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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투더코아의 詐欺 列傳]★<특별편성>한초쟁패(漢楚爭覇)스페셜★
게시물ID : history_1579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투더코아
추천 : 5
조회수 : 99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5/16 12:19:51

투더코아의 詐欺 列傳.

http://www.podbbang.com/ch/6526   <ㅡㅡ 팟캐스트를 들으시려면 이곳을 클릭하세요~ ^^


★[투더코아의 詐欺 列傳]<특별편성>한초쟁패(漢楚爭覇) 스페셜★

 

일찌기 사마천이 아버지의 유언을 지켜 사기라는 역사서를 쓸때

그 순서는 본기.표.서.세가.열전의 순이었다.

 

본기는 왕자(王者)가 사업을 일으키고 그 흥망성쇠함을 관찰하여 논한것이니

위로 하.은.주 3대를 연구하고 진(秦)한(漢) 대를 그대로 기술하여 12권의 본기를 저술했다.

 

시대의 차이를 명확히 하기 위하여 10권의 표(表)를 저술하였다.

 

음률과 역법. 그리고 군사와 산천. 인간과 하늘과 귀신의 관계와 변화를 살펴 8권의 서(書)를 저술했다.

 

하늘에 28수의 별자리가 북극성의 주위를 운행하고

30개의 수레바퀴살이 바퀴통을 중심으로 끝없이 운행되듯이

군주를 보필해 팔다리의 구실을 하여 성심껏 도를 행하고, 주상을 받드는 가계를 위하여

30권의 세가(世家)를 저술했다.

 

정의를 도우며 탁월한 능력으로 시기를 잃음이 없이 천하에 공명을 세운 이들을 위하여

70권의 열전(列傳)을 지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필자는 사마천의 사기 중에서 열전의 부분을 떼어 글을쓰고 팟캐스트로 방송을 하고 있는데

이 작업이 처음 시작하여 벌써 열전의 절반쯤을 달리게 되었다.

주나라가 개창하던 주무왕 시대의 백이.숙제 이야기로 시작하여 춘추오패와 전국칠웅을 거쳐

진시황이 진제국을 창건하던때를 지나 드디어 항우와 유방이 천하를 다투는

건곤일척의 쟁패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독자 및 청취자들의 지적과 요청도 있었지만

이미 사기열전의 절반가량을 진행하고 있는 마당에 진행에 있어 크게 미진한점이 있었다.

 

사마천의 저술과 역사의 순서에 따라 본기와 세가를 차례대로 진행했어야 하지만

처음시작할때부터 먼저 열전70편 만을 떼어 우선 독자 여러분께 소개하려 했던 생각이

이제 결국 약간의 문제에 봉착한것이다.

 

이 시기의 주요인물은 결국 항우와 유방등의 제왕들과,또 한나라를 창건하는데 지대한 공로가 있던

한나라의 여러 개국 공신들일것인데

그들이 열전에 등장하지 않고 본기나 세가에 등장하는 마당에, 열전에서 소개가 되지 않고 있어

그 당시의 사건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기에 다소 무리가 따르게 되었다.

 

그러나 열전70편 이라는 제하에 글을 연재하고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마당에

그 인물들을 소개하기 위하여 중간중간에 열전이 아닌 본기나 세가를 한편씩 끼워넣는것도

좀 무리가 있는듯 하고,

그렇다 해도 이 인물들을 전혀 설명하지 않고 이 시기를 설명하는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기때문에

도저히 그냥 넘어가기가 어려워 이번 한초쟁패 특집을 마련하였다.

 

이 특집은 독자여러분이 열전의 진행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드리기 위해 마련한것이며

당시의 주요 인물과 사건을 주로하여 간략하게나마 소개하고

시대의 개괄에 대하여 그 중의 아주 작은 일부분이라도 들여다보고 넘어갈수 있도록 준비한것이니

독자여러분께서 그저 재미있게 읽고 웃어 넘겨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ㅡ이번 내용은 고조본기를 위주로 하여 작성하였으며

그 외에 항우본기와 함께

유후 장량. 상국 소하. 상국 조참. 승상 진평. 강후 주발 등의 열전을 망라하여 기술해 나가게 됨을

미리 알려둔다.ㅡ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用人杰而取天下(용인걸이취천하)

 

천하가 어지러워지는 사건의 발단은 진시황의 역마살로부터 시작되는것 같다.

천하육국울 모두 정벌하여 일통천하 하고 막강한 진 제국을 창건한 진시황은

안으로 내치에 힘쓰지 않고 밖으로 백성을 위무하는데 힘쓰지 않았으며

오로지 자신이 이루어 놓은 업적을 자랑하고 스스로의 위대함을 선양하기에만 힘썼다.

 

그 강대했던 진나라가 그렇게 쉽게 망한 이유는

진시황이 자기가 이룬 통일제국을 영원히 누리고 싶어 불사의 약을 구하고 불로장생의 술법을 찾는데만

골몰한것이 그 하나의 이유일 것이고

또 자기가 통일한 천하를 둘러보고 싶어 끊임없이 천하를 순수하는 방랑으로 세월을 보낸것이

또한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일것으로 생각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시황제가 순수길에 나서 동쪽 회계산을 돌아 절강을 건널때 여러 백성이 몰려와 황제의 행차를 구경했다.

그 구경꾼 중에 한 젊은이가 있었는데 그 젊은이가 황제의 행차를 바라보며 다음과 같이 말 하였다.

"내가 저놈의 자리를 차지해야 겠다."

이 젊은이의 이름은 항적(項籍)이고 자는 우(羽)였다.

 

항우는 키가 8척이고 힘은 큰 구리솥을 들어올릴 정도여서 주변의 모든 젊은이들이 항우를 두려워 하였다.

 

항우는 진나라 왕전장군에게 죽은 항연장군의 아들인 항량의 조카였는데

항씨는 대대로 초나라의 명장 집안이었다.

 

항우는 어려서부터 글공부를 배웠는데 글에 취미를 붙이지 못했고 다시 검술을 배웠지만

역시 그또한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숙부 항량이 노하여 꾸짖자 항우가 말했다.

"글이란 자기 이름만 쓸수 있으면 족하고 검술이란 그저 한사람을 벨수 있으면 그만이니 배울 가치가 없습니다.

저는 만인을 대적하는법을 배우고자 합니다."

그래서 항량이 항우에게 병법을 가르쳤더니 처음에 크게 기뻐했지만

그것도 어느정도 개략을 알고난 후에는 구태여 깊이 파고들려 하지 않았다.

 

진시황이 순행중에 죽고 이세황제 호해가 등극한 원년에 진승이 봉기하자

전국의 영웅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때 회계군의 군수 은통이 항량에게 물었다.

"천하가 모두 진나라에 반기를 들고있으니 이것은 하늘이 진나라를 멸망시키려는 것이오.

선수를 잡으면 남을 제어할수 있고 뒤늦으면 남의 지배를 받아야 할테니

나는 병사를 일으켜 구대와 환초를 장군으로 삼아 봉기할 작정이요."

 

그런데 이때 환초는 죄를 짓고 도망하여 늪지대에 숨어지내고 있었기때문에

아무도 그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항량이 거짓으로 은통에게 말했다.

"환초는 도망중이므로 그의 행방을 아는사람이 아무도 없으며

오직 제 조카 항우만이 그의 행방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고는 항량은 밖으로 나가 항우를 불러 칼을 들고 준비하고 있도록 한 후에

다시 은통의 앞으로 와서 말했다.

"항우가 문앞에 와 있으니 청컨대 그를 불러 환초를 찾아오도록 명하십시요."

드디어 은통이 항우를 불러들이자

항우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즉시 다짜고짜 검을 뽑아 은통의 목을 베어 버렸다.

부중의 사람들이 크게 놀라 우왕좌왕 하며 일부는 도망치고 일부는 칼을 뽑아 대항했지만

항우가 100여명을 쳐 죽이자 어지럽게 움직이던 부중 사람들이 모두 바닥에 꿇어 엎드려

항량과 항우에게 복종 하였다.

항량이 군수의 인수를 허리에 차고 항우를 부장으로 삼고 드디어 오중에서 거병하였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당시에 진시황의 순행 행렬을 보고 탄식을 했던 젊은이가 또하나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바로 유방(劉邦) 이었다.

 

유방은 황제의 화려한 행렬을 보고 다음과 같이 탄식 했다.

"아 아..대장부라면 마땅히 저정도는 되어야 한다.."

 

오직 이름뿐, 자 도 없는 그저 유씨네 몇째 아들 ㅡ유계ㅡ 정도로 불리워진 이 젊은이는

패 땅의 풍읍 중양리 사람이었다.

아버지를 태공 이라 했고 어머니를 유온 이라 했지만 그 글자들은 알고보면

그저 유씨할배.유씨네 할매 정도인 그저 미천하고 가난한 집안의 자제였다.

 

일찌기 유온이 연못가 뚝방에 앉아있다가 잠깐 잠이 들었는데 꿈에 신을 만났다.

이때 천둥번개가 치며 사방이 어두워 졌고 깜짝놀란 태공이 달려가 보니

교룡이 유온의 배 위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후 임신하여 낳은 아들이 바로 유방 이었다.

 

유방은 코가 높고 용을 닮은 얼굴이었으며 수염이 아름다웠고 왼쪽 허벅지에 72개의 검은사마귀가 있었다.

그는 인자하여 사람을 사랑했고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했으며 가슴이 탁 틔어 답답함이 없고

언제나 도량이 큰 사람이었다.

 

유방은 장성해서도 집안일을 돌보지 않고 농사도 거들지 않았으며 그저 동네의 건달노릇만 하며

말썽을 피우는 시골 깡패에 불과했다.

유방이 동네 젊은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사고를 치자 관청에서는 그를 잡으려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그때마다 그의 친구인 노관과 소하.조참.하후영등의 도움으로 그를 처벌할수 없었다.

골머리를 앓던 관청에서는 차라리 그를 관리로 삼아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하려 했고

그래서 유방은 사수의 정장이 되었다.

