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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석가의 깨달음을 회의한다.
게시물ID : phil_1561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문명탐구자
추천 : 2
조회수 : 970회
댓글수 : 33개
등록시간 : 2017/07/29 23:5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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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석가의 깨달음을 회의한다.
 
 
석가는 정말 깨달았는가?
석가가 깨달았다면 그 내용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 깨달음의 과정은 또 어떻게 되는가?
 
 
석가의 깨달음 또한 그 시대적(지금으로 부터 2500여 년 전), 공간적 배경(지금의 인도, 네팔 등)이 있고 그 주체(석가)가 있었으며 그 주체가 희로애락, 생로병사 등에 의문(문제의식)을 품고 집을 나서는 것(출가)에서 본격적으로 출발한다.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석가의 깨달음은 석가가 자기 자신과 당대 사람들 그리고 당대 진리관, 수행집단 및 그 방법 등을 직접 겪고 이를 연구 및 탐구, 검증하고 또 실제로 경험해 나가는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알려져 있다.
 
 
치열한 문제의식과 문제 해결에의 실천, 검증 및 연구 등을 바탕으로 석가는 6년간의 극단적 고행을 중단한다. 그리고 극단의 고행주의와 극단의 쾌락주의, 선정주의를 떠난 <중도>라는 전혀 새로운 것을 이야기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불교>와 <자이나교>는 차별화의 길을 걷게 된다. 나는 이 대목 부터 의문이 든다. 여기서 말하는 <중도>란 대체 그 무엇을 말하는가? 석가는 대체 <중도>가 바른 길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확신했는가? 6년 간의 고행을 중단할 수 있을만큼의 확신은 대체 그 어디에 기인하는가? 나는 여전히 확실하게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내가 석가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 상황을 다각도로 추측할 수 밖에 없다는 현실적 한계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참고할 점은 석가 당대의 수행자라면 신분, 직위, 가족, 재산, 기존의 습관, 세계관 등 소유 일체를 내려놓는 것을  출가의 그 시작점으로 보았다.는 사실이다. 어지간한 주체성, 독립성, 자기 결단, 결행력 등이 없으면 일반인들은 꿈도 꿀 수 없는 게 출가 사문의 삶이었다. 더욱이 석가는 왕위를 물려 받게 되어있던 왕자였고 지혜롭고 아름다운 처와 라훌라(장애:아이가 석가 출가의 장애가 되었다는 의미로 지음)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도 있는 가장이었다. 이런 처지에 있는 자가 가진 것 일체를 내려놓고 광야로 그 <길 없는 길>로 들어선다는 자체가 결코 쉽지 않을 일이었다. 바로 이 점이 당시 석가의 절박성을 암시한다고 본다. 신라의 원효가 당대의 최첨단 학문을 배우러 당나라에 가고자 하는 그 마음이 뼈에 사무치고 또 사무쳐 의상과 함께 길 가던 중 <일체유심조>를 어느 찰라에 단박에 깨쳤던 것처럼 석가 또한 출가 당시에도 이미 <고>에서 해방되는 길을 찾고자 하는 마음으로 사무치고도 사무쳤으며, 절박하고도 절박했으리라. <사유의 실용성에 관하여> 라는 글에서 짧게 언급한 것과 같이 고대의 철학자들은 다방면에 걸쳐 매우 뛰어난 자였다. 석가 또한 무술, 학문, 기예 등에 조예가 깊었고 실력 또한 매우 뛰어났다. 게다가 왕은 예언대로 왕자인 석가가 행여라도 출가할까봐 다른 것은 다 허용해줬어도 왕의 명령에 의해 잘 꾸며진 안락한 왕궁을 제외하고는 실제 생로병사가 현존하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석가에게 보여준 바 없었다. 왕은 아들 석가가 왕 중의 왕 <전륜성왕>이 되기를 이토록 간절히 바랐던 거다. 허나, 이러한 인위적인 조작은 영화 <트루먼 쇼>에서 주인공 트루먼이 처한 세계를 연상케 한다. 나는 이와 같은 환경에 대한 인위적인 조작이 결국 석가로 하여금 현실에 눈 떴을 때(사문유관의 경험) 더욱 더 강력한 충격과 파장을 불러왔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나의 구도 경험을 토대로 붓다의 깨달음 여정을 내 시야로 재구성해 보자면 다음과 같이 바라볼 수 있다. <발견>이나 <깨달음>이라고 부를 만한 일들은 그 누구에게나 늘 찾아온다. 다만, 그것은 세상에 두루 두루 존재하는 <가능성>과 같아서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보고 듣고 깨달아 바르게 해석해 줄 이와의 인연이 맺어져야만 비로소 세상에 오롯이 드러난다. 그것에 관해 <눈 뜬 자>에게만 발견과 깨달음은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던 세계>를 <존재하는 세계>로 편입시켜 준다. 내 기준으로 당시의 석가는 아직 <눈 뜬 자>가 아니었다. 나는 이것을 중대한 단서로 보고 있다.

