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했던 5호 16국 시대에 가장 활발하고 독보적인 모습을 보인 민족은 모용선비(慕容鮮卑)였습니다. 이 모용선비의 시조가 되는 인물은 모용발(慕容跋)이었습니다. 모용발은 3세기 중엽에 부락민들을 거느리고 요서 지방에 정착하였습니다. 그는 조위(曺魏)와 협력하여 공손씨 토벌에도 종사하였습니다.
모용발은 이 공손씨 토벌의 군공으로 극성(棘城) 북방에 정착하였습니다. 이 극성은 그의 현손에 해당하는 모용황(慕容皝)이 도읍을 용성(龍城)으로 옮기기 전까지 모용선비의 근거지가 됩니다. 모용발 사후 모용선비의 부족장은 모용목연(慕容木延)과 모용섭귀(慕容涉歸)로 계승되었습니다. 모용섭귀 무렵에는 다른 선비 일파인 우문부(宇文部)와의 다툼이 벌어집니다. 이 다툼 과정에서 모용선비의 세력 중심은 요서 지역에서 요동 지역으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모용섭귀의 사후 모용부에서는 모용섭귀의 두 아들들인 모용외(慕容廆)와 모용내(慕容耐)와의 권력 다툼이 벌어집니다. 모용내는 모용외를 살해하려고 했고 모용외는 모용내의 위협을 피해 도망갔습니다. 한동안 모용내는 모용부의 부족장으로써 활약을 합니다만 그는 부락민에게 살해를 당하고 285년 모용외는 부족장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부족장의 자리에 오른 그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같은 선비 일파인 우문부(宇文部)와 단부(段部) 그리고 고구려(高句麗) 등 주변국과의 치열한 경쟁 그리고 팔왕의 난과 영가의 난이라는 거대한 내란을 이후로 약해진 중국이었습니다.
※ 출처 : 오호십육국(삼기양장), 중국의 역사 「위진남북조」, 위키백과, 네이버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