정장이 된 유방은 매우 거만하였기 때문에 관청에 있는 관리들은

그에게 멸시와 모욕을 당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

 

또 유방은 주색을 좋아하여 언제나 왕씨나 무씨네 주막에 가서 술을 마시고 놀았는데

유방은 한번도 술값을 낸적이 없이 매번 외상으로 술을 마셨다.

그런데 유방이 술에 취해 누워있을때 술집 주인인 왕씨나 무씨가 가만히 살펴보니

언제나 용의 모습을 한 서기가 유방의 몸 주위를 감싸고 있는것 이었다.

뿐만 아니라 유방이 술을 마시고 있을때는 평소보다 몇배다 많은 손님이 와서 장사가 매우 잘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왕씨와 무씨는 매년 연말마다 유방의 외상장부를 찢어버리고 돈을 받지 않았다.

 

단보인 여공이 원수를 피해 패현의 현령에게 와서 의탁하게 되었다.

패현의 관리들과 유지들은 현령의 빈객이 왔다는 말을 듣고 모두 예물을 들고 와서

여공을 환영하게 되었다.

 

그때 소하가 패현의 아전이었는데 잔칫자리에 손님이 너무 많이 오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축하금을 1천전 이상 낼분은 당상으로 오르고 그 외에는 모두 당하의 자리에 앉아 주십시요."

그때 유방은 정장의 신분으로 잔치에 왔다가 소하의 말을 들었으나 평소부터 소하를 우습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거드름을 피우며 당상에 올라 앉았다.

소하가 유방이 내미는 명자를 보니 그 명자에는 ㅡ축하금 1만전ㅡ 이라고 적혀 있었다.

 

여공이 그 명함을 보고 황망하여 유방을 상좌로 모시려 하자 소하가 슬며시 여공에게 귀띔을 했다.

"저 유방이라는 자는 빈 털터리입니다.1만전 이라는것은 그저 허풍이니 그를 믿지 마십시요."

그러나 여공은 개의치 않고 유방을 상좌로 모시며 소하에게 말했다.

"그렇지 않소

내가 그의 관상을 보니 이사람은 앞으로 매우 귀하게 될 상이오."

 

잔치가 무르익고 술이 여러순배 돈 후에 여공이 유방에게 말했다.

"나는 젊어서부터 관상을 좀 볼줄 아는데 이제까지 수많은 사람의 관상을 보았지만

그대와 같은 좋은 관상은 처음이오.

내게 딸이 하나 있는데 그대에게 줄테니 청소를 시키든지 빨래를 시키든지

그저 아내로 삼아 주시기만을 바라오."

그리하여 유방과 여공의 딸이 혼인을 하게 되었으니

이 여공의 딸이 바로 나중에 여후가 되고 효혜제와 노원공주를 낳게 되는 고후이다.

 

유방이 현령의 명을 받아 인부들을 이끌고 여산의 진시황릉까지 인솔하게 되었다.

노역에 끌려가서 살아 돌아온자가 없다는것을 알고있는 인부들중에서 도망자가 속출했고

또 도중에 큰 비가 내려 길이 끊기고 제시간에 당도할수 없게 되자 더 많은 인부들이 도망쳐 버렸다.

결국 유방은 시간도 늦고 도망자도 많아서 어차피 가봐야 벌을 받을수밖에 없게 되었다.

 

가도 죽고 안가도 죽게 생긴 유방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그자리에 주저앉아 술을 마시며 말했다.

"나도 모르겠다.

너희도 도망을 가든지 말든지 맘대로 해라.

나도 오늘 밤 안으로 도망갈것이다."

 

인부들이 모두 도망치고 여남은 명만 남아서 유방을 따랐다.

드디어 유방이 일행을 이끌고 좁은 길을 빠져 나가고 있는데

앞에 엄청나게 커다란 뱀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미 술에 만취되어있던 유방은 칼을 뽑아들고 그 뱀을 향하여 외쳤다.

"감히 뱀따위가 장부의 앞길을 막다니 용서할수 없다."

유방은 큰 칼로 뱀의몸뚱이를 단칼에 베어버렸다.

 

잠시후 취기가 올라 길을 갈수 없게된 유방이 길가에 아무렇게나 쓰러져 잠이 들었을때

먼저 달아났던 인부들이 유방을 따르기 위해 그들의 일행을 뒤따라왔다.

그 인부들이 도중에 한 노파를 만났는데 그 노파는 매우 슬프게 울고 있었다.

인부중의 한사람이 물었다.

"이 깊은 밤중에 노파는 무슨일로 그리 슬프게 울고있는거요?"

"어떤자가 내 아들을 죽였기 때문에 울고 있는것이오."

"당신의 아들이 무었때문에 살해 당했다는겁니까?"

"내 아들은 백제의 자식으로 뱀으로 변신하여 있었는데

갑자기 적제의 아들놈이 나타나서 칼로 내 아들을 베어 버렸소."

 

인부들이 괴이하게 생각하여 노파를 요괴라 생각하고 채찍으로 내리쳤더니

그 노파는 홀연히 사라지고 말았다.

사람들이 유방이 있는곳에 도착 했을떄 유방은 술이 깨어 앉아 있었는데 인부들에게 그 말을 듣고는

마음속으로 매우 기뻐 하였다.

유방을 따르던 자들이 더욱 유방을 경외하게 되었다.

 

진시황이 생전에 가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동남방에 천자의 기운이 있다."

그래서 진시황은 자주 동방으로 출행하여 천자의 기운을 억누르려 하였다.

유방은 그때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화를 느끼고 망산과 탕산 사이로 숨곤 했다.

그러나 유방의 집에 손님이 찾아올때마다 여후가 손님을 데리고 신통하게도 유방이 숨은곳을 찾아냈다.

유방이 괴이하여 부인 여후에게 그 까닭을 물었더니 여후가 대답 했다.

"그것은 간단 합니다.

당신이 머무는곳에는 항상 천자의 기운이 서려 있으니 그 운기만 보고 찾아오면

어김없이 당신을 만날수 있었습니다."

 

유방이 크게 기뻐하였고 그런 소문이 퍼지자 패현의 젊은이들이 유방을 따르기 위해

다투어 모여들게 되었다.

 

진나라 이세 호해원년에 진승이 봉기하자 각처의 호걸들이 자기고을의 장관.현령을 죽이고

진승에게 호응했다.

패현의 현령도 그 소문을 듣고 패현을 몽땅 들어 진승에게 호응하려 하였다.

그때 패현에는 소하가 주리 였고 조참이 옥리였는데 그들이 현령에게 말했다.

 

"현령께서는 진나라의 관리이니 이곳 자제들이 현령의 뜻을 따르지 않을것입니다.

그러니 진나라에 죄를 짓고 숨어있는 이고을 호걸들을 불러내어 그들이 패현의 자제들을 인솔하게

하는것이 상책입니다."

"죄를 짓고 숨어있는 호걸이 누구인가?"

"유방입니다."

"누가 그를 이리로 불러올수 있는가?"

"번쾌를 보내면 그를 찾아올수 있을것입니다."

 

이때 유방은 이미 100여명의 졸개를 이끌고 있었는데 번쾌가 이 소식을 전하자 그 무리들이

모두 좋아하며 패현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백여명의 무리가 고을로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은 현령이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다.

ㅡ반도들이 변란을 일으켜 나를 공격하면 어찌하겠는가?ㅡ

곧바로 후회를 하게된 현령은 성문을 닫아 걸고 유방이 성내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은다음에

유방을 끌어들이자고 말한 소하와 조참을 주살하려 하였다.

그 낌새를 눈치챈 소하와 조참이 성벽을 넘어 유방에게로 달아나 그간의 경과를 자세히 알렸다.

 

유방이 편지를 써서 화살에 매달아 성내로 쏘아 보냈다.

ㅡ진나라의 학정에 시달린 백성들이 분노하여 궐기하였는데 패현의 유지들께서는 현령을 위해

성문을 닫아걸고있으나, 총 궐기한 제후들이 들이닥친다면 이 패현정도는 쉽게 함락 될것입니다.

여러분은 잘 생각하여 행동하십시오.

지금 현령을 잡아 주살하고 훌륭한 인물을 세운뒤에 천하 제후들에게 호응한다면

그대들의 가족과 재산은 보호 될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이 기회를 놓친다면 그대들의 가족이 모두 도륙된다 해도 아무도 책임을

질수 없을 것입니다.ㅡ

 

매우 불안해 하던 고을 유지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는 마침내 현령을 잡아 죽이고 성문을 열었다.

패현의 유지들이 유방을 현령으로 세우려 하였다.

그러나 유방은 사양을 하였고 그러자 유지들은 소하와 조참에게 현령이 될것을 권했다.

그러나 소하와 조참도 모두 사양하였고 다시 유방에게 권했으나 유방은 또다시 사양 했다.

마침내 소하와 조참이 나서서 다시 추대하자 유방이 하는수 없이 현령의 인수를 받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유방은 패공이라 불리우게 되었다.

패공은 소하와 조참 그리고 번쾌등과 함께 3천의 군사를 모아 사방을 공격하고 풍읍을 굳게 지켰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바로 그러한 당시에 시황제의 순수행렬을 노려보는 또한사람의 젊은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장량(張良). 자는 자방(子房)이며 망한 한나라의 출신이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한나라의 재상을 지냈으나 장량이 어렸을때 한나라가 진나라에 멸망했기 때문에

장량은 한나라에서 벼슬에 오르지 못했다.

한나라가 멸망했을때 장량의 집안에 300명의 종이 있었을만큼 그의 가문은 큰 집안이었다.

 

장량은 자신의 가문이 한나라에서 5대나 재상을 지냈기 때문에

망한 한나라의 원한을 갚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의 아우가 죽었을때 매장도 하지 못하고 자신의 집안 가재를 모두 팔아서 돈을 마련하여

자객을 구하여 진왕을 암살할 계획을 세웠다.