나는 극단의 고행으로도, 극단의 묵언으로도 극단의 내적 탐구, 호흡, 운동 등으로도 만족할만한 깨달음을 얻지 못하였을 때에야 비로소 작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내가 지금까지 남이 내게 던져준 생각과 방법의 틀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극히 냉엄한 현실 그 자체였다. 이 인식의 대전환은 내가 여전히 <색안경>을 쓰고 나와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과, 내가 내 생각 아닌 타인의 생각을 내 생각인 줄 알고 그 기준에서 평가하고 해석하고 있다.는 사실을 내게 뼈저리게 알려주었다. 이 때 불현듯 내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기존에 알던 지식 등의 일체를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보고 듣고 느껴야 한다.는 것이었다. 책을 덮고 기존의 지식을 내려놓고 세상에 물들지 않은 발가벗은 갓난 아이의 시야에서 나와 세상을 <있는 그대로>로 보고 듣고 느끼는 가운데 바르게 해석하고 검증해야한다.는 삶의 가르침이 내 삶에 방문했던 거다. 이 경험을 통해 기왕 바보가 되기로 하였다면 터무니 없이 큰 바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비로소 깨칠 수 있었다.

내가 본 어떤 다큐에서는 <중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비파를 연주할 때, 비파줄이 너무 팽팽하거나 너무 느슨하면 연주를 할 수 없고, 균형이 맞아야 한다. 이것을 깨우쳤기에, 붓다가 6년 간의 고행을 그만두고 목욕도 하고 수자타가 건네는 공양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물론, 이것도 하나의 이유는 되겠지만 이 정도의 변화가 단 며칠 사이에 <연기법>을 발견할 정도로 석가에게 근본적 변화를 가져왔다.고는 보기 힘들다. 모르긴 해도 석가는 수행 과정을 통해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이 아니라, 결국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듣고 느끼며 해석하고 검증해야한다.는 확고한 구도관을 깨우쳤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것을 통해 석가는 시야가 활짝 열리고 이미 <눈 뜬 자>가 되었던 것은 아닐까? 이 <있는 그대로>라는 것은 <이 세상의 본질이요 실상 그 자체이기도 하며 동시에 그것을 가리키는 이름>이기도 하니, 이로부터 며칠 후 석가가 깨달음을 얻은 후에도 여전히 그 자신이 발견한 진리를 <중도>라 부를 수도 있는 게 아닐까?

괴델은 어떤 명제가 참인지 여부를 그 패러다임 안에서는 증명할 수 없음을 수학적으로 이미 증명한 바 있다. 새로운 명제의 진위를 구별하기 위해서는 더 높은 패러다임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왕궁 내에서 극단의 쾌락주의도 경험해 봤고, 또 수행하며 선정주의와 극단의 고행주의 또한 경험해 본 사람이 바로 석가다. 괴델의 증명 기준으로 보자면 <중도>라는 것은 극단의 쾌락주의와 극단의 고행주의, 선정주의 등의 기계적 수치적 눈금자적인 중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그 무엇>이요,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바라본 <바른 것인 그 무엇>이어야 한다. 타당한 견해라 생각한다. 헌데 붓다가 이를 대체 어떻게 알았고 또 어떤 기준에서 확신할 수 있었는가? 하는 문제가 내게 여전히 의문으로 남겨진다. 이것에 관해 납득할만한 설명을 아직까지 접할 수 없었다. 내 의문을 여러분들께서 해소해 주시기를 소망한다. 이 때의 <중도>가 사성제 팔정도라면 석가는 이미 깨달았기에 보리수 나무 아래서 다시 깨달음을 얻을 필요가 없었고, 이 때의 <중도>가 사성제 팔정도의 그 <중도>가 아니라면 이에 관하여 아직까지 제대로 밝혀진 바 없다.고 봐야 한다.

의문은 또 있다.

