켜켜이 해묵은 어둠이 눈에 익숙해질 즈음 천장의 벽지모양이 눈에 띄었다. 어딘가 생소한 천장, 나는 고갤 들어 내가 누워있는 침대와 방의 구조를 살폈다.
친구의 자취방이다.
익숙한 냉장고와 책상의 위치, 책상에서 빠져나와 있는 의자가 보였다. 의자를 빼놓고 잠자리에 들면 그 의자에 귀신이 앉아서 자는 내 모습을 관찰한다는 소리를 누군가에게 들은 것 같다.
불현 듯 생각난 무서운 이야기에 나는 잠시 고민한다. 책상에 의자를 넣어놓을까. 나는 의자를 넣어놓는 대신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쓰고 날이 밝아오길 기다리기로 했다.
이불 속에서 무서운 생각을 떨쳐내려 딴 생각을 해봤지만 잘되지 않았다. 나는 벽 쪽으로 돌아누워 몸을 한껏 웅크리고 머릿속에 스멀스멀 스며들어오는 공포를 억누르고 있었다. 문득, 잘 때 벽을 보고 자면 벽속에서 귀신이 자는 모습을 바라본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나는 눈을 꼭 감고 마음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시벌.. 많이도 주워들었네..’
평소엔 밤길도 별 거리낌 없이 잘 걸어 다니고 공포영화도 잘 봤었는데, 오늘따라 이상스럽게 무서움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 몸을 마비시켰다. 그래도 잠시나마 내뱉은 욕설에 오기가 생겼는지, 눈을 살짝 떠서 벽을 바라봤다. 생소한 벽지 무늬만이 눈에 띌 뿐이었다. ‘그럼 그렇지.... 무서움은 내 머릿속에 있는거야.’
과연 그럴까. 그렇담 저기 의자에 앉아 고개를 까딱거리며 나를 내려다보는 여인은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씨익 웃음 짓는 입꼬리가 지나치게 높게 올라가더니 이내 사람이라면 불가능할 위치까지 찢어졌다.
이제 좀 꺼져. 나는 일어나서 의자를 책상 속에 밀어 넣었다. 너무나 손쉬워서 맥이 탁 풀렸다. 당현이는 어디있지. 난 왜 혼자 이방에 누워 있던 걸까. 공포에 억눌려 있던 여러 궁금증이 하나둘 머릿속에 물음표를 그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중요한 부분은 딱 잘린 채 당현이가 해줬던 이야기들만 파편적으로 떠올랐다. ‘여기 철길 너머가 물이 그렇게 안 좋다더라, 이상한 사이비 종교단체도 있고 술 취한 대학생들이 여기서 자주 죽는다더라.’, ‘나 지난번에 창문 밖으로 귀신 봤어. 요기 앞에 철길 있지? 눈 오는 날 밤이었는데 쌩하고 지나가는 기차 위에서 흰옷을 입은 사람이 고양이처럼 앉아서 내 쪽을 보는거야. 하… 펄럭거리던 그 옷자락이 아직도 잊혀 지지가 않는다.’, ‘야. 나 친구들이랑 과제하고 있을게 여기서 자고 나갈 때 문단속하고 가라.’
나는 핸드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했다. 아침 5시 38분, 슬슬 나갈까. 뭔가 잊은 게 없는지 방안을 주욱 다시 살펴봤다. 창문 밖에서 비춰오는 새벽의 푸른빛이 방안의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다. 의자위에 걸려있는 바람막이를 걸쳐 입고 친구 자취방의 문을 열고 나왔다.
거리에는 눈이 총총 내리고 있었다. 눈이 소복히 쌓여가는 차도는 차 하나 지나가지 않은 듯 매끈했다.
나는 그대로 이름 모를 침엽수가 계속되는 그 거리에 발자국을 새기며 걸어갔다.
차도를 따라 줄줄이 심어져 있는 침엽수, 그 너머에는 철길이 있었다. 기차의 소음을 흡수하기위해 심었다나 아마 이름이 향나무이리라.
그렇게 한참을 걸어도 옆에 심어진 침엽수만 계속될 뿐 철길 건널목은 나오지 않았다.
이상한데… 이때쯤이면 건널목을 건너서 대학로로 들어가야 하는데.
처음 자취방을 나왔을 때는 평화롭게 총총 내리던 눈도, 이제 눈보라를 일으키고 있었다.
매서운 바람에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땅을 보고 걸었다. 앞을 본다 한들 눈보라 때문에 1미터도 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람 속에서 찢어지는 여자웃음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여기 그렇게 술 먹은 대학생들이 많이 죽는다더라.’ 지랄하지마라… 시발 짜증나게 하네…
순간 엄청난 인력에 이끌려 나는 빠른 속도로 걸어왔던 방향으로 도로 끌려갔다.
눈을 떠보니 익숙한 천장의 벽지, 빠져있는 의자, 냉장고. 친구의 자취방이었다.
땡-땡-땡-땡 기차가 오고 있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희미하게 여자의 웃음소리도 함께.
--- 실제 친구자취방에서 무서운생각으로 날밤을 새던 그때의 경험을 엽편으로 써봤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