장량은 창해군의 역사를 구해 진왕을 죽이려 하였다.

 

이 창해역사는 우리 조선의 강릉지방으로 알려진 창해군의 인물로 120근의 철퇴를 자유롭게 휘두를수

있는 천하의 장사였다.

 

마침 천하를 순수하던 진시황이 박랑사의 계곡을 지날때 절벽위에 숨어있던 장량과 창해역사가

행렬의 가운데 어가를 보고 철퇴를 던졌으나 진시황은 그 어가에 타고있지 않았다.

 

장량은 변성명 하고 숨어 멀리 달아났는데 어느날 냇가에서 이상한 노인을 만나게 되었다.

이 초라한 노인이 장량을 한동안 쏘아보더니 갑자기 신발을 벗어 다리 밑으로 던지고는 장량에게 말했다.

"뭘 그냥 빤히 보고있느냐? 어서 내려가서 신발을 주워오지 못할까?"

장량은 기가 막혔지만 상대가 늙은이 인지라 그냥 참고 내려가 신발을 주워다가 노인에게 주었다.

"이놈아 신발을 가져왔으면 발에 신길것이지 뭘 꾸물대고 있느냐?"

그래서 장량은 무릎을 꿇고 노인에게 신발을 신겼다.

 

태연하게 신발을 신은 노인은 고맙단 말도 없이 그곳을 떠났다.

잠시후 조금 가던 노인이 돌아와서 장량에게 말했다.

"자네는 내가 가르칠만 하니 닷새후 날이 밝을때 이곳으로 나오거라."

장량은 마음속으로 매우 괴이하게 생각했지만 그러겠노라'고 대답을 하였다.

장량이 닷새후 새벽같이 다리위로 나갔더니 그 노인이 이미 나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호통을 쳤다.

"이놈아 노인과 약속을 하고 젊은놈이 늦게나오는 법이 어디있느냐?

그냥 돌아갔다가 닷새후에 다시 나오거라."

장량이 닷새후 첫닭이 울때 서둘러 다리로 나갔지만  그날도 노인은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노인은 이번에도 화를 내며 다시 닷새후에 나오라고 호통을 친뒤 그냥 가버렸다.

 

닷새후.

이번에는 장량도 오기가 생겨서 아예 한밤중에 다리로 나갔다.

잠시후 나타난 노인은 그제야 기뻐하며 말했다.

"마땅히 그래야지.

이 책을 받거라."

노인은 품에서 책 한권을 꺼내주며 말했다.

"이 책을 열심히 공부하면 너는 10년후에 제왕의 스승이 될것이다.

그리고 13년 후에는 제북의 곡성산에서 나를 다시 만날수 있을것이다."

나는 그곳에 사는 황석 노인이다."

노인은 말을 마치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장량이 그 책을 살펴보니 그것은 강태공이 지은 태공망병법' 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을 열심히 공부한 장량은 하비에 머물며 임협으로 행세 했는데

진승이 봉기하자 장량도 100여명의 장정을 긁어모아 진승에게 합류하러 가던 도중에 우연히 패공을만났다.

장량은 패공에게 묘한 매력을 느끼고 마침내 그에게 소속되어 버렸다.

장량은 패공에게 여러차례 태공망의 병법을 헌책 했고 그때마다 패공은 장량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었다.

장량은 패공을 하늘이 낸 영걸이라 생각하고 그때부터 패공을 따르게 되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나중에 한나라의 상국의 지위에까지 오르는 소하(蕭何)는 패현 풍읍 사랍이었다.

그는 법률에 정통하여 패현 주리의 속관이 되었다.

패공이 아직 서민의 신분일때 패공이  항상 말썽을 일으킬때마다 소하가 뒤에서 음양으로

패공을 많이 돌보아 주었고 패공이 정장이 되었을때도 소하는 그를 항상 보좌 했다.

 

패공이 인부들을 인솔하여 여산의 공사장으로 떠날때 다른 아전들은 모두 전별금으로 삼백전을 냈는데

소하만은 오백전의 전별금을 냈다.

소하는 패현의 사무를 관장했는데 늘 그 일을 처리함에 가장 뛰어났다.

진나라 조정에서 파견된 감찰관이 조정으로 돌아가서 소하의 명쾌한 일처리를 보고하고

소하를 불러 조정에서 등용하려 했는데

소하는 굳이 사양하고 패현에 남았다.

고조가 일어나 패공이 되었을때 소하는 언제나 패공의 서무를 담당했다.

패공이 함양에 이르자 여러 장수들이 보물창고를 약탈할때 소하만은 진의 궁전으로 들어가

승상의 율령과 도서들을 거두어 보관했다.

 

패공이 한왕이 되자 소하를 승상으로 삼았다.

항우가 함양을 불태우고 떠난후 한왕이 관중으로 돌아왔을때 관중의 사정을 익히 알고

백성들의 괴로운 사정과 천하의 험요. 인구의 많고 적음을 상세히 알수 있었던것은

소하가 진나라의 도서를 얻어 면밀히 연구한 덕분이었다.

소하가 한신을 추천하여 대장군으로 세운이야기나 한신이 달아났을때 밤새 추격하여 다시 데려온

ㅡ월하추소하ㅡ의 이야기는 회음후 열전에서 소개한 바가 있다.

 

한왕 유방이 관중으로 나와 삼진을 평정했을때 소하는 승상의 자리에 머물며 파.촉 의 땅을 수습하고

백성들을 진무하여 이 땅의 백성들로 군사를 보충하고 군량을 보급하게 하였다.

 

한왕이 중원을 공략할때 소하는 관중에서 태자를 보필하고 관중을 잘 다스리며 법령과 규약을 정하고

종묘와 사직을 세우고 궁실을 건설했다.

 

한왕이 가끔 군사를 모두 잃고 도망했으나 소하가 항상 관중의 장정들을 모아 한왕의 군사를 보충했고

항상 육로와 수로로 한왕을 위한 보급을 충족시켰다.

 

이로하여 한왕은 관중의 모든 일을 소하에게 일임 하였고 소하는 항상 한왕을 위해 성심을 아끼지 않았다.

 

한왕이 중원을 공략하여 항우와 한참 공방을 벌일때 한왕이 가끔 사자를 보내어 승상을 위로하고

많은 상과 선물을 주었다.

 

포생이라는 자가 승상에게 진언했다.

"왕께서 비바람을 맞아가며 적진앞에서 고전하면서도 자주 사자를 보내서 승상을 위로하는 뜻을 아십니까?

그것은 왕께서 승상을 의심 하기때문입니다.

저는 이것이 승상을 위해 매우 위태로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승상께서는 승상의 가족중에 자식이나 형제들중에 전투에 나가 싸울수 있는자는 모두 전선으로

내 보내십시오.

그리하면 왕께서는 승상을 더욱 신임하게 될것입니다."

소하가 그 말을 따랐더니 한왕이 크게 기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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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후 조참(曹參)은 패현 출신 이었다.

진나라시절에 소하는 주리였고 조참은 옥리의 속관 이었다.

두사람은 패현의 주요 관리였는데 유방이 패공이 되었을때 조참은 중연으로 종군했다.

 

조참은 한나라 유방군의 대표장수라 할수 있을듯 하다.

일찌기 패공이 포의의 시절일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인물들중에 전장을 누비며 군공을 세운것은

조참이 으뜸이었다.

이를테면 항우에게 용저가 있었듯이 유방에게는 조참이 있어 가는곳마다 전공을 세워

한나라가 천하를 제패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것이 조참이다.

 

한나라가 봉기한 초기에 진나라 승상 이사의 아들 이유를 깨뜨린것도 조참이었으며

진나라 왕전장군의 손자 왕리장군을 쳐부순것도 조참이었다.

 

유방이 관중에 들어갈때 함곡관에 가로막혀 고전하고 있을때에도 조참이 남하하여

무관을 돌파하고 드디어 유방이 관중에 가장먼저 입성할수있었던것도 역시 조참의 공이 높았으며

유방이 한중에서 돌아나와 삼진을 평정할때도 역시 조참이 선봉에서 큰 공을 세웠다.

 

조나라의 진여가 모반했을때에도 한신을 도왔으며

위왕 표가 모반했을때 한신과는 별도로 위나라를 공격하여 위표를 사로잡았으며

한신이 제나라의 70여 성을 공격할때에도 조참의 공은 으뜸이었다.

또한 한신이 용저와 싸울때에도 용저의 목을 벤것은 조참이었다.

 

천하가 평정된후에 조참의 공적은 천하에 제일이었으며 모든신하들이 조참의 공로가 가장 높다고 했지만

고조는 소하의 공이 더 높다하여 조참은 소하의 아랫자리에 머물게 되었다.

 

이로하여 소하와 조참의 사이에 틈이 생겼지만

그러나 두사람은 공사를 구분하여 서로 다투지 않았고

소하가 죽을때 그가 조 참을 추천하여 드디어 한제국의 상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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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평(陳平)은 양무의 호유향에서 태어났다.

젊은시절 매우 가난했지만 책을 즐겨 읽었다.

그의 집안 살림은 형이 이끌어 갔는데 몇뙈기의 밭 만으로 가족을 부양하기는 매우 어려운 형편이었다.

진평은 형 진백과 형수 와 함께 살았는데 그 형은 농사를 열심히 지으며

아우 진평이 자유롭게 글공부를 하도록 했다.

진평은 체구가 장대하고 용모가 아름다웠다.

어떤이가 진평에게 말했다.

"집은 가난한데 뭘 먹고 이렇게 얼굴이 미끈하고 살이 쪘는가?"

집안일은 돕지 않고 글만 읽으며 무위도식하는 진평을 미워하던 형수가 비꼬듯이 말했다.

"놀고먹는데 쌀겨나 먹이면 그만이죠.

저런 시동생은 없는게 나을겁니다."

그말을 들은 진백이 자기 부인을 집에서 내쫓아 버렸다.

