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오유 철학게시판의 여러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자 합니다. 인류의 난제 중 첫번째 글을 올렸는데, 선생님들의 번뜩이는 통찰력과 지혜, 내공 등을 확인할 수 있어 큰 기쁨과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하루에 덧글 쓰는 횟수가 제한되어 있는지 오늘은 더 작성할 수 없다고 나옵니다. 그래서 내일 덧글을 작성하고자 하오니, 이 점 부디 너그럽게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질문은 본래 한국을 포함하는 세계 불교계와 불교인들께 드리는 것인데, 한국에서는 한 불교매체에서 그 연재에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곳의 연재가 확정되기 전에 먼저 오유 철게 선생님들의 고견을 청하는 과정을 거치고자 합니다. 또 지난 몇 년간 건강이 좋지 않아 회복중에 있기에, 시간적 여유가 있어 선생님들과의 교류를 통해 나를 더욱 더 살찌우고 싶은 개인적 바람도 있답니다. 선생님들께서도 부담 갖지 마시고 그저 벗이 벗에게 이야기하듯 마음 편히 의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일단 전체 질문은 이 글에 올리고, 며칠 마다 한 질문을 올리고자 합니다. 절차탁마를 진정 바라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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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명의 구도자입니다. 그저 <길 없는 길>을 걸어가고 있는 자입니다. 진리의 길을 걸어가며 보고 듣고 느낀 <불교>에 관한 질문 28개를 준비하여 불교 및 불교계에 답을 청하고 있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 진리와 깨달음의 대화가 <인간 해방>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오며, 불교나 불교계를 폄하하거나 공격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진리의 길을 걸어가는 자로서 순수한 의문을 질문드리고자 하는 것임을 미리 밝혀둡니다.
세계 불교계 및 관계자 여러분들께 질문 드립니다. 불교는 인간 중심의 대표적인 철학이요 신앙이자, 현재로서는 가장 과학에 근접한 종교라 알려져 있습니다. 다음의 질문들은 불교와 깨달음에 관한 근본질문들입니다. <길 없는 길>을 걸어가는 한 사람의 구도자로서 <진리와 깨달음>에 관해 벗이 벗에게 솔직하게 질문하듯 불교계에 불교에 관한 28가지 근본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고 삼성 이병철 회장이 가톨릭 박희봉 신부에게 1987년에 전한 24가지 질문을 참고하여 이 질문서를 작성하였음을 밝힙니다. 또 실제 질문에서는 편의상 <존칭> 등을 생략하였음 또한 알립니다. 2017년)
<불교에 관한 28가지 근본질문.>
1.부처는 가공의 신화적 인물인가 아니면 실존 인물인가? 그가 실존 인물이라면 정말 깨달음을 얻었는가? 부처의 깨달음은 사실이 아닌 신화인가?
2.부처는 대체 어떤 과정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는가? 아르키메데스와 뉴튼 등 발견 순간과 그 발견한 법칙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가 널리 알려진 사람들과 달리 부처의 깨달음 과정이나 내용은 투명하지 않다. 이는 왜 그런 것인가?
3.불교는 지혜의 종교요 깨달음의 종교라고 한다. 불교인들은 서로를 향해 '성불하세요.'라고 덕담을 건넨다. 그러나 석가모니 부처 외 지난 2500년 동안 단 한 사람의 부처도 현실에 출현한 적이 없다. 이는 대체 왜 그런 것인가? 왜 단 한 사람의 깨달은 이도 없는 것인가?
4. 불교는 성차별 종교인가? 왜 깨달은 자 중 단 한 사람의 여성도 없는가?
5. 불교는 브라만교에 반대해 세상에 출현한 것으로 안다. 업, 윤회, 해탈이란 말은 브라만교에서 피지배층과 피지배민족을 지속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차용한 것인데, 불교는 브라만교에 반대한다면서 대체 왜 그 전통을 따르나? 이는 인간 해방 아닌 또 다른 구속이요 억압 아닌가?
6. 석가는 고에서 해방되고 윤회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사성제, 팔정도를 말했다고 한다. 불교는 소수 종교 아닌 세계 4대 종교 중 하나이다. 부처가 깨달은 것이 정말 진리라면 왜 세상에는 우울증, 대인공포, 공황, 조현병 등 수 많은 정신질환이 존재하는가? 이는 모순이 아닌가?
