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디난 황태자 부부
사라예보 사건의 주범 민족주의자 가브릴로 프린치프
세계 1차 대전의 발발 이유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제가 예전에 썼던 글에서 발췌)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의 페르디난 황태자 부부가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를 방문하게 됩니다.
보스니아는 1908년 이후로 오스트리아 ' 헝가리 제국의 영토가 된 곳이지만, 그 지역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세르비아인들은 오스트리아로부터 독립해 세르비아에 속하길 원하고 있었죠.
이 날은 세르비아 민족행사가 있는 기념일이었고, 퍼레이드 도중에 민족주의자 대학생이 쏜 총에 맞아 으앙주금합니다. 이것을 '사라예보 사건'이라고 명명하죠
오스트리아 ' 헝가리 제국: 19세기 후반에 성립된 국가 체제. 오스트리아는 1867년, 헝가리의 귀족과 조약을 맺어 헝가리 왕국의 건설을 허락하였다.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가 그 국왕을 겸임. 두 나라는 군사, 외교, 재정을 공동으로 하지만, 각각의 의회와 정부를 가지고 독립된 정치를 함.
이런 이유로 인해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됩니다 .
오스트리아 ' 헝가리가 나븐시키들 하면서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를 공격함.
오 ' 헝 베오그라드 공격. ▶ 세르비아 지원을 위해 러시아가 개입. ▶ 오 ' 헝 지원을 위해 독일이 개입
▶ 독일, 러시아한테 왜 나대냐고 선전포고.(8월 1일) ▶ 독일을 개박살내기 위해 러시아를 지지하며 프랑스가 개입.(8월 3일) ▶ 독일이 주도권 쥐는 걸 막기위해 영국 개입.(8월 4일) ▶ 양측의 장기간 참호전 배틀 ▶ 유틀란트 해전에서 재해권을 확보하지 못한 독일은 1917년 2월 무제한 잠수함 작전에 돌입한다. 무제한 잠수함 작전이란 경고없이 해역을 지나가는 모든 선박을 공격하는 작전임 근데 그 속에 미국의 상선이 섞여 있었음 으앙 독일 사망 ▶ 의도인지 의도하지 않은건지 모르겠는데 이것을 빌미로 미국도 참전미(군수물자를 대주며 이윤을 챙기고 있긴 했지만, 직접적으로 전투에 참가하진 않았다.) ▶ 독일이 서부 전선에서 밀리기 시작하고, 1917년 3월 러시아는 혁명이 일어나 황제가 물러나고 레닌 중심의 혁명정부(볼셰비키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쟁에서 빠진다. ▶ 불가리아 항복. ▶ 오스만 제국(지금의 터키) 항복. ▶ 오 ' 헝 항복. ▶ 독일 항복. ▶ 베를린에 일어난 혁명으로 황제 빌헬름 2세가 물러난다.
세계 1차 대전은 참호전의 지옥이었는데 이 참호전이 4년여간이나 지속됐다고 함. 참호전은 나폴레옹형이 자주 썼던 전법이기도 하고 19세기 후반 가장 널리 사용된 전법이기도 함.
이 전법에는 돌격 데마시안!! 보병과 후바방을 책임진다. 인간 성기사 뿌뿌뿡! 포병이 팀을 이뤄 싸우게 된다 Maxim이라는 무기회사에서 기관총을 처음 만들어 내는데, 이 기관총의 등장으로 전쟁의 양상이 확 뒤집힘. 가히 혁명적인 무기라고 짱짱 엄지를 올릴 수 있을 것임. 이 기관총은 인류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무기로 기록되고 있는데, 기관총을 가지고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인들을 학살하였으며, 동학농민운동 당시 일본군이 기관총으로 우리 조선민중들 을 학살하기도 했음.
여기서 1차 대전의 재밌는 일화 하나를 말하겠음. 바로 크리스마스 일화인데 1차세계대전이 일어나는 1914년 독일군과 프랑스군이 크리스마스 신사파티라 하여 이날 크리스마스 만큼은 서로 싸우지 말고 참호에서 나와 신사파티를 하자는 가히 신사적인 이야기임. 하지만 이것도 전쟁 초반의 에피소드일뿐 참호전이 1년 이상 지속되면서 더이상 크리스마스 파티할 기분이나 여유가 없었음.
또 하나의 흥미로운 일화를 소개해보겠는데, 이건 영국군 특공 연대장 존 차터리스 장군이 1931년 발표한 회고록을 참고해보겠음둥
"독일군에게 포위돼 전멸을 앞두고 있었는데, 하얀 말을 타고 불타오르는 칼을 휘두르는 기사들이 나타났다. 그들을 보고 우린 굉장한 희망을 갖게 됐다."
그렇다. 이 존 형이 미친 사람이 아니라는 가정을 두고 이 말이 사실이라면 현대식 무기가 만연하던 19세기 전쟁 중에 말 탄 칼쟁이 기사들이 나타나 총잡이들과 싸웠다는 것이다. 이후에도 불타오르는 검의 하얀 말을 탄 '전장의 천사들' 을 봤다는 목격담이 이어졌으나 목격담을 진술한 사람들 대부분이 영구인이었고, 이것은 화학 무기를 마구잡이로 사용했던 영국군측이 만들어낸 거짓부렁이었다. 위에 회고록을 썼던 존 카터스 형은 피노키오였던 것임
짧게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은 총 4년여 간의 기록 끝에 막을 내리게 된다.
전쟁 참여 대표국들의 간략한 피해보고로써는
영국 90만 명의 사망자 발생. 690억 달러의 군비소모.
프랑스 138만 명의 사망자 발생, 472억 달러의 군비소모.
미국은 5만 명의 사망자 발생. 400억의 군비소모.
러시아는 170만 명의 사망자 발생, 327억 달러의 군비소모.
이탈리아는 46만 명의 사망자 발생, 236억 달러의 군비소모.
오스트리아 ' 헝가리는 80만 명의 사망자 발생. 382억 달러의 군비소모.
독일은 160만 명의 사망자 발생 709억 달러의 군비소모.
총 전사자 수 9백만 명 이상.(천 만여명 이상)
이후 국제 연맹이 창설됨. 국제 연맹이란 국가끼리 모여 "야 씨발 이제 싸움 ㄴㄴ해. 박 터지겠음 " 하는 기관이다. 1945년 창설 돼 1946년에 해체됐다. 속전속결
여기서 국제 연맹은 훗날 2차 대전 이후의 세계 연합(UN)의 기초를 닦은 기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