 

진평이 장성하여 장가갈 나이가 됐지만 부잣집에서는 딸을 주려 하지 않고

가난한 집딸에겐 진평이 관심을 두지 않아 오랜동안 미혼으로 지냈다.

 

고을에 장부 라는 부자가 있었는데 그의 손녀가 다섯번이나 시집을 갔지만 그때마다 남편이 모두 죽어서

감히 그에게 장가들려 하는이가 없었다.

항상 곤궁했던 진평은 평소에 고을에 상갓집이 있으면 그곳에 가서 일을 도와주고 품삯을 받곤 했는데

어느 상갓집에서 일을 돕고있는 진평을 본 장부는 그의 큰 풍채와 미끈한 얼굴을 보고 한눈에

그를 마음에 들어 했다.

장부는 귀가하여 자기아들 장중에게 말했다.

"네 딸을 진평에게 시집 보낼것이다."

"그토록 가난한집에 사위를 얻으면 주변에서 우릴 비웃을 것입니다."

"그토록 잘생긴 장부가 오랫동안 빈천한 경우를 본일이 있는가?"

 

이리하여 진평과 장부의 손녀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장부가 손녀에게 단단히 훈계하여 말했다.

"가난하다 하여 남편을 우습게 알지말것이며,형인 진백을 아버지처럼 섬기고

형수를 어머니처럼 모셔야 한다."

성대한 결혼식의 비용은 모두 장부가 댔고 결혼후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진평은 씀씀이가 좋아지고 널리 교우관계를 할수 있었다.

 

고을 사당에서 제사를 지낼때마다 진평이 제육을 분배 하였는데 그때마다 항상 공평하게 나눴기 때문에

고을 장로들이 진평을 칭찬했다.

칭찬을 들은 진평이 하늘을 우러르며 탄식하듯 말했다.

"이 진평에게 천하를 분배하는일을 시키면 이 고기를 나누듯 잘할수 일을텐데."

 

진승이 봉기하여 위왕 구를 봉했을때 진평은 젊은이들을 거느리고 가서 위구를 섬겼다.

그러나 위구가 진평을 알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진평은 위구를 떠나 항우에게로 가서 귀속했다.

진평이 군공을 세워 항우가 그를 작경에 임명했다.

 

은왕이 항우에게 배신을 했을때 진평이 군사를 이끌고 가서 항복을 받고 돌아오자

항우가 그에게 도위벼슬을 주고 황금 20일을 하사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은왕이 다시 항우를 배반하고 한왕에게 항복하였다.

이에 크게 노한 항우가 은왕을 어떻게 항복시켰길래 이렇게 다시 배반을 하느냐고 노발대발하며

진평을 찾아 주살하려 했다.

낌새를 차린 진평은 도위의 인수와 황금을 밀봉하여 항우에게 다시 보내고

칼을 지팡이 삼아 도망쳤다.

 

진평이 도망가는 길에 황하를 건너는데 뱃사람들이 진평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저렇게 장대하고 잘생긴 사람이 혼자 강을 건너는것을 보니 반드시 도망중인 장군이거나

높은 벼슬을 하던 사람일 것이며

반드시 수중에는 많은 금은보화를 가지고 있을것이다."

뱃사람들끼리 서로 눈짓을 해가며 진평을 죽이려는 낌새를 보이자

진평이 위험을 직감하고 입고있던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는 발가벗은채로 뱃사람들을 도와 노를 저었다.

그제야 뱃사람들은 그가 가진것이 없는줄 알고 그를 죽이지 않았다.

 

진평이 드디어 수무 에서 한에 항복하고 위무지를 통하여 한왕을 뵈었다.

이때 밥을 먹고 있던 한왕은 진평을 한번 훑어보고는

"물러가 숙사에 들어 기다리라."

하고 명하였지만

진평은 물러가지 않고 한왕에게 유세하여 결국 한왕의 눈에 들었다.

한왕은 이날로 진평을 도위에 임명하고 군을 감찰하도록 했다.

강후 주발이나 관영같은 한왕의 오랜 신하들은 신참에게 감찰을 받게 되자 크게 불평하고 그를 헐뜯었다.

"진평이 미장부이기는 하나 겉만 번지르르하고 그 속을 알수 없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진평은 제 집에 있을때 형수를 훔치고

위구를 섬겼으나 도망쳐 초에 귀순했고

초에서도 죄를짓고 도망쳐서 우리 한에 귀순했습니다.

왕께서는 그러한 자를 높은 지위에 임명해서 저희를 감찰하도록 하셨지만

그는 오히려 여러 장군들에게 뇌물을 요구하여 많은 뇌물을 바친자에게는 좋은 자리를 주고

적게 바친 자는 나쁜곳으로 보내버리고 있습니다.

이자는 나라를 어지럽히는 놈이니 왕께서 이점을 살피시기 바랍니다."

 

한왕이 진평을 불러 문책하자 진평이 대답 하였다.

"신이 위왕을 섬겼으나 위왕은 신의 언설을 채용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위왕을 떠나 항왕을 섬겼는데 항왕은 남을 신용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왕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왕께서 능히 인재를 기용할 능력이 있다고 해서 대왕께 귀순했습니다.

신은 이곳에 올때 맨몸뚱이로 왔기때문에 금품을 받지 않고는 생활할수 없었습니다.

이제 대왕께서는 제 계책이 쓸만하다고 생각하시면 저를 쓰시옵고

가치가 없다면 떠나게 해주십시오.

그동안 받은 금품은 봉인하여 되돌려 드리겠습니다."

 

한왕이 진평에게 사과하고 많은 금품을 하사하고 그를 호군중위로 임명하여

모든 장군들을 감찰하게 하였다.

여러 장수들이 감히 다시는 진평에 관하여 불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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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후 주발(周勃)은 패현 출신이다.

주발은 평상 만드는 일을 하며 살고 있었다.

고조가 패공이 되어 봉기하자 주발은 중연이 되어 종군하여 호릉을 공격하고 방여를 항복시켰다.

고조가 진나라 군사와 싸울때마다 주발이 종군하여 항상 선봉에 서서 큰 공을 세웠다.

주발은 고조의 천하쟁패 전쟁때도 공이 높았지만 한 제국을 창건한 후에 모반한 열후들을 칠때

더욱 공이 높았다.

연왕 장도가 모반 했을때 고조의 수레 앞에서 장도를 격파하고 강 땅의 팔천여호를 봉읍으로 하사받아

강후로 봉해졌다.

한왕 신이 모반 했을때에도 고조를 따라가 수 없이 많은 전공을 세워 태위로 승진했다.

진희가 모반했을때도 영구땅에서 진희를 격파하고 그 목을 베었다.

연왕 노관이 모반했을때 번쾌를 대신하여 여러곳에서 진희의 군사를 평정했다.

 

주발의 사람됨은 소박하여 꾸밈이 없으며 돈후하였다.

주발은 문사를 좋아하지 않아서 선비나 변설가들에게는 쇠몽둥이처럼 박둔하게 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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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고조 유방과 초패왕 항우. 그리고 한제국의 개국공신인 장량.소하.조참.진평.주발 등의 일대기 중에

젊은시절의 일화들과 함께 이들이 천하쟁패를 위하여 어떻게 일어났는가를 알아보았다.

이들 외에도 초나라의 범증과 용저.그리고 종리말 등의 인물이 있으나

역사는 승리한자의 몫이라 하니 그들의 이야기는 생략하고 주로 한나라의 공신들을 위주로 이야기 하였다.

이 외에 빠져서는 안될 인물이 몇 있다.

바로 번쾌와 등공 하우영 인데 이들의 이야기는 바로 다음회에 설명할 기회가 있으므로

아쉬움을 뒤로 하고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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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들이 모여 진나라를 무너뜨린후 한나라와 초나라가 서로 싸울때의 이야기를 알아보겠다.

여러 군웅들이 제각기 일어나 서로 영웅호걸을 자처하며 패왕이 되기를 원했지만

대부분 능력이 미치지 못하여 소멸되고 그중에 걸출한 인물 두명만이 천하를 두고 건곤일척의

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그 하나는 한고조 유방이고 또 하나는 초패왕 항우이다.

그 결과야 역사에 기록된 이야기이니 누구나 잘 알고 있겠지만

시대의 천명을 받은자와 그렇지 못한자의 운명은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에게 깊은 감흥을 주어

찬탄하고 탄식하게 만든다.

지금부터 당시의 이야기를 간단히 축약하여 알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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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초회왕은 여러 제후들 중에서 가장먼저 관중에 입성한자를 관중의 왕으로 봉하겠다고 선언 하였다.

당시에 가장 공이 컸던 사람은 항우였는데 그 항우는 성격이 강포하고 잔인하여 초회왕을 공경하지 않고

모든것을 자신의 뜻대로 처리했다.

서열상으로야 당연히 초회왕이 항우의 윗자리 였지만 항우의 속뜻은 그렇지 않았다.

항우가 초회왕이 임명한 상장군 송의를 주살하고 스스로 초군의 상장군이 되었을때

초회왕은 항우가 두려워 어쩌지 못하고 그를 상장군으로 인정했다.

결국 천하의 실권자는 항우였고 초회왕은 그저 허울뿐인 왕으로서 아무런 권력도 가지지 못했다.

 

그러한 사정으로 제후들이 서진하여 관중을 칠때

초회왕은 유방에게 쉽고 빠른 경로를 가게 하였고 항우에게는 어렵고도 먼길을 돌아서 가게 하였다.

결국 맨먼저 관중에 들어간것은 유방이었고 뒤늦게 관중에 입성한 항우는 대로하여

유방을 공격하려 하였다.

 

그러나 젊은시절부터 장량과 친분이 있던 항우의 숙부 항백이 이것을 알고는 장량에게 찾아가서

이러한 사실을 귀띔 해주었고.

그 말을 들은 유방은 항우에게 사죄하여 목숨을 빌기로 계획을 세운다.

 

당시에 항우의 군사는 40만 이었고 유방의 군사는 10만 이었기 때문에

병력으로는 유방이 항우를 당해낼수가 없었다.

