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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된 사나이.1.
게시물ID : phil_1578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문명탐구자
추천 : 0
조회수 : 364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7/08/31 17:3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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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내가 군에서 이등병으로 생활하던 시기에 부대 인근에서 발생한 산불로 많은 지뢰들이 터져나갔다. 지뢰가 펑펑 터져나가는 가운데 불을 끄기 위해  수통에 물을 담아 사지를 벌벌 떨며 이를 악물고 견뎌야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경찰, 소방관들이 산불을 끄려다 귀한 목숨을 잃어야만 했다. 일병 시절에는 대홍수로 또 많은 장병이 목숨을 잃었고, 대홍수가 있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잠수함을 통해 무장공비가 침투하였다. 

얼핏 들으면  영화같은 이야기다. 허나, 이는 내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90년대 중반에 실제로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병장 때 본 신병 한 명은 자대배치 받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넋을 잃은 광인이 되어 다시 나와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어느새  다들 예민하고 포악하며 잔인해져 있었다. 후방에 근무하던 어느 중위 한 명이 우리들의 군기가 서슬퍼렇게 바짝 선 모습에 정말 깜짝 놀라 그 사실을 실토한 일도 있었다. 소령이 중대장을 사병들이 보는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구타하고 대대장이 한 중대장을 폭행해 팔을 부러뜨린 일도 있었다. 뇌물로 부대장과 간부의 비리를 덮은 일도 있었다. 사람이 죽어나가도 사람이 미쳐버려도 모든 것이 미화되고 묻혀졌던 시절 어느 특정 부대 안의 이야기다.

광인이 되어버린 그 신병이 미치기 전에 보여준 해맑은 웃음이 기억 난다. 그는 왜 광인이 되어야만 했을까? 그는 왜 그렇게나 겁에 질려버린 것일까? 그는 대체 왜 그렇게나 사지를 발작적으로 바들바들 떨어야만 했을까? 총기 어렸던 눈동자는 어째서 생기를  잃고 썩은 동태 눈깔이 되어버렸을까? 우리는 우리도 이 참혹한 시기를 견뎌냈으니 너도 견뎌야한다고. 너도 그 어떤 일을 겪든 입닥치고 그저 참고  또 참아내야만 한다고 그에게 무의식 중에 강요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에게 그저 재미로 돌을 던졌으나 그에게는 결코 장난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에게 현실은 너무나도 가혹해서 도저히 맨정신으로는 버티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신교대에서 군법무관실을 선택했더라면 결코 겪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인간 본성에 관한 다양한 사건들을 나는 나를 통해 또 타인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다. 

 비록 같은 중대 소속은 아니었지만 광인이 되어버린 어느 이등병이 뇌리를 스쳐간다. 아마도 가수 김광석에 대한 타살의혹을  제기한 기사를 내가 접했기 때문이리라. 

그 신병을 광인으로 만든 것은 적응하지 못한 그 자신일까? 아니면 고의를 지닌 특정한 장병들일까? 병장 조차 사지가 뻗뻗하게 굳을 정도로 숨막히는 긴장감을 조성한 그 부대 자체일까? 이도저도 아니라면  그 시대나 우리 모두일까? 그 누가 이 사건에서 진정 자유로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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