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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보는 훌레구의 서방정벌 - 네번째
게시물ID : history_1570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Orca
추천 : 6
조회수 : 1009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4/05/10 17:26:10

바그다드를 함락시키고 5백년간 이어지던 아바스 칼리프조를 멸망시킨 훌레구는 하마단 루트를 이용하여 아제르바이잔 방면으로 군대를 북상시켜 잠시 동안 휴식을 취했습니다. 동시에 훌레구는 앞으로 이 지역을 다스릴 새로운 왕국의 수도를 이 지방 북부에 정했습니다. 그 도시는 아제르바이잔 지역의 도시인 타브리즈와 마라게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유목적인 것에 익숙한 훌레구는 늘 도시 근처에서 이동을 멈추었습니다.


바그다드 함락은 이슬람 세계를 공포에 빠뜨리기에 충분했습니다. 모술의 늙은 아타벡 바드르 웃 딘 룰루는 명령대로 성벽에 바그다드 대신들의 목을 내거는 것 뿐만 아니라 8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마라게에 훌레구의 거영지로 입조하러 왔었습니다. 그리고 파르스의 아타벡인 아부 바르크는 바그다드 함락을 축하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 사아드(sa'd)를 보냈고, 이와 동시에 카이 카부스 2세와 킬리치 아르슬란 4세도 훌레구의 거영지로 왔습니다. 게다가 안티오크-트리폴리의 왕자 보헤문트 6세(Bohemund Ⅵ)와 위대한 살라딘이 세웠지만 이 시기에는 시리아 일대에서 명맥만을 유지하던 아유브 왕조의 술탄 안 나시르 유숩(an-Nasir Yusuf, 1236~1260)은 1258년 아들 알 아지즈(al-Aziz)를 훌레구에게 보내 신례를 표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신례의 표시에도 불구하고 훌레구는 대칸 뭉케의 명에 따라 서부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를 정복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훌레구의 시리아 원정은 아유브 왕조의 작은 집안인 알 카밀 무함마드(al-Kamil Muhammad)의 소유인 디야르바르크의 마이야파리킨(Maiyafariqin) 아미르령에 대한 국지적인 원정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훌레구는 그루지아인 하산 브로쉬 휘하의 그루지아-아르메니아 혼성군단의 지원을 받는 몽골 분견대로 마이야파리킨을 포위하고 결국에는 함락시켰습니다. 알 카밀은 자신의 살이 찢겨 죽을 때까지 자신의 입에 쑤셔 넣은 고문을 받다 죽었으며, 몽골군은 창끝에 그의 머리를 꿰고 알렙포에서 다마스쿠스까지 시리아 이슬람 지역의 큰 도시등를 가수와 고수들을 앞장세우고 의기양양하게 통과했습니다. 마이야파리킨 아미르령의 이슬람 주민들은 대부분 학살당했습니다.


마이야파리킨 공방전이 벌어지는 것과 함께 훌레구는 시리아 정복을 신속하게 진행시켰습니다. 1259년 9월 몽골군은 아제르바이잔을 나와 시리아를 향하여 행군했습니다. 몽골군의 전위부대는 나이만족의 키투 부카가 지휘했으며 우익은 바이주와 송코르가 지휘하였고, 좌익은 수군작이 그리고 중군은 훌레구가 아내 도쿠즈 카툰을 데리고 몸소 지휘하였습니다. 쿠르디스탄을 경유해 알 자지라(al-Jazira)로 내습해 가면서 훌레구는 니시빈(Nisibin)을 취하고 하란(Haran)과 에데사의 항복을 받은 뒤 몽골에게 저항한 세이한(Seyhan)을 철저하게 파괴하였습니다. 이어 비레칙(Birecik)을 점령하고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 멘비즈(Menbij)를 약탈하고 당시 난공불락을 자랑하는 알렙포를 포위했습니다.


1260년 1월 18일, 훌레구가 지휘하는 몽골군은 헤툼의 아르메니아군, 보헤문트 6세의 프랑크 증원군(보헤문트 6세는 재빨리 몽골에게 항복하였습니다. 그리고 보헤문트 6세는 파문당했다고 합니다.)과 함께 아유브 조의 늙은 군주 투란 샤(Turan Shah)가 지키는 알렘포에 대한 공성전을 개시했습니다. 몽골군은 1월 24일 입성하여 도시를 점령하였으며 2월 25일에는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성채를 함락시켰습니다. 이후 훌레구의 말 한마디가 끝나는 무렵인 2월 30일까지 6일 동안 알렙포는 철저하게 약탈당했습니다. 알렙포가 함락되자 하마(Hama)는 싸우지도 않고 항복했습니다. 아유브 왕조의 술탄인 안 나시르 유숩은 알렙포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집트로 달아났습니다. 다마스쿠스는 안 나시르 유숩을 비롯한 수비자들에게 버림받고 미리 투항했습니다. 1260년 3월 1일 키트부카가 점령군 군단을 거느리고 아르메니아 국왕과 보헤문트 6세와 함께 다마스쿠스에 도착했습니다. 다마스쿠스의 통치권은 세 명의 페르시아 서기에게 조력을 받는 몽골 총독의 손에 넘어갔고 저항하던 성채는 4월 6일 항복하였고, 총독은 훌레구의 명에 따라 키트 부카가 손수 목을 베었습니다.


그 뒤 3주 동안 키트 부카는 시리아 지역을 완전히 정복했습니다. 사마리아(Samaria), 가자까지 몽골군이 진격하였고 술탄 안 나시르는 빌카스(Bilqas)에서 포로가 되어 아즐룬의 수비대의 항복을 강요하는 데 이용당한 뒤 훌레구에게 보내졌습니다.


*출처: 르네 그루쎄 著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스기야마 마사아키 著 ‘몽골 세계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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