결국 유방은 항우에게 사과하고 항복에 가까운 조건으로 항우를 달래었다.

항우와 유방은 홍문에서 회합하여 유방이 항우를 관중의 왕으로 인정하고 사죄하며 몸을 낮추었다.

항우는 이에 크게 만족하여 잔치를 벌였고 그 잔칫자리에서 범증이 계책을 내어 유방을 주살하려 했다.

 

이제 항우가 한마디의 명령만 내리면 유방은 꼼짝없이 죽는 목숨이었지만

유방의 사죄에 마음이 흡족해진 항우는 범증의 계책을 따르지않고 유방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참다못한 범증이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 항우의 종제인 항장을 불러 말했다.

"우리 왕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으니 그대가 들어가서 장수를 축원하고

잔치의 흥을 돋운다는 핑계로 칼춤을 추다가 기회를 보아 유방을 주살하시오.

오늘 우리가 유방을 죽이지 못한다면 우리가 모두 유방에게 사로잡히게 될것이오."

 

드디어 항장이 연석에 올라 항우와 유방의 장수를 축원하고는

"군중인지라 잔칫자리에 아무 즐길것이 없으니

청하옵건데 제가 검무라도 추어서 두분의 흥을 돋우겠나이다."

라고 말하고 즉시 검을 뽑아 검무를 추었다.

 

일촉즉발의 위기에 놀란 항백이 자리에서 일어나말했다.

"검무란 본래 혼자 추는것이 아니니 내가 그대를 상대하여 함께 춤을 추겠다."

 

이리하여 항장은 유방을 치려하고 항백은 보호하려 하는 기묘한 상황이 연출되었고

항장은 쉽게 유방을 공격하지 못했다.

이때 상황을 지켜보던 장량이 급히 밖으로 나와 번쾌를 불러들였고

번쾌는 칼과 방패를 들고 잔칫자리로 뛰어 들었다.

앞을 가로막는 경비병들을 밀어제치고 진칫자리의 장막을 걷어붙이고 뛰어들어와 우뚝서서

항우를 바라보는 번쾌때문에 칼춤이 중지 되었고 일순 장막 안은 조용해 졌다.

 

항우가 번쾌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너는 누구냐?"

"저는 패공의 참승 번쾌라고 하옵니다."

 

번쾌의 등장으로 위기를 모면한 유방은 항왕의 주의가 흐트러졌을때  슬그머니 번쾌와 함께

잔칫자리를 빠져나왔다.

 

ㅡ번쾌와 항우가 만나는 장면은 바로 다음편 번.역.등.관 열전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ㅡ

 

유방이 살아서 달아났다는것을 알게된 범증은 크게 분노하여 장량이 선물로 주고간 옥두를

땅에 놓고 칼로 내리쳐 부수면서 말했다.

"참으로 원통하다.

어린 아이놈과 천하를 도모했으니 일을 이룰수 있겠는가?

항왕의 천하를 빼았는것은 반드시 패공일것이니

이제 우리는 패공의 포로가 될것이다."

 

이리하여 유방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고 항우가 드디어 관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항우는 진의 삼세 자영이 자신에게 항복하지 않고 유방에게 항복한것이 화가나서

진나라의 모든 궁실을 불태우고 가는곳마다 백성을 도륙했다.

 

항우가 초회왕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자신을 관중왕으로 봉해줄것을 청했다.

그러나 회왕은 일언지하에 그것을 거절하였다.

"애초에 약속한대로 유방이 가장먼저 관중에 들어갔으니 유방을 관중왕으로 임명한다."

 

항우는 크게 분노했다.

처음부터 회왕이 불리한 조건을 주었기 때문에 관중 입성이 늦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방을 제압하고 천하의 패권을 잡고있는것이 항우였는데

이제와서 유방에게 관중왕을 내주라는 회왕의 명에 항우는 폭발 했다.

 

항우는 스스로 자립하여 서초패왕 이라 칭하고 초회왕을 의제로 높여 세웠다.

양.초를 아울러 9군을 통합하여 팽성에 도읍했다.

제후들과의 약속을 어기고 유방을 한왕으로 봉하여 파.촉의 오지로 보내버렸다.

그리고는 관중을 멋대로 3등분 하여 장한과 사마흔.동예등을 삼진의 왕으로 세웠다.

그 외에도 천하를 제 맘대로 분할하여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을 왕이나 제후로 세워

각자 봉지로 가게 하였다.

이에 천하의 여러 제후 왕들이 속으로는 불만을 가졌으나 항우가 두려워서 겉으로는 따르는척 하였다.

유방이 봉국으로 떠날때 항우는 3만의 군사만을 주어 보냈지만

몰래 항우의 군영을 탈출하여 유방을 따르는자 만도 수만명 이었다.

 

원래 관중이라는곳은 금성탕지 라 하여 천하의 도읍이 될만한 곳이었지만

진나라를 멸할때 항우가 모조리 불태워 버렸기 때문에 그 풍경이 매우 험악하고 을씨년 스러웠다.

그런 모습에 정이 떨어진 항우는 관중을 버리고 자신의 본거지인 팽성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항우는 팽성에 있는 의제를 장사로 천도하도록 강요하고는 경포를 시켜 의제를 추격하여 주살하였다.

 

한왕 유방은 한신의 계책을 받아들여 관중을 나와 삼진을 평정하고 장한.사마흔.동예 등을 쫓아냈다.

유방은 관중을 기반으로 하여 드디어 진나라의 사직을 없애고 한나라의 사직을 세웠다.

 

이때서부터 유방과 항우의 일진일퇴 하는 대 혈전이 벌어진다.

유방은 천하 제후들에게 격문을 보내 힘을 합쳐 항우를 칠것을 주장하고

여러 제후들을 규합하여 팽성을 공격했다.

 

이때 항우는 제나라를 정벌 하는중이었지만 유방의 침공 소식을 듣고 군사를 돌려 팽성으로 돌아와

유방의 한군을 쳐서 크게 무찔렀다.

 

초군이 한참 강성하여 한군이 대패하는것을 본 여러 제후들이

점차 한을 배반 하고 초의 편으로 귀순하는자가 많았다.

 

이때부터 한왕은 여러곳에서 수차례 항우와 싸웠지만 거의 매번 패전하고 항상 군사를 잃어버리고

도주하기에 바빴다.

 

형양에서 초군을 크게 격파한적이 있긴 했지만 그외의 대부분의 전투에서는 한군이 초군에게 크게 밀리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수하에 의해 경포가 귀순하고 옛 진나라 장수 장한을 깨뜨려 자살하게 한후

한신을 시켜 위표를 정벌하여 위나라를 점령하고 정형구의 전투로 조왕 헐과 진여의 목을 베고

조나라를 수중에 넣었기 때문에 한왕의 군세는 다시 한번 크게 떨쳤다.

한군이 오창의 양곡을 얻어 용도를 구축하고 항우와 1년여를 대치했지만

항우군이 자주 용도를 습격하는 바람에 유방은 자주 식량이 떨어진 상태로 포위당하곤 하였다.

 

유방은 오랜 싸움에 승기를 잡지못하여 결국 항우에게 화친을 청했다.

"형양을 경계로 하여 서쪽의 땅을 갈라주겠다."

항우가  화친을 허락하려 했지만 범증이 반대하였다.

"지금 한군은 식량이 없어 사기가 떨어져 있기 때문에 공격하기 쉽습니다.

만약 이번 기회를 놓치면 후일에 반드시 후회 할것입니다."

그래서 항우는 화친을 거절하고 형양을 포위 했다.

 

크게 근심하던 유방은 진평의 계책을 받아서 황금 4만근을 풀어

초나라의 군신관계를 이간질 하기 시작했다.

 

항우와 군신들간의 사이는 점점 벌어지기 시작했고 이때 종리매.주은.용저등은 물론이며

범증 까지도 항우의 의심을 받게 되었다.

 

한번은 항우의 사자가 한나라에 왔는데 유방이 태뢰를 갖추어 사자를 대접하기 위해

직접 솥과 도마까지 준비해 가지고 나왔다.

그러나 초의 사자를 보고는 거짓으로 놀라는척 하면서 말했다.

"아보의 사자인줄 알았더니 항왕의 사신인가?"

한왕은 그것들을 다 가져가게 하고 새로 조악한 음식을 내어 사신을 대접했다.

이러한 보고를 받은 항우는 범증을 깊이 의심하게 되었다.

 

그후 범증이 형양성을 공격하겠다고 했을때 항우가 그를 믿지 않아서 허락하지 않았다.

밤증은 항우가 자기를 의심하는것에 노하여 말했다.

"천하의 대세는 대략 결정이 났습니다.

이제부터는 대왕이 알아서 처리해 나가십시오.

저는 사직하고 백성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범증은 형양을 떠나 팽성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팽성에 도착하기도 전에 등에 종기가 나서 죽고 말았다.

 

범증이 떠난 후에도 항우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형양의 곡식이 떨어지고 성이 함락될 위기에 놓였다.

한의 장군 기신이 계책을 내어 한왕을 탈출시키려 했다.

부녀자들에게 갑옷을 입혀 무장병 2000과 함께 동문으로 나가게 했다.

초의 군사들이 동문으로 몰려들어 사방에서 이들을 공격할때 기신이 한왕을 서문으로 탈출시키고는

한왕의 옷으로 갈아입고 동쪽 성루로 올라갔다.

원래 한왕과 용모가 매우 흡사했던 기신이 초군을 향해 소리쳤다.

"성안에 곡식이 모두 떨어져서 이제 우리 한나라는 초나라에 항복 하겠다."

초군들이 일제히 만세를 불렀다.

항우가 입성하여 한왕을 찾았다.

그러나 한왕인줄 알았던 자는 가짜였다.

항우가 한왕의 행방을 묻자 기신은 항우에게 매우 심한 욕설을 퍼부었다.

한왕이 이미 탈출했다는 사실을 알고 또 욕설까지 듣게된 항우는 크게 노하여 기신을 불태워 죽였다.

