늘 들은 건데, 고양이가 열리는 나무가 있데. 엄마 아빠가 없는 고양이는 사실 거기서 나오는 거라 하더라고.” 이 말을 들은 얼룩 고양이는 매우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세상에 어떻게 고양이가 나무에서 열리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딴 애들한테 물어볼까?” 얼룩 고양이에게 이 말을 들은 고양이들은 회색 고양이를 비웃었다. “인간이랑 놀다보니 미친 거 아냐?” 비웃으며 쳐다보는 많은 고양이들의 시선에 회색 고양이는 “아냐! 고양이 나무는 있을 거야!” 라고 외치며 공터에서 달아나듯 빠져나왔다. 등 뒤에선 다른 고양이들이 크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 날 아침, 그 집에 가자 남자가 회색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면서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드디어 내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할 수 있게 됐어! 잘 되면 이런 집 말고 더 넓은 곳으로 갈 수 있게 될 거야!” 회색 고양이는 남자가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하는 지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남자가 기뻐보였기에 야옹 하고 축하해줬다. 흰 고양이가 다가오자 물었다. “뭔 일 있어?” “아니 잘 모르겠어. 방금 전에 어떤 사람이 와서 계약이라던가, 원고라던가 하는 이해 안 되는 말을 하던데 그 다음부터 계속 저러더라고.” “음…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축하해. 그리고 고양이 나무에 대해서 다른 애들한테 물어봤는데 아무도 모르는 거 같더라. 진짜인가?” “그런 건 어린 애들한테 물어봐야지. 커가면서 까먹게 된다고 했잖아.” “그렇구나! 그럼 애들한테 물어볼게.” 회색 고양이는 좋은 걸 알았다는 표정으로 기뻐하면서 돌아갔다. 남자에게도 인사를 하려했지만 남자는 책상에 앉아서 펜을 잡고 있어서 고양이를 보지 않았다. 회색 고양이는 어린 고양이들을 찾아서 나무에 대해서 물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동네에는 엄마 아빠가 없는 어린 고양이들이 별로 없었고, 어느 정도 자란 어린 고양이들은 나무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흰 고양이에게 말하자 “완전 어린 애들만 기억하는 건가…….” 라고 말했다. 남자는 최근에는 먹이를 주면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상당히 지쳐 보이는 표정이었다. 흰 고양이의 말로는 잠도 잘 안자고 있다고 했다.
나무에 대해서 알아본지 2주 쯤 됐을 까, 남자의 집에 갔는데 야옹 하고 불러도 남자가 오지 않았다. 남자는 방에서 어떤 사람과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취소라고요? 제가 이 걸 쓰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요!” 남자가 소리 질렀다. 매우 화가나 보였다. “미안하네. 그래도 자네에게 맡기기에는 회사에 위험이 커서 그랬어. 우리도 정말 어쩔 수 없고 미안하다는 것만 알아줘” 다른 사람은 이렇게 말을 하곤 문을 열고나갔다. 회색 고양이는 오늘 하루는 밥을 안 얻어먹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돌아갔다. 길을 가던 중 어디서 야옹 하고 우는 소리가 들렸다. 회색 고양이가 소리를 따라 뛰어가자 동네 뒷산 아래에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울고 있었다. 회색 고양이는 드디어 찾았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새끼 고양이에게 물었다. “혹시 넌 나무에서 태어났니?!” 그러나 새끼 고양이는 야옹하고 울 뿐이었다.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렸다. 어떤 사람이 새끼 고양이를 보더니 불쌍하다고 하면서 데려갔다. 회색 고양이는 근처에 나무가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뛰어다녔지만 나무를 찾지 못했다. 이렇게 나무에 대해서 찾을 방법은 또 멀어진 것 같았다.
다음날 남자의 집에 가니 안에는 많은 박스가 있었고, 흰 고양이는 바구니 같은 통 안에 들어가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박스를 어딘가로 옮기고 있었다. 창문가의 회색 고양이를 본 남자가 먹이를 주면서 말했다. “이게 마지막으로 주는 거야. 난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시골 촌구석이긴 해도 거긴 공기도 좋고 나무도 많으니까 여기 도시보단 낫겠지.” 그렇게 말하고선 다른 사람들과 박스를 옮기로 갔다. 회색 고양이는 처음으로 창문 틈새로 집 안에 들어가서 뚜껑이 완전히 닫히지 않은 흰 고양이가 있는 통에 몰래 숨었다. “따라 오려고?” 흰 고양이가 놀라서 물었다. 다른 곳으로 간다는 상황에 불안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거기는 나무가 많다고 하잖아. 여기 보다 더 고양이 나무를 찾기 쉬울 거 같아.” 회색 고양이는 들떠 있었다. 나무를 찾을 수 있다는 이유 하나에 즐거워하고 있었다. 다른 고양이들은 잊어버린 기억을 자신은 찾을 수 있다. 이 생각만으로도 기뻤다. 누군가가 통을 차에 실은 뒤 잠시 후 덜컹 거리는 느낌과 함께 차가 출발했다. 날씨는 맑고, 도시를 벗어나자 차 창문 틈으로 나무들이 보였다. 회색 고양이는 새로운 기대감에 설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