수자타의 우유죽 공양을 통해 영양분을 섭취한 석가가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내면의 관조를 통해 사선정을 거쳤고 새벽별을 바라보며 깨달음에 이르렀다.고 한다. 석가가 <중도>적 관점에서 호흡과 내면 관조, 관찰 등을 통해 새벽별을 바라보며 결국 <연기법>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를 과학적으로 보면 석가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연기법>을 발견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연기법을 표현하는 것이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겨남으로써 저것이 생겨난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으며, 이것이 사라짐으로써 저것이 사라진다”는 표현이다. 이 초기 형태의 연기법은 내면의 희로애락 등의 욕구나 생각, 감정 등의 차원에서는 잘 맞아떨어지고 이를 바르게 이해하거나 다스리는 데는 큰 도움이 된다. 다만 이것으로 실제 생로병사의 문제나 물질계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이것을 인정하면 <연기법> 만능주의에 빠져들게 된다.
 
 
나는 이것이 의문이다. 석가는 애초에 생로병사, 희로애락 등 고에 문제의식을 갖고 이를 해결하고자 출가하였는데, 고에서의 완전한 해방이 아닌 <연기법>의 발견과 사성제, 팔정도의 실천만으로 정말 희로애락, 생로병사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있는가? 즉, <연기법>의 발견이나 이 법칙에 대한 이해가 <열반>을 보장하는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렇기에 바로 이 점에 관해 순수한 의문이 든다. 물론 이 법칙의 발견으로 당대 진리관인 아트만 사상을 논파하게 되어 카스트 제도의 근간을 부정하는 만민평등의 사상이 싹트게 된다.는 사실은 정말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또 이것을 이해하는 순간 당대 윤회관에서 벗어나게 되어 그 즉시 <해탈>한다는 사실도 깊히 존중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정말 희로애락, 생로병사 등 <고>에서 해방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 <불교>가 수행만능주의, <마음> 만능주의에 빠진 경우를 많이 접할 수 있다. 이것에 관해 마음을 터놓고 솔직하게 이야기 나눠야 하지 않을까? <불교>가 깨달음의 종교라 주장하고자 한다.면 이런 의문을 잘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 무엇>에 대한 발견으로 아르키메데스나 뉴튼, 아인슈타인, 다윈, 존 내쉬 등의 인격이 그 즉시 완성되어졌다.는 사실을 나는 역사에서 보고 들은 바가 없다. 로마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 또한 하루 아침에 형성되거나 이루어지거나 완성되는 존재가 아니다. 이는 인간이란 존재가 그 자체로 복잡계이며 하나의 세계인 동시 헤아릴 수 조차 없이 많은 원리와 법칙, 관계 등에 의해 균형을 유지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떤 법칙의 발견 그 자체만으로 <고>에서 즉각적이고도 영구히 해방된다.는 사실 또한 보고 듣고 체험한 바가 없다. 이것이 검증되었다.는 공식적 보고 또한 단 한건도 단 한 사례도 접한 적 없다. 발견은 발견이고 깨달음은 깨달음 그 자체일 뿐이다. 그렇다면 석가라는 인물 자체가 고매한 인격의 씨앗을 어려서 부터 키워오고 있었고 다양한 수행과 고행을 통해 이미 인격은 완성 단계에 이르렀었다고 보는 것이 바른 게 아닐까 싶다. 이렇게 고매한 인격과 넉넉한 품성을 이미 갖춘 석가가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실마리를 접한 후 몇 년 간의 고행을 풀고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임한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의 내면 관조로 <연기법>이라는 역사적 발견에 이르렀을 뿐이라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즉, 연기법의 발견 자체가 인격의 완성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법의 발견으로 당대 윤회관 으로부터 그 즉시 <해탈>하게 되었다.고 나는 결론 짓는다. (당대 인도는 세세생생 유전하는 아트만의 존재로 인해 끝 없이 윤회하고, 이에서 벗어나려면 <해탈> 해야한다.는 관념이 지배했다. 모든 현상은 무수한 원인과 조건이 상호 관계하여 성립되므로, 독립 자존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는 연기는 아트만을 부정하는 발견이었기에 자연히 당대 윤회관은 이로써 논파되었고 석가는 그 즉시 해탈했던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은 법칙의 발견이자 인식적 철학적 깨달음이라고 생각한다. 이 기준에서 바라보면 석가라는 인물은 <연기법>이라는 법칙을 발견한 이요, 이에 관한 인식적 철학적 깨달음을 얻은 이요, 이것을 평생 실천해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번뇌, 갈등, 고 등에서 해방되는 길을 스스로 실천하고 입증해나간 선구자로 여겨진다. 헌데 불교 및 불교계 일각에서는 인격완성, 해탈, 열반을 보장하는 <완전한 깨달음>을 추구하고 있다. 나로서는 대단히 우려가 된다. 그런 깨달음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고 오직 상상 속이나 신화, 전설 속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기존의 고정 관념 과는 달리 석가는 이미 출가 이전 부터 인격과 온갖 학문, 기예 등에 두루 두루 뛰어난데다 출가를 결행하는 과정에서 결단력, 독립성, 주체성 등을 확립했고 여러 수행 및 고행을 통해 이를 자기 것으로 소화했다고 보여진다 고매한 인격, 인품 등은 이 과정을 거쳐 형성 된 것으로 봐야한다.는 게 내 입장이다. 더욱이 경전 등에 수록된 것이 사실 그대로 라면 <마왕 파순 이야기> 라는 <가상 현실> 세계 조차 석가는 체험했고 이를 이겨냈다.
 