유방은 경포와 합류하여 성고성으로 들어가 항우에게 대항했다.

 

한왕4년에 항우가 성고를 공격했다.

유방이 크게 패하여 등공 하후영 한사람만을 거느리고 달아나 한신과 장이의 군영으로 가서

그들의 군사를 취해 남하했다.

 

한왕이 팽월을 시켜 항우의 식량을 불태우는등 유격전을 펴게 했다.

항우가 팽월을 공격하여 팽월이 패주했다.

 

한왕이 다시 황하를 건너 성고를 탈환하고 광무에 포진한후에 오창을 점령하여 군량을 확보했다.

항우와 유방이 광무산에서 대치하게 되었다.

ㅡ광무는 하남성 개봉부에 위치한 산으로 두개의 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사이가 백보의 거리이고

그 사이를 간수 가 흐르고 있다.

한군은 서쪽.초군은 동쪽의 산에 포진하였다.ㅡ

 

서로 대치한지 수개월이 지났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다.

팽월이 자주 항우의 후방을 공격하여 군량을 탈취했기때문에 초군이 식량이 부족하여 위기에 빠졌다.

 

항우가 유방을 굴복시키기 위해 포로로 잡고있던 유방의 부친인 태공을 결박하여

큰 도마위에 올려놓고 한왕에게 고했다.

"지금 즉시 항복하지 않으면 너의 아버지를 삶아 죽일것이다."

그러자 한왕이 말했다.

"너는 예전에 초회왕 앞에서 명을 받고 약속하여 나와 결의 형제를 맺었다.

이제 나의 부친은 너에게도 부친이 되니 꼭 네 아버지를 삶아야겠으면 그리 하여라.

나중에 그 국이 잘 끓으면 나에게도 국물이나 한그릇 보내주기 바란다."

항우는 대로하여 태공을 죽이려 했다.

그러나 항백이 나서서 말리는 바람에 겨우 참고 태공을 죽이지 않았다.

 

한과 초가 대치하고 있었으나 좀체로 승부가 나지 않았다.

양측이 서로 지쳐가고 있었지만 그나마 유방은 오창을 끌어안고 있었고

항우는 후방의 병참과 멀리 떨어졌으며 그나마도 팽월의 약탈 때문에 식량이 부족하였으므로

한군보다는 초군이 더욱 힘든 상황 이었다.

 

양 군이 대치한 절벽에 항우가 나와서 한왕에게 소리쳤다.

"천하가 수년간 어지러운것은 오직 너와 나 때문이다.

부질없이 천하를 괴롭히지 말고 너와 내가 단둘이 자웅을 결판내는것이 어떻겠느냐?"

 

유방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머리로 싸우지 힘으로 싸우지 않는다."

유방은 항우를 조롱하고 또 열가지의 죄를 들어 항우를 꾸짖었다.

항우가 분노하여 숨겨두었던 활을 꺼내서 유방을 쏘았다.

화살이 유방의 가슴에 명중했지만 유방은 군사의 사기가 떨어질것을 우려하여 발을 붙잡고 소리쳤다.

 

"저 오랑캐놈이 내 발가락을 맞췄구나."

 

항우는 날로 힘들어지는 전세때문에 매우 어려운 형편이었다.

게다가 가장 믿고있던 맹장 용저의 전사소식이 들려오자 항우는 더욱 두려웠다.

 

이때 유방이 화친을 청하는 사자를 보내왔다.

홍구를 기준으로 하여 천하를 반분하자는 제의를 하면서

그 조건으로 유방의 가족을 모두 돌려보내줄것을 요구했다.

가뜩이나 어려운 형편에 마침 잘되었다고 생각한 항우가 그 제안을 승락하고

군중에 억류했던 유방의 가족을 모두 돌려보내고 군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돌아갔다.

 

유방 역시 장안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장량과 진평이 항우의 뒤를 추격할것을 상주했다.

한군은 양하땅으로 돌아 일단 행군을 멈추고 한신과 팽월이 합세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유방이 고릉에 이르도록 한신과 팽월은 오지 않았고 오히려 초군의 역습을 받아

다시 누벽속으로 들어가 참호를 깊이 파고 숨어버렸다.

장량의 계책으로 한신과 팽월을 왕으로 삼는다는 조서를 보내고서야 그들이 합류 하였다.

 

경포와 유가가 함께 초군의 대사마 주은을 찾아가 그를 설복시켜 항우를 배반하게 하여

경포가 구강의 전군을 동원할수 있게 됐다.

 

한왕5년 항우가 해하에서 포위되고 한왕 유방이 제후들과 함께 천하의 승패를 결판내려 하였다.

한신이 제나라에서 30만을 이끌고 왔으며 양왕 팽월과 구강왕 경포가 합세했다.

항우의 군사는 약 10만 이었는데 한신이 먼저 도전 했다가 불리하여 퇴각 하였다.

한나라 군사들이 모두 합세하여 일제히 항우의 군사를 포위하고 항우는 해하에 누벽을 치고 저항했다.

항우의 군사는 식량이 떨어지고 군사의 수도 크게 줄어 사기가 크게 떨어졌다.

 

한신은 항우를 포위하고 있는 군사들을 시켜 깊은 밤에 초나라의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초나라의 노랫소리를 들은 항우는 크게 놀랐다.

"한군이 벌써 초나라를 모두 점령한것인가?

한군에 어찌 이리도 초나라사람들이 많단 말인가?"

 

항우가 밤에 일어나 군막 가운데서 술을 마셨다.

그의 곁에는 항우가 매우 사랑하여 전쟁중에도 항상 데리고 다니던 우미인 이라는 여인이 있었다.

또 군막 앞에는 추 라는 이름의 말이 매어져 있었는데

이말은 항우가 오래전부터 항상 타고다니며 매우 아끼던 명마였다.

 

비분강개하여 감정이 복받친 항우가 술잔을 기울이며 시를지어 노래를 불렀다.

 

力拔山兮氣蓋世 (역발산혜기개세)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온 세상을 덮었는데 

時不利兮騅不逝 (시불리혜추불서) 

시운이 불리하니 오추마는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구나

騅不逝兮可奈何 (추불서혜가내하) 

오추마가 앞으로 나가지 않으니 이를 어찌할거나

虞兮虞兮奈若何(우혜우혜내약하) 

우희여 우희여 그대 또한 어찌할거나

 

항우가 노래를 부르자 우희가 이에 화답했다.

최후를 직감한 우희는 항우에게 정표로 칼을 달라고 하여 그 칼로 목을 찌르고 자결했다.

 

슬픔과 회한에 찬 항우가 눈물을 흘리자 좌우가 모두 함께 울었다.

항우는 다시 오추마에 올라 포위를 뚫고 남쪽으로 달려나갔다.

그때 항우를 따르는 병사는 800여명 이었다.

 

날이 새자 한군의 장수 관영이 항우를 추격했다.

항우가 회수가에 이르렀을때 그를 따르는자는 100여명 뿐이었다.

한군의 기병이 급히 추격하자 항우가 탈출하기 어려움을 판단하고 말했다.

"내가 군사를 일으켜 80여전을 했으나 한번도 패한적이 없다.

이것은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려는것이지 나의 전투능력이 약해서 그런것이 아니다."

 

항우는 마지막 남은 기병 20여명과 함께 전진을 향해 돌진하여 수많은 적군을 베고

한나라의 장수를 참했다.

항우가 한번 눈을 부릅뜨고 소리치자 한군의 장수가 놀라 퇴각해 버리고 말았다.

 

항우가 이들을 거느리고 오강으로 향했다.

오강의 정장이 배를 준비해놓고 기다렸다가 항우를 보고 말했다.

"강동은 협소하지만 사방이 천리라.

역시 왕자의 기반으로 충분합니다.

청컨대 대왕께서는 속히 배에 오르시어 강을 건너십시오.

이곳에는 오직 이 배 한척 뿐이니 적군이 뒤쫓는다해도 강을 건널수는 없을것입니다."

항우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강동의 8000자제를 이끌고 강을 건넜는데 이제 한사람도 돌아오지 못했다.

설사 강동의 부형들이 나를 왕으로 세운다 한들 내가 무슨 면목으로 그들을 볼수 있겠는가?"

 

항우가 다시 정장을 보고 말을 이어갔다.

 

"이 말은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명마인데 내가 5년간 타고다니던 것을 죽일수 없으니

이 말을 그대에게 주겠다.

 

항우는 기병들에게 모두 말에서 내리게 한후 단병으로 한군과 싸웠다.

항우가 혼자서 죽인 한군만도 수백이었으나 항우 역시 몸에 10여군데나 큰 상처를 입었다.

항우가 싸우면서 보니 상대의 기사마가 자신의 어릴적 친구인 여마동 이었다.

항우와 눈이 마주친 여마동이 두려워서 외면하며 손가락으로 항우를 가리키며 옆에있는 왕예에게 말했다.

"이것이 항왕이다."

항우가 여마동에게 말했다.

"그대는 나의 옛 친구이니 내가 그대를 위해 은덕을 베풀겠다.

나의 목에 천금의 상금과 일만호의 봉읍이 걸려있다고 하니 너는 나의 목을 취하여라."

말을 마친 항우가 스스로 칼을 들어 목을 찌르고 자결 했다.

이때 항우의 나이31세 였다.

 

왕예가 항우의 목을 취하였다.

나머지 기병들이 서로 항우의 시체를 차지하려고 달려들어 서로 밟혀 죽은자가 수십명 이었다.

결국 낭중기 양희.기사마 여마동.낭중 여승.양무 등이 각각 항우의 사체중 일부를 차지했다.

다섯명이 항우의 사체를 맞춰본즉 틀림없이 모두 항우의 시신이었다.

그래서 만호의 식읍을 다섯으로 나누어 각각 2000호씩 봉하여 모두 후가 되었다.

 

항우가 죽고 초나라는 모두 한나라에 항복했지만 노나라 만이 끝까지 항복하지 않았다.

