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님 닉언급해도되나
자매복지원님께서 인정하신 백제의 식량생산량이 일본보다 많다고 하셨죠
고대의 국력은 곧 인구이고 식량 생산량이라는것은 알고계시죠
그럼 인구의 증가의 계기가 된건 어떤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선진문물을 갖고있던 백제의 농경 기술과 바로 철제농기구 사용이죠.
심지어 가야에서도 철기를 수입하던 야마토에서 농업생산량의 우위를 가질수있었을까요? 다른 이유가 아니라?
야마토의 4세기 고분에서 출토되는 청동기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과거 연나라가 고조선을 쳐발쳐발했던건 알고계시죠?
그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철제무기의 사용입니다.
청동기의 넘사벽 철제 무기이죠. 하지만 철이라는것을 주조하기 쉽지가않죠. 기술의 차이인데 문화적으로 뒤떨어져있던 야마토에서 중국과 한반도의 철기 기술을 따라갈수있었을까요?
상식적으로 5만명대 1만명의 싸움에서 5만명은 칼을 사용하고 1만명은 총을 사용하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거같습니까?
총과 칼만큼의 차이는 너무 오버한다고 생각하시나요? 하지만 청동기와 철기는 그만큼 차이가 있어요. 철제 갑옷을 입은 병사들을 청동기무기로 살상이 불가능하며 철제무기는 쉽게 청동기무기를 파괴시키고 살상력이 뛰어나지만 청동기는 살상력 자체가 거의 없어지는거죠.
뿐만아니라 전투의 기병의 존재는 전투의 핵심이라고 할수있는데 야마토의 대규모 기병 운영한 기록이 있나요? 최소 삼국은 만단위의 기병을 운영가능하였습니다.
그럼 왜 기병과 철기가 발달한 신라가 일본의 왜구에게 쳐발리고 다니냐구요?
과거 백제 가야 일본은 동맹을 맺고 신라를 침략한건 아시나요?
신라의 주병력들은 가야와 백제의 본군을 막는 사이 일본의 5만명은 신라의 수도를 공격 그다음은? 성공적으로 금성을 접수하였나요? 못하였죠
주병력이 빠진 신라의 수도를 무려 5만명의 군대를 이끌고도 점거하지 못하였죠. 이건 어떤의미일까요?
동북아의 강대국 야마토라구요? 우습네요. 야마토시대의 영토를 말씀하시는데
야마토는 과연 일본의 전역을 지배하였을까요?
단순히
뿐만아니라 야마토는 정말 강력한 중앙 집권체제였을까요?
쉽게 풀어 말씀드리면 삼국지아시죠?
그 삼국지의 오나라가 수비는 기가막히게 잘하지만 영토확장에는 항상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주죠
이유가 뭐일것 같습니까?
오나라는 중앙 집권체제이지만 호족 중심의 군대 운영을 하였죠 즉 중앙군이 전무 하였어요. 그만큼 대규모의 전투때 명령의 혼선을 생기며 부대별 규합이 제대로 되지않았습니다.
야마토의 생성을 볼까요?
일본은 4세기가 넘어가면서 인구 증가율이 급격히 신장하는데 이때 필수적으로 있어야하는 시대적 상황은 한반도의 삼국처럼 피터지는 싸움이 없어야 한다는 전제가 붙어요
몇만명이 뒤엉키는 전쟁이 없어야 가능한 인구증가율인데 일본의 첫번째 통일국가라고 보는 야마토는 정복으로 이루어진걸까요 호족의 규합으로 이루어 진것일까요?
중앙 집권이 약했다는 또다른 근거는 소가씨의 이야기를 들수있는데 야마토정권을 들었다 놨다하는 백제의 소가씨들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뿐만아니라 백제 동성왕의 일화를 보면 그당시 일본과 백제의 혼인척 관계도 예상할수있수도있지요.
백제의 멸망과 함께 원군 5만명을 파병하였지요
백강구의 그 전투 그런 병림픽은 처음봅니다. 과거 해전이 현대 해전과 양상이 전혀다르죠.
단순 이동 상륙 또는 해상전투에서는 배끼리 부딪혀서 백병전 양상을 띄게되는데
백강구 전투는 어떻게 진행된지 보고오셨나요? 그런 병림픽은 처음봅니다.
해양국가? 그렇게 잘나신 해양국가에서 전투선이아니라 단순 병력이동 선박으로밖에 이용하지 못하나요?
그럼 임나일본부의 근거를 가져와보시죠 이젠
임나 4현의 위치는 100년사이에 2번이나 바꾸며 번번히 까였죠
사료라고는 딸랑 판타지물 일본서기 하나
일본적역을 통치하지도 못하고 도래인들에게 휘둘리며 심지어 철기까지 수입에만 의존해야하고 중국 문물좀 받아보겠다고 빌빌거리던 야마토가 위대했다라는건....
그냥 일본이 좋다고하세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것을 테클걸생각은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