7. 티베트 불교에는 환생 제도가 구축되어 있다고 한다. 미세한 마음이 유전되어 소수의 사람들이 환생한다.는 전통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인가? 게다가 환생하는 자들은 모두 남자들이다. 티베트 불교도 성차별 하는 게 아닌가? 이것이 진정 인간 해방의 길이 맞는가?
8. 석가가 깨달은 중도, 사성제 팔정도가 진리라면 대체 왜 세상에는 수 많은 불교 분파나 종단이 생겨났는가? 어찌하여 상좌부 불교와 대승 불교로 나뉜 것인가? 중국 불교, 티베트 불교, 한국 불교, 일본 불교가 저마다 제각각인 것인가? 이는 모순이 아닌가?
9. 음악과 미술, 운동은 원시 시대 부터 두려움, 불안 등 인간의 자연스런 욕구를 해소하는 중대한 역을 담당해 왔다고 한다. 헌데, 불교에는 왜 음악과 미술, 운동이 없는가? 인간을 해방시키기 위해 출현한 불교에 인간의 욕구를 원시 시대부터 해소하는데 도움을 준 음악, 미술, 운동이 없다는 것은 대단한 모순이 아닌가?
10. 신 중심의 계급제 사회에서 석가가 인간 중심의 길 (인간 해방)을 걸어간 것은 알겠다. 이렇게 좋은 뜻을 가진 불교가 사실상 인도에서 사라진 것은 왜 그런 것인가? 불교는 인간의 자연스런 본성과 거리가 있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이는 보편 진리가 될 수 없는 것 아닌가?
11. 유대교, 이슬람, 기독교 등 유일신 신앙은 필연적으로 타 사상 및 종교 등엔 배타적이 될 수 밖에 없다. 불교도 관용의 종교라 스스로 칭하지마는 알고보면 석가 당시에도 대표적인 사상가들과 집단을 육사외도라 하여 이단시한 일이 있다. 불교도 알고보면 배타적이지 않은가? <불교가 옳다.>는 한 생각이 근본적으로 존재하는데 이를 어찌 진리라 할 수 있는가? 2500년 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인류를 제대로 구원한 적 없는 불교가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 자체가 모순 아닌가?
12. 석가는 위 없는 깨달음(무상정등각)을 얻었다고 한다. 이것이 가능한가? 최첨단의 과학 문명으로도 우주와 지구, 인간 세계를 전부는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지금으로 부터 2500년 전 인간이 위 없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가? 이는 신화요 거짓이 아닌가?
13. 불교에서는 살생하지 마라.고 한다. 또 인도의 대왕으로 일컬어지는 아쇼카 왕은 불교를 적극적으로 후원한 바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불교는 인도에서 소수 종교로 전락하였다. 이는 불교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것 아닌가? 타민족이나 국가, 세계와 끊임없이 경쟁해야만 하는 민족이나 국가 단위에서 불살생의 계율은 지극히 이상적이요 허황된 주장이 아닌가?
14. 석가의 초기 집단처럼 모든 이들이 가정을 버리고 출가하면 인류는 후손을 낳지 못해 지구상에서 멸종하고 만다. 석가는 출가 수행을 적극 장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기준이 옳다고 보면 석가는 인간을 해방시키려는 자가 아닌 인류를 멸망시키려는 자로 볼 수 있지 않은가?
15. 불교는 인간 중심의 주체적 종교라 하면서, 신 중심의 종교들처럼 극락이니 수미산이니 하는 내세관을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이는 불교가 스스로 불교됨을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 이처럼 한계가 분명한 종교라면 보편의 진리는 될 수 없는 것 아닌가?
16. 석가의 초전법륜 때 5명의 수행자가 석가와 대화를 나누고 또 서로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에서 며칠 내에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석가는 이들이 깨달았다고 하지 않고 <해탈>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이것이 역사적 사실인가? 아니면 석가 사후에 아름답게 미화된 신화인가? 이것이 신화 아닌 역사적 사실이라면 석가 당시에는 <해탈>한 이들이 존재했는데, 그 이후로는 단 한사람도 제대로 <해탈>한 이들 조차 없는 것인가? 이는 모순이 아닌가? 또 <해탈>과 <깨달음>은 서로 어떻게 다른가?
17. 불교도 중 대다수는 불교의 기본 가르침도 제대로 모르고 <해탈>에도 이르지 못하며 그저 불경과 승려에 의존하고 의지하며 복을 빌 뿐이라고 한다. 이것은 석가의 가르침이나 석가가 걸었던 길과는 크게 어긋나는 것 아닌가? 이는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불교도의 문제인가? 아니면 불교 자체의 문제인가?