한왕 유방이 군사를 내어 노 땅을 도륙하려 했지만 노나라 사람들은 결국 항복 하지 않았다.

마침내 항우의 머리를 가져다가 노나라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항복할것을 권유하자

그제야 노나라가 항복 했다.

 

처음에 초회왕이 항우를 노공에 봉했고 노나라가 최후까지 항복하지 않고 항우를 따랐던 것때문에

한왕은 항우를 노공의 예로 장례지내고 곡성에 매장 했다.

한왕 유방이 항우를 위하여 복상하고 막전에서 곡하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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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한고조와 초패왕의 쟁패가 끝나고 한제국이 개창하게 되었다.

 

한왕이 회군하여 정도에 이르렀다.

한왕이 급히 말을 달려 제왕 한신의 군영으로 돌입했다.

한왕은 한신의 군 지휘권을 박탈하고 한신의 군을 모조리 회수했다.

 

한왕 유방은 사수의 북쪽에서 황제의 자리에 즉위했고 천하는 크게 안정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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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가 낙양에 도읍하고 주연을 베풀어 공신들을 치하했다.

고조가 여러 신하들에게 물었다.

"여러 제후와 장군들은 내가 무엇 때문에 천하를 얻게 되었다고 생각하오?

그리고 항우는 어찌하여 천하를 잃게 되었다고 생각하오?" 
왕릉(王陵)이 대답했다. 
"폐하께서는 오만무례하여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시나 항우는 인자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성을 함락하고 그 땅을 점령한 다음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봉함으로써

천하의 사람들과 함께 그 이익을 같이 누리셨습니다.

그러나 항우는 현명한 사람들은 시기하고 재능 있는 사람들은 미워하며 능력 있는 사람들은 의심하여

싸움에서 승리해도 그 공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지 않고 땅을 얻어도

그 이익을 같이 누리지 않음으로 인해 항우는 천하를 잃은 것입니다."

이에 고조가 말했다. 
"경은 하나만 알지 둘은 모르는 도다

무릇 장막 안에서 계책을 마련하여 천리 밖의 싸움을 승리로 이끄는 것은 내가 장량만 못하고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들을 위무하며 군량을 준비하여 그 공급이 끊기지 않게 하는 것은

내가 소하 보다 못하다.

또한 백만대군을 이끌고 싸우면 항상 이기고 성을 공격하면 반드시 함락시키는 데는

내가 한신만 못하다.

이 세 사람은 호걸 중의 호걸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천하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세 사람을 능히 부릴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항우는 그나마 있었던 범증 한 사람도 제대로 쓰지 못했기 때문에 나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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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국이 창건된 후 장량은 처음에 제의 3만 호에 봉해졌다.

그러나 장량은 겸양히 그것을 사양하고 오직 유 라는 작은 고을에 봉해질것을 청했다.

고조가 장량을 유후에 봉했다.

 

고조가 대공신 20여명은 봉했지만 나머지 공신들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날 고조가 남궁의 복도에서 밖을 내다보니 저 멀리에서 장수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저들이 저곳에서 무엇을 하고있는거요?"

곁에 있던 장량이 대답했다.

"저들은 모반을 계획하고 있는것입니다."

고조가 깜짝 놀라 그 까닭을 묻자 장량이 대답 했다.

"폐하께서 이미 천하를 얻어 천자의 자리에 오르시고 소하.조참등 전부터 친애하던 사람들이

열후에 봉해졌습니다.

남은 자들은 공로도 있지만 죄를 지은것도 있기 때문에 오히려 상이 아닌 주벌을 받지 않을까 하여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천하가 아무리 넓어도 저들을 모두 봉할수는 없을테니

저들은 봉함을 받지 못하면 주살될것으로 생각하고 차라리 모반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것 입니다."

고조가 크게 걱정하며 어찌할지를 물었다.

장량이 다시 대답 했다.

"폐하께서 가장 미워하는 신하가 누구입니까?"

"옹치요.

옹치는 옛부터 수없이 나를 배반 했고 나를 몹시도 괴롭혔소.

그러나 옹치가 공로 또한 크기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내가 옹치를 죽일지,

아니면 상을주어 제후로 봉할지 고민중이오."

"그러면 지금 당장 옹치부터 제후로 봉하십시오.

옹치가 봉을 받는것을 보면 군신들은 각자 스스로 안정될 것입니다."

고조가 서둘러 옹치를 후로 봉하고 승상과 어사대부를 독촉해서 군신들의 공적을 빨리 확정짓도록 명했다.

군신들이 모두 기뻐하며 말했다.

"폐하의 원수인 옹치조차 후가 되었는데 우리는 더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천천히 기다려도 될것이다."

 

장량은 고조에게 청하여 관중으로 도읍을 옮기도록 했다.

 

장량은 원래 잔병이 많았다.

도인술을 행하며 곡식을 먹지 않고 양생술을 행했다.

장량은 고조 붕어후에 8년후 죽었다.

시호를 문성후 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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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국 창건후에 소하는 찬후에 봉해지고 8천호의 식읍을 받았다.

수많은 공신중에 소하의 공로가 최고였다.

고조가 소하를 1등공신에 봉하려 하자 여러 공신들이 말했다.

"저희는 폐하와함께 전장을 누비며 시석을 무릅쓰고 성을 공략했으며

비바람을 맞으며 땅을 공략 했습니다.

그러나 소하는 지금까지 전쟁터에서 말에 땀이나게한 공로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소하가 1등이라니 이것이 어찌된 일입니까?"

고조가 말했다.

"사냥을 할때 토끼를 잡는것은 개 이지만 그 개를 놓아 지시하는것은 사람이다.

제군들이 성을 공략한것은 토끼를 잡은것이고

소하로 말하면 그 토끼를 잡도록 개들을 다스린것이니 그 공이 사람에 해당한다.

또한 제군들은 혼자 몸으로 나를 따라 전장에 나갔지만

소하는 자기의 일족을 한사람도 빼지 않고 모두 전쟁에 참가시켰다.

그러니 그 공을 잊을수 없는것이다."

군신들이 다시 말했다.

"평양후 조참은 몸에 70여곳의 상처를 입으며 성을 공격했으니 그 공로가 으뜸입니다.

마땅히 조참이 제1공로에 올라야 할것입니다."

그러자 관내후 악군이 나서서 말했다.

"군신들의 말이 모두 틀렸습니다.

조참의 공이 크다하나 그것은 일시의 공로입니다.

폐하께서 항우에게 패하여 군사를 잃고 도주한것이 한두번이 아닌데 소하는 그때마다 관중에서

군사를 모아 폐하의 군사를 보충 했습니다.

폐하의 군사들이 군량이 떨어졌을때마다 소하가 육로와 수로를 통하여 군량을 공급함에

항상 부족함이 없도록 했습니다.

소하는 폐하가 안계시는 관중을 잘 지키고 보전하여 폐하의 뒤를 받치고 후원하며 폐하를 기다렸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만세의 공로입니다.

지금 조참과 같은 인물을 백명을 잃는다 해도 소하 하나를 얻는것만 못할것이니

소하의 공로가 으뜸이고 조참이 그 다음 입니다."

고조가 이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여 소하를 1등공신으로 정했다.

소하는 검을 차고 신발을 신은채로 전상에 오르며 조정에 들어가서도 종종걸음으로 걷지 않아도 되는

특전을 받았다.

고조가 소하에게 특별히 2천호를 증봉했다.

그것은 지난날 고조가 요역으로 패현을 떠나 함양으로 갈때

소하가 전별금을 남들보다 200전을 더 주었기 때문이었다.

회음후가 모반 했을때 소하가 계책을 내어 회음후를 주살 하였다.

 

소하가 공로가 높아지자 고조가 소하를 경계하게 되었다.

그때 한신과 팽월이 차례로 모반을 했다가 주살되었다.

또다시 경포가 모반하여 고조가 친히 정벌하러 떠나자 소하는 일부러 백성들의 토지를

강제로 헐값에 사 들였다.

스스로 몸을 더럽혀서 고조의 의심을 풀려는 계책 이었다.

 

고조가 붕어한후 효혜제때 소하가 병들어 눕게 되었다.

효혜제가 소하를 문병하러 친히 소하의 집을 찾았다.

"승상에게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그때는 누가 그대를 대신할수 있겠는가?"

"신하를 아는것은 군주이상 없습니다."

"조참은 어떻겠는가?"

"폐하께서는 훌륭한 재상을 얻으셨습니다.

신은 지금 죽더라도 걱정이 없습니다."

원래 소하는 조참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에 공사를 구분하여 소하가 조참을 반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참이 상국이 될수 있었다.

효혜제 2년 상국 소하가 죽었다.

시호를 문종후 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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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국 창건 후에 고조는 제왕 한신을 초왕으로 이동시키고 장자 유비를 제왕에 봉하였다.

그와 함께 조참을 제나라의 상국으로 임명하였다.

고조 6년에 조참에게 할부를 갈라 평양후로 봉하고 자손에게 전할수 있게 하였다.

평양의 일만호를 식읍으로 봉했다.

조참이 제의 상국으로 있을때 제 도혜왕은 나이가 어려서 조참이 제나라의 정치를 도맡아 다스렸다.

조참은 제의 여러 학자를 초빙하고 황로의 학문을 받아들여 주로 청정을 존중했다.

조참은 9년간 제의 승상으로 있으면서 황로의 도를 실천하여 제나라는 크게 안정이 되었다.

 

효헤제2년에 소하가 죽자 조참은 가신들에게 명했다.

"속히 행장을 꾸려라.

나는 이제 조정으로 들어가 상국이 될것이다."

며칠후 조정에서 사자가 와서 조참을 소환 했다.

 

조참이 미천했을때는 소하와 사이가 좋았지만 장상이 된이후에 둘 사이에 틈이 생겼다.

그러나 소하가 죽을때 추천한것은 오직 조참 이었다.