 
백척간두진일보 라는 말처럼 목숨을 건 구도의 과정에서 <길 없는 길>을 걸어가는 과정에서 <주화입마>, <가상 현실>, <정신 분열> 등을 겪어본 이들은 잘 알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끔찍하게 두렵고도 또 두려운지를 말이다. 정말 그 상황은 뭉크의 <절규>가 딱 연상되는 바로 그러한 처절한 것이다. 나 또한 평생 소원이 도를 깨치는 것, 깨달음을 얻는 것, 궁극의 진리에 이르는 것, 모든 것을 하나로 꿰뚫는 것 등 이었는데 막상 <가상 현실>을 겪고 나니 다시는 그것을 겪고 싶지 않았다. <가상 현실>은 정말 죽어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끔찍한 그 무엇이었다. 나의 경우 그 <가상 현실>을 인위적으로 이끌어 내는 데만 약 10년의 고행 기간이 필요했다. <가상 현실> 세계에 진입하면 자기 온갖 꼬라지, 온갖 욕구와 본성, 공포, 불안, 두려움, 의혹, 의심, 의문 등이 정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세계를 절절히 겪고 또 그 세계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적잖은 유무형의 소득이 내게는 있었다. 허나,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에게는 그 곳에서 벗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그곳에서 얻은 수확 보다 더 큰 경이요 기적이요 감사함으로 다가온다. 깨달음이고 뭐고 다시는 얻고 싶지 않다.는 게 내 속 마음이다.
 
 
내가 앞서 언급한 생사의 위험이 그 얼마든지 발생할 수도 있는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완전한 깨달음>에 목매기 보다, 석가가 현실에서 이뤄낸 것처럼 깨달음과 그 실천을 통해 사람이 단순하고 소박해져 공자가 말한대로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쫓아도 법도에 거스리지 않다.면 이것만으로도 능히 성인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물론, 나 또한 사무치고 사무쳐서 결국 통한다.는 이치를 결코 부정할 생각은 없다. 나 또한 실제 경험자이기 때문에 이치 자체는 부정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인류 최초의 연기법 발견자 석가 조차 깨달음 그 자체가 인격 완성을 담보하지는 않았으니, 바로 이 기준에서 현대인들에게 맞는 적절한 방향을 제시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게 내 생각이다. 적어도 나는 <완전한 깨달음>을 더는 구하지 않게 되었다.
 
 
<완전한 깨달음> :깨닫는 즉시 일체 고에서 해방되고 번뇌의 불꽃이 완전히 또 영구히 사그라드는 전설상의 경지로 불교 경전 등에서는 인류 역사상 석가만이 도달했다고 주장한다. 위 글에서는 이 주장의 허황됨을 논파하기 위해 <인격 완성>이라는 인간된 자 중 그 누구도 도달한 적 없는 또 다른 전설상의 경지를 언급하였다. 즉, <완전한 깨달음>이든 <인격 완성>이든 인류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신화와 전설 속에서나 가능한 허황된 경지가 아니냐는 것이 내 주장의 핵심이다. 그 실현 가능성이 단 0.0000001%도 없다는 사실을 부각하고자 한 것이다.
 
 
 <나는 이 글이 철게에 어울리는 글이라 생각하나, 만약 여러 선생님들께서 종게에 어울리는 글이라 생각하시면 종게로 글을 옮기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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