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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은인 괴링
게시물ID : history_1567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모카초코
추천 : 15
조회수 : 2129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4/05/09 12:00:24
"괴링"

누구나 한번쯤 들어 보셨을 그 이름 괴링입니다. 

형 괴링.jpg
<헤르만 빌헬름 괴링>


나치독일의 2인자로 게슈타포를 창설했으며 초기 나치돌격대의 지휘관이자 나치공군의 총사령관이기도 했던 괴링

사실상 제국사냥감의 자리까지 겸직하며 "독일에 날개달린 모든것은 나의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는 괴링

유대인 학살을 주도하고 자국군을 시원하게 말아드신 병신크리의 대명사 괴링입니다.(응?)

하지만 이런 헤르만과는 반대로 유대인들을 구하는데 힘쓴 의인이 괴링家이 있다면 믿으실라나요..ㅎㅎ

사실 괴링家는 상당한 콩가루 집안입니다. 이번 글의 주제가 될 사람 외에도

괴링의 성(姓)을 가지고 독일폭격에 참가했던 사람도 있는 등 의외의 인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 소개해 드릴분은 바로 "알베르트 괴링"입니다.

괴링 독사진.jpg
<나치독일의 의인 "알베르트 괴링">

알베르트 괴링은 형과는 다른 인물이었습니다. 

1차대전 독일 공군의 에이스로 독일 최고훈장을 수훈받고 정치에 관심을 가져 히틀러와 나치 정권을 위해 

노력한 형과 달리 동생은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영화계에 생업을 둔 그는 상대적으로 평범한 인생을 보냅니다.

하지만 나치가 집권하면서 알베르트는 나치의 반유대정책과 폭력성을 경멸하고 혐오하게 됩니다.

이런 알베르트에 대한 나치에 대한 태도는 다음과 같은 일화에서 잘 나타납니다.

1962년 오스트리아 시나리오 작가 에른스트 노히바흐가 한 주간지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빈의 한 상점에서 그의 노모가 수모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나치군이 75세가 된 그의 노모에게 "더러운 유대인"이라는 팻말을 건 채로 상점의 진열대에 앉아 있게 한것이죠.

Sobota.jpg
<알베르트 괴링>

그떄 알베르트가 괴링의 성이 기입된 그의 신분증으로 노모를 풀어주게 합니다.

이렇듯 나치의 유대정책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는 곧 독일을 떠나 오스트리아로 향합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반나치, 반히틀러를 주장하기 시작했지만 1938년 독일의 오스트리아 합병으로 위기에 빠집니다.

하지만 그는 게슈타포의 손에 넘어가지는 않았는데 바로 형의 영향력과 괴링의 이름 덕분이죠.

이후 알베르트는 비밀리에 유대인을 구하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SS에 체포되어 죽음의 문턱에 갔던 사람들도 알베르트의 전화 한통에 살아 돌아오고 형에게 유대인 학살 중단을 간청하는 편지를 보내며

유명한 헝가리 작곡가 프란츠 레하르의 유대인 아내를 구해주는 한편 대량의 여권을 확보하여 유대인의 탈출을 지원하였습니다. 

또한 나치의 협력사업을 사보타주하고 체코 레지스탕스와 협력하여 무기를 뺴돌리는것을 눈감아주며(이떄 그는 군수공장을 경영하고 있었다!)

유대인을 공장의 노동자로 뺴오고, 형의 이름을 내세워 체코 레지스탕스의 석방을 압박하며, 형의 이름을 무단도용(?)해 반나치인사들의

국외탈출을 도왔습니다.

알베르트 괴링1.jpg
<작아서 죄송합니다-_-;>

하지만 게슈타포가 바보가 아닌이상 알베르트의 이런 행위를 묵과하고 있지는 않았죠. 그러나 나치 2인자의 친동생이었던 그는 

형의 도움과 괴링의 성으로 위기를 넘깁니다.


이제 전쟁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전쟁말기 알베르트는 히믈러의 명령으로 자택연금되는 상태가 됩니다.

그 상태로 종전을 맞이한 알베르트는 괴링의 성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연합국의 조사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이떄 파견된 조사관이 바로 도움을 주었던 프란츠 레하르의 유대인 아내의 친척이었고

또 알베르트가 국외로 탈출시킨 사람들의 탄원이 올라오면서 그는 기소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스스로 나서 알베르트를 돕겠다는 사람들 중 유대인만 34명이었다고합니다.)

이떄 알베르트의 형 헤르만 괴링은 그와 면회해 자신의 가족을 부탁하고 처형 하루 전 음독자살을 합니다.

알베르트는 부탁을 받아들여 형의 가족을 보살폈다고 하네요.

albert8.jpg


종전 후 새로 들어선 체코정부는 대전당시 체코에서 군수공장을 경영했다는 이유로

알베르트를 자국 법정에 세웁니다.

하지만 그의 과거행적에서 친 나치적인 경향은 전혀 드러나지 않았고(심지어 나치당원도 아니었다고 합니다.)

오히려 그의 도움을 받은 수많은 체코인들의 청원으로 그의 무고함이 증명되었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정리된 그는 독일로 돌아오지만 또다른 사회적 어려움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떄 "권력"의 상징으로 수많은 사람을 구했던 "괴링"이라는 성은 이제 족쇄가 되어 "악마"의 성으로 

사람들에게 경멸과 혐오의 대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독일의 전 관공서와 회사들은 그의 채용을 거부했고 아내가 외동딸과 같이 그를 떠난 후

1966년 쓸쓸한 생을 마감합니다.

당시에는 주목 받지 못한 그의 선행은 2013년 "국가의 의인"을 선정하는 이스라엘 야드바셈 홀로코스트 박물관에 의해

심의되어 홀로코스트 생존자 위원회에 최종심사대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제 검색능력의 한계입니다..ㅜㅜ)

국가 2인자의 친동생으로 거머쥘 부와 권력을 포기한채

자신의 신념에 따라 많은 사람들을 구한 "알베르트 괴링"이야 말로 "헤르만 괴링"보다 많은 사람이

알아주고 또 존경해야 되지 않을까요?

이번 글에 관련하여 웹서핑을 하면서 이런 생각이 나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연쇄살인범은 기억하면서 왜 그를 체포하는데 큰 공을 세운 사람들은 모를까?"

끝은 어떻게 마무리 지을까요;;; 

-The End?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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