 

조참이 상국이 되었으나 소하가 정해놓은것을 한가지도 변경하지 않고 그대로 행했다.

조참은 중후하고 덕있는자를 중용하고 엄하고 혹독한 자를 배척했다.

 

조참은 정무를 돌보지 않고 매일 독한 술만 마셨다.

군신들이 조참에게 정사에관하여 말을 하려하면 조참이 그들에게 독한 술을 마시게 하였다.

그들이 다시 무언가 말을 하려하면 조참이 또 술을 마시게 하였기때문에 그들은 항상 술에 취하여

끝내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못한채 돌아가고 말았다.

일반관리들이 근무중에 술에 취해 방가하면 그들을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술을 가져다가 함께 마시며 고성방가했다.

사소한 실수는 나무라지 않고 덮어주었기 때문에 관청에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효혜제가 조참이 술만 마시고 정사를 돌보지 않는것이 이상하여 조참의 아들 조굴에게 말했다.

"그대는 상국에게 가서 정사는 돌보지 않고 술만 마시는것은

어린 황제를 우습게 알기때문이 아니냐고 물어보라.

그러나 내가 시켰다는 말은 하지 말라."

조굴이 그대로 조참에게 말을 했더니 조참이 노하여 조굴의 볼기를 200대나 쳤다.

조참은 이것이 효혜제의 뜻이라 생각하고 궁으로 들어가서 관을 벗고 황제에게 사죄했다.

그리고는 황제에게 간했다.

"폐하께서는 성무하고 강인하다는 점에서 고조와 비교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짐이 감히 어찌 고조와 비교할수 있겠소?"

"그러면 소하와 저를 비교하여 누가 더 능력있고 현명하다고 생각 하십니까?"

"아무래도 그대보다는 소하가 나을것 같소."

"폐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고조께서 소하와 함께 천하를 평정하시고 법령을 정하여 명백하게 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니 폐하께서는 옥죄에 편안히 앉아 계시고 저희 신하들은 맡은바 직분을 지켜 법령을 준수하기만 한다해도 큰 과오는 없을것입니다."

효혜제가 그말을 듣고 기뻐했다.

조참은 한의 상국이 되어 3년만에 죽었다.

시호를 의후 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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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국 창건후에 진평은 호유향에 봉해졌다.

한신이 모반했을때 진평이 계책을 내어 천자가 순행한다고 속여 한신을 사로잡았다.

진평은 항상 호군중위로 고조를 따라 전장으로 나갔다.

한왕신이 배반했을때 고조가 친정하여 흉노땅까지 갔다가 백등산에서 포위되어

7일간 식사도 하지 못하는 위기에 빠졌을때 진평이 계책을 내어 무사히 빠져나올수 있었다.

진평은 진희와 경포를 칠때도 여섯차례나 기계를 내어 여섯번 증봉을 받았다.

그러나 그 기계의 내용은 비밀에 붙여졌기때문에 아무도 그 계책의 내용을 알지 못했다.

 

연왕 노관이 모반했을때 번쾌가 노관을 정벌하러 갔는데 그의 죄를 고해바치며 헐뜯는자가 있었다.

고조가 노하여 진평과 주발을 보내어 번쾌의 목을 베어오라고 명 하였다.

진평과 주발이 역전거를 타고 번쾌를 잡으러 가면서 상의 했다.

"번쾌는 폐하의 친구이며 공로또한 높다.

게다가 그는 여후의 동생 여수의 남편이니 매우 존귀한 신분이다.

폐하께서 노하여 지금 그를 베려 하나 반드시 후회 하실것이다.

차라리 죽이지 말고 사로잡아서 폐하께 바치면 폐하께서 알아서 처리하실것이다."

두사람은 번쾌의 군영 앞에가서 천천히 번쾌를 불러냈다.

번쾌가 조칙을 받고 양손을 뒤로하여 결박되고 함거에 태워졌다.

주발이 번쾌를 대신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장군이 되었고

진평은  일부러 이곳저곳을 경유하며 시간을 끌어 될수있는대로 천천히 장안으로 향했다.

진평이 장안에 도착하기 전에 고조가 붕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진평은 여태후와 여수의 분노와 참소를 입을것을 두려워하여 번쾌를 실은 함거보다 먼저

역전거를 달려 장안으로 향했다.

진평은 궁으로 들어가 슬피 곡을 한 후에 다른사람들이 여후에게 참소하지 못하도록

궁궐내에서 숙위하며 자리를 지켰다.

나중에 번쾌가 도착한 후에야 여후가 그를 용서하고 작록과 봉읍을 회복했다.

조참이 죽은후 진평이 죄승상이 되었다.

효혜제가 죽은 후에 여후가 여씨의 일족을 세워 왕으로 삼으려할때 진평은 짐짓 반대하지 않고

여후의 뜻을 따랐다.

번쾌의 아내 여수가 여러번 진평을 참소했으나 진평은 여후의 뜻을 잘 따랐기 때문에

자리를 보전할수 있었다.

그러나 여후가 붕어한 후에 강후 주발과 함께 여씨일족을 모조리 주멸하고 효문 황제를 세웠다.

효문제가 황금 1천근을 하사하고 3천호를 증봉했다.

진평은 한나라의 승상이 되어 2년후에 죽었다.

그 시호를 헌후 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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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후 주발은 고조가 붕어한후에 한의 태위가 되었다.

고후가 여씨의 일족을 왕으로 세우고 유씨의 한나라를 여씨의 한나라로 바꾸려 할때

여씨의 일족을 왕으로 세우려 했다.

한의 좌승상 왕릉이 반대하였으나 진평과 주발은 그것을 반대하지 않았다.

왕릉이 그들을 꾸짖으며 말했다.

"고조께서 백마를 잡아 여러 신하들과 맹세 하기를 유씨 이외에 다른사람이 왕이 되면

천하가 협력하여 그를 치라 하셨는데 그대들은 벌써 그일을 잊었는가?

태후가 스스로 황제가 되어 여씨를 왕으로 삼으려 하는데 그대들은 모두 모른척하고

여후의 비위만 맞추고 있으니 장차 지하에 가서 어찌 고조를 뵐수 있겠는가?"

진평과 주발이 조용히 대답 했다.

"지금 면전에서 과실을 지적하고 조정에서 간쟁하는것은 우리가 그대만 못하다.

그러나 한의 사직을 보존하고 유씨의 자손을 안정시키는것은 그대가 우리만 못하다."

왕릉이 이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여후가 여록과 여산등 자기의 일족을 왕으로 세우고 모든 군권을 여씨가 장악하게 하였다.

진평은 승상이었지만 정사를 볼수 없었고 주발은 태위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군문에 들어갈수가 없었다.

이래서 주발과 진평이 상의하여 드디어 여씨일족을 주멸하고 효문황제를 세웠다.

주발은 한나라의 승상으로 있다가 자신의 봉지인 강 땅으로 돌아갔다.

후에 모반의 혐의를 받아 투옥되기도 했지만 효문제의 공주와 박태후가 힘써 변호해주어서

석방되어 다시 강땅으로 돌아갔다.

강후 주발은 효문제 11년에 죽었고 그 시호를 무후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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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항우와 유방의 일대기와 함께  한의 5공신에 대해 젊은시절과 말년을 구분하여 알아보았다.

 

고조 유방은 시골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타고난 천성이 호방하여 주변의 사람들과

널리 교우관계를 맺었다.

어릴적부터 그 주변에서 친하게 지냈던 인물들과 함께 천하를 경영하여 마침내 한제국을 창건할수 있었다.

애초에 유방이 처음부터 두각을 나타낸것도 아니고 뛰어난 능력이 있었던것도 아닌데

그러한 인물이 수많은 인걸을 얻어 황제까지 되었으니 그의 천운이 참으로 기이하다.

사람이 보통 어려서부터 주변의 많은 인물을 친구로 사귀고 성장하여 서는 더욱 많은 교유를 하게되는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인데

어찌하여 고조의 친구들과 주변 인물들은 하나같이 출장입상의 인걸들이었던가?

요즘처럼 명문 학교를 나와서 그 주변이 모두 공부를 잘하고 출세하는 상황도 아닌데,

가뜩이나 고조는 미천한 집안의 자식이었고 그 본인 또한 그저 놀고 먹는 건달에 불과했을 뿐인데

그 주변이 요즈음의 명문 학연이 형성됐을리도 만무하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고조가 그 많은 인물을 얻어 황제의 자리에 까지 올라갈수 있었는가 하는 질문의 답은

결국 천명' 이라는 말 밖에 없는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반드시 그 이유가 천명에만 있지는 않을것이다.

고조에게는 매우 뛰어난 친화력이 있었고 상하를 가리지 않는 소탈함으로 사람을 대하였으며

순간순간마다 발휘되는 기지또한 탁월했던것으로 보인다.

한사람의 무력보다는 여러사람의 능력을 알아보고 그 인걸들을 중용할줄 알았던 유방이

항우를 누르고 천하를 차지할수 있엇던것은 어쩌면 당연한일이라고도 할수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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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진제국 이후의 형세와 한초쟁패기의 이야기를 대략 알아보았다.

내용이 워낙 방대하여 빠뜨린 이야기도 적지않고

또한 필자가 과문하여 알지 못해서 이야기 하지 못한 내용도 매우 많다.

그러나 전문가의 지식이나 문장가의 필력은 없더라도 순수 아마추어로서의 열정만큼은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여 감히 위대한 사마천의 역사서인 사기를 논하기를 부끄러워 하지 않고

없는 지식으로 이처럼 중언부언하였다.

 

필자의 무지함을 채워주고 바로잡을수있는것은 독자제현이 이 글을 읽고 관심을 일으켜

스스로 사기를 읽고 연구하는것 뿐이다.

 

역사를 읽는다는것은 지나간 과거를 되새겨 오늘을 경계하고 내일을 준비하는것이니

이것이야말로 세상을 바로세우는 첫걸음일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여러분이 세상의 참 주인이 되어 모두가 어둠을 밝히는 하나의 촛불이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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