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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보는 훈족과 아틸라 이야기 - 마지막
게시물ID : history_157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Orca
추천 : 13
조회수 : 116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4/05/16 15:04:26

헝가리 평원에서 카스피해에 이르는 거대한훈(Hun) 제국의 지도자인 아틸라(Attila)가 453년 헝가리에 머물면서 일디코(Ildico)라는 이름의 젊고 아름다운 신부를 받아들이고 첫날밤을 보낸 다음날 급사한 이후 아틸라의 거대한 훈 제국은 너무나도 빨리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아틸라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자는 아리칸이라는 왕비의 소생이자 아틸라의 맏아들인 엘락(Ellac)이었습니다. 엘락은 아틸라의 수석행정관인 오네게시우스의 지지를 받아 왕위에 올랐습니다. 오네게시우스는 대단히 뛰어난 행정관으로써 아틸라의 절대적 통치체제 유지에 지대한 공을 세운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엘락의 두 동생인 덴기지흐(Dengizich) 또는 딩기즈흐(Dingizigikh)와 에르낙(Ernac)은 다른 생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아버지인 아틸라가 한 때 큰아버지인 블레다보다 위계가 낮은 군주로서 활동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권력을 나누기를 바랬습니다. 그들의 바램은 어느 정도 충족되었습니다. 영토는 나누지는 않았지만 예속 민족들의 일부를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부여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형제들의 권력 분할은 아틸라 사후 불안정해진 훈 제국의 체제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틸라가 사망한 바로 그 해에 오스트로고트와 게피대는 곧바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 중 게피대의 왕은 지난날 아틸라가 가장 신임한 동맹자였던 아르다리크였습니다. 아르다리크가 이끄는 게피대의 전사들은 아틸라 군의 중요한 축을 담당할 정도로 강한 전투력을 자랑했습니다. 엘락(Ellac)은 판노니아의 네다오강에서 오스트로고트와 게피대 군대와 큰 전투를 벌였지만 패배하고 엘락은 전투 중 사망했습니다.



이후 게피대가 전성기를 이루는 듯 싶었지만 게피대는 469년 동고트와 벌인 대전투에서 패배해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로 쫓겨나 동고트 왕국의 최전방에서 부르군트 족의 공격을 저지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결국 훈 제국이 무너지고 게피대가 동고트와의 전투를 벌이기 전까지 큰 이익을 본 것은 동로마 제국이었습니다. 동로마 제국은 훈족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고 동고트와 동맹을 맺고 그들에게 판노니아 북부를 포함한 영토를 떼어주었습니다.



한편 훈족은 도나우강 하류로 밀려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지역을 영구정착지로 삼으려했고 466년 레오 1세에게 사자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레오 1세는 훈 족의 청원을 무시했습니다. 그러자 덴기지흐는 467년부터 469년까지 2년간 군대를 이끌고 동로마 제국을 공격했습니다. 하지만 덴기지흐는 아나게스테스가 이끄는 동로마 군대에게 패배하고 그곳에서 죽음을 당해 목이 잘려 468년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원형경기장에 그 목이 전시되었습니다.



덴기지흐가 이렇게 죽음을 맞이하고 덴기지흐의 동생인 에르낙은 좀더 조심스럽게 대처했습니다. 그는 레오에게 사자를 보내 동로마 제국의 속방이 되기를 간청했습니다. 레오는 그 요청을 받아들여 에르낙이 이끄는 훈족을 도나우 강과 흑해 사이의 도브루자 지역에 정착하게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유럽에 남아있던 훈족들이서서히 그 힘을 일어가고 있는 동안 러시아 초원으로 후퇴하기 시작한 훈족들은 두 갈래로 나뉘어서 흑해의 북부에 남게 되었습니다. 쿠트리구르 훈(Kutrigur Hun)은아조프 해의 서북부에서거주했으며 우투르구르 훈(Utrgur Hun -Utigur Hun)은돈 강의 출구에 거주했습니다.동로마 제국은 이 훈족의 두 세력을 이간질시켜이 두 훈족의세력을 적대적 관계로 만드는데 성공했습니다.



545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우트르구르 훈의 지배자 산딜흐(Sandikh)를 선동했고 산딜흐는 경쟁자인 쿠트리구르를제거했지만 그 뒤 자베르간(Zabergan - Zamergan)이 등장해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도움으로 우투르구르 훈에게보복을 가했습니다. 558~559년 겨울에 자베르간은 대군을 이끌고 얼어붙은 다뉴브 강을 건너 콘스탄티노플에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동로마제국을 통틀어 최고의 명장이라고 불리는 벨리사리우스(Belisarius)에 의해 패배하였고 다시 돈강가의 초원으로 돌아갔으며 이 후에도 산딜흐와 적대적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이들의 처절하기까지한 골육상쟁은 아바르 민족이 등장할 때까지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일부 훈족들은 동로마 제국의 용병으로 활약했습니다. 이들 훈족 용병을 이끈 장군들 중에는 동로마 제국의 위대한 명장인 벨리사리우스(Belisarius)도 있었습니다. 벨리사리우스 휘하에서도 그들은 그들의 유목민적인 생활습관을 유지했으며, 벨리사리우스에게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벨리사리우스 휘하에서 뿐만 아니라 훈족 용병들은 유럽 곳곳을 휘저으며 자신들의 흔적을 남겼습니다.



마지막으로 헝가리에는 아틸라의 아들들의 운명에 관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아틸라가 사망한 뒤 그의 아들들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는데 그들 중 하나가 적들의 공격을 받는 중에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가 아틸라가 총애했던 아들인 에르나크가 한 무리의 훈족 기마전사들을 이끌고 달려가는 광경을 보았다고 합니다.



또 그 전설에 가지를 둔 수많은 이설들 중 몇몇에서는, 아틸라가 총애한 아들은 호노리아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크사바였다는 애기가 나옵니다. 아틸라는 150살까지 살았고, 100년 동안이나 훈 족을 다스렸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참고서적: 패트릭 하워스 지음 훈족의 왕 아틸라, 르네 그루쎄 지음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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