18. 석가를 신격화하고 복을 비는 것은 이슬람, 기독교 등 신 중심의 종교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 이는 신 중심의 계급 사회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걸어간 석가의 근본 정신에 위배되는 것 아닌가?
19. 석가는 ‘귀 있는 자는 와서 들으라, 눈 있는 자는 와서 보라, 나의 가르침은 누구나 현실에서 바로 이해할 수 있고 이루어지고 증명된다’고 했다. 석가 사후에 단 한명의 <해탈>한 이도, 단 한 명의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도 없다. 이는 어찌된 것인가?
20. 한국 불교는 대승 불교를 표방하고 이를 대표하는 종단은 조계종이고, 조계종은 간화선을 수행의 대표적 방편으로 삼는다고 알고 있다. 참선을 하면 정말 해탈에 이르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가? 이것이 사실이라면 대표적으로 해탈, 깨달음에 이른 사람을 알려줄 수 있는가? 이런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는가? 19번 질문의 석가의 말과 비교하면 이는 대단한 모순이 아닌가?
21. <간화선>이 정말 대중들을 <해탈>에 이르게 하고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올바르며 덕 높은 방법이라면 대체 왜 <간화선>이나 한국 불교는 세계적이지 않은가? 세계가 서로 통하는 지구촌 시대에 이는 대단히 이상하다고 여겨진다. 대체 왜 그런 것인가?
22.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서암은 '어떤 한 사람이 논두렁 밑에 조용히 앉아서 그 마음을 스스로 청정히 하면, 그 사람이 바로 중이요, 그곳이 바로 절이지. 그리고 그것이 불교라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것이 정말 불교의 근본 정신인가? 그렇다면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는 대승불교의 정신을 제대로 실천하기 보다는 사찰 관리인, 문화재 관리인 등의 업무에 전념하는 대다수의 승려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또, <해탈>에 이르지도 <깨달음>을 얻지도 못한 선승들이나 수좌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을 석가를 따르는 진정한 제자들이라고 볼 수 있는가?
23. 조계종은 대체 왜 권력다툼을 일삼는 것인가? 이는 석가의 가르침인가? 아니면 그들이 석가의 뜻을 제대로 받들지도 실천하지도 않기에 그러한 것인가? 어디에 평화가 있고 관용이 있으며 대자대비는 대체 어디에 존재하는가?
24.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이나 <해탈>은 정말 존재하는가? 정말 누구라도 <해탈>하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가? 이것이 사실이라면 대체 왜 절대 다수의 불교도들은 그렇지 못한가? 그것도 2500년 동안이나.
25. 불교는 대개 마음에 관한 법칙이나 작용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 이때 마음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관념상 설정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인가? 즉 마음은 과학으로 입증되는 대상인가? 아니면 마음은 믿음의 영역인 것인가?
26. 불교에서는 누구나 본래 부처라고 한다. 이는 사실인가? 사실이라면 이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또, 이것이 사실이라면 절대 다수의 대중들은 지난 2500년 간 대체 왜 깨닫지 못했는가? 그저, 선언이나 선포인가?
27. 불교에서는 석가가 죽음에 이르러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고 한다. 이것은 사실인가? 아니면 석가와 석가의 가르침을 종교화하기 위해 이를 그 존재를 신격화 하여 교단의 구심점으로 삼은 것인가? 사실이라면 석가 이후 지난 2500년 간이나 단 한 사람도 완전한 열반에 이르지 못하였는가? 이는 모순이 아닌가?
28. 지난 2500년 동안 불교도 뿐만 아니라 그 지도층인 승려들 조차 대체 왜 스스로 깨닫지 못하였으면서 이를 솔직히 고백하지 못하였는가? <해탈>에 도달하지도 <깨달음>에 도달하지도 못하였으면서 대체 왜 이를 정정당당하게 솔직하게 대내외에 밝히지 못하였는가? 그러면서 어찌 법을 설하고 석가의 가르침을 진리라 펼칠 수 있었는가? 그저 신분 및 지위와 생업 등 <밥그릇>을 잃을까 두려워 그러하였는가? 아니면 조직이나 자신의 명예를 위해 그러하였는가? 이는 혹세무민의 뜻이 있음인가? 아니면 다른 뜻이 있어서인가?(내부 및 외부의 압력, 억압, 분위기, 신도들의 이탈 방지, 기득권 상실에의 두려움과 공포, 용기 없음 등)
이것으로 인류가 <진리와 깨달음>의 장에서 절차탁마하여 상호간에 진전과 발전이 있게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