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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미국식 크리스마스 선물 - 미국인 남편과 일본에서 보내는 크리스마
게시물ID : boast_1554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항상봄빛인생
추천 : 25
조회수 : 3608회
댓글수 : 48개
등록시간 : 2015/12/24 23: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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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일본에서 미국인 남편과 살고있는 여자사람입니다. 

메리크리스마스 입니다.

적지않은 한국의 30대들처럼, 저는 “우리 집은 불교라 산타할아버지 안온다”는 가정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그래도 어린 마음에 잠자기 전 머리맡에 양말을 두고 잤는데, 술취해 돌아오신 아버지가 안주감으로 사오신 골뱅이 통조림을 넣으셔서, 아침에 일어나 대성통곡을 한 기억이 있습니다. 

성인이 된 후에도, 남편 만나기 전까지 인생의 대부분을 솔로로 살아온 저에게 크리스마스는 사람들과 모여앉아 술퍼먹는 수많은 날들 중 하나일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정반대로, 크리스마스 준비를 통해 일년간의 스트레스를 푸는 집에서 자라온 남편을 만나, 요즘은 11월 말부터 크리스마스 준비로 바쁩니다.


저희 시댁이 어떤 분위기인지는 이 사진을 보시면 이해하시기 편할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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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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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남편에게 주는 선물 14개 + 남편이 저에게 주는 선물 15개
시댁 가족들이 저희 둘에게 주는 선물 13개 + 시댁 가족들이 저에게 주는 선물 23개 + 시댁 가족들이 남편에게 주는 선물 25개

총 90개의 선물이 모여있습니다.
요즘은 전자책같은 선물이 늘어서 부피가 예전에 비하면 많이 줄은거예요. 

지금까지의 경향을 보면 선물 내용은 초컬릿같은 과자에서부터 양말, 백엔샵에서 산 장난감처럼 저렴한 것도 있고 옷, 책, 인테리어용품, 콘서트티켓 등등 종류가 다양합니다. 11월 말쯤에 서로서로 위시리스트를 제출하는데, 보통 반 정도는 리스트에서 나머지 반은 각자가 알아서 준비하구요. 

저도 처음엔 이런 선물문화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어요. 남편에 저에게 주는 선물이 보통 10개~15개인데, 가격으로 보면 3만엔 이상이거든요. 그 돈이면 차라리 금붙이나 가죽제품 같은 걸 주지, 자질구레한 것들을 잡다하게 주는 거 맘에 안들었어요. 

게다가 시댁상황을 보면, 남편과 시누이 모두 천문학적 금액의 학자금 대출을 끼고 있고, 시부모님도 주택 대출금이 남아있는 처지에, 연말이라고 이렇게 흥청망청 돈을 써재끼는 게 과연 합리적인 일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구요.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 중에도 돈없어도 제사상 차례상 차려지내야 마음이 편한 사람들 있고, 한국인이라면 이해할 수 있잖아요. 차례상에 딱히 좋아하는 사람 없어도 대추나 찐 생선 올리구요. 그러니 “이것도 문화의 차이겠거니” 싶어서 따라가기로 했어요. (근데 남편도 시댁가족도 모두 종교가 없는데 왜 크리스마스를 이렇게 성대하게 준비하는 지는 아직 잘…)

그렇게 5년쯤 시댁식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나니 지금은 준비하는 게 재미있네요. 하긴, 돈쓰는 게 재미가 없으면 너무 슬픈 일이죠.



저렇게 모인 크리스마스 선물은 크리스마스 저녁 식사 후 개봉식을 개최해서 열게됩니다. 선물 개봉하는데만 최소 4시간 정도 걸려요. 저와 남편이 서로 주고 받는 선물 개봉하는 게 1.5시간, 시댁 식구들과 스카이프로 선물 개봉하는 게 2.5시간.

보통 남편과 저는 서로에게 각각 10개~15개의 선물을 준비하니, 서로서로 주고받는게 많아봐야 30개인데 개봉식에 1.5시간이나 걸리는 이유는 남편이 선물개봉을 위한 퀴즈대회를 열기 때문입니다. 각 선물에 번호를 매기고, 남편이 저에게 줄 선물이 15개면 정답이 15개인 퀴즈를 만들어서 맞춘 번호의 선물부터 뜯게하는거죠. 


작년에 남편이 준비한 퀴즈는 CHRISTMAS에 들어가는 철자들로 만들 수 있는 5글자 단어퀴즈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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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크리스마스 저녁에 영어공부하고 앉아있었네요. 뇌세포 풀가동 했어요. 



3년 전의 퀴즈는 마누라가 가장 많이 쓰는 문장 베스트 15”였는데, 이건 꽤 로맨틱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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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남편에게 가장 자주 쓰는 표현을 문제로 낸거니까, 그만큼 저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는 뜻이잖아요. 

3번 정답 “My husband hates me -울 남편은 날 미워해” 그 외에도 “I don't know!-몰라”  "I'm gonna cut your dick (off) - 니 곧휴를 잘라버리겠다"가 있네요. 제가 한 말에 상처를 받았다는 걸 우회적으로 전달하는 거였나봐요. 닥치라고는 말을 못하니까요.

이렇게 퀴즈 맞히고 선물 뜯고, 고맙다고 인사하다보면 1.5시간 정도 걸립니다. 술먹으면서 하니 할만한 거지, 맨정신으로는 어려울 것 같아요. 


퀴즈와 함께하는 부부간의 선물개봉이 끝나면 미국 시댁과의 선물개봉(by 스카이프)이 시작됩니다. 한국시간 저녁 9시, 미국 시간 아침 7시부터 시작해요. 제기억에 제일 오래 걸렸을 땐 5시간 걸렸어요. 요즘은 많이 생략해서 2.5시간이에요. 전후의 안부인사까지 합치면 3시간 넘습니다.


시댁식구들이 우리에게 보낸 선물이 보통 50개~60개 정도고, 우리가 시댁 식구들(3명) 에게 보낸 선물 50개~60개 정도 되죠. 그러니 총 100개~120개 정도의 선물을 개봉하는 거예요. 

~~선물 개봉의 흐름~~
1. 선물을 들어보거나 흔들어보고 어떤 선물일지 예상 (어머 이게 뭘까?)
2. 선물 포장을 정중히 뜯음
3. 격한 리액션과 감사인사
4. 선물을 준 사람으로부터 그 선물을 선택한 이유 등의 설명
5. 다음은 누가 어떤 선물을 뜯어야할 지 지정 

위의 프로세스를 1회 하는데 약 1.5분 정도 걸려요. 선물 개수가 100개면 150분이니까 2.5시간이 걸리는거죠. 다 끝나고 나면 대형 쓰레기봉투에 포장지만 가득합니다. 그걸 보면 환경오염의 주범이 된 느낌이 들어요. 그래도 선물포장 뜯는 것도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절차의 일부라고 하길래 따라가기로 했어요. 

미국에서는 이게 보통이냐고 하면,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선물 갯수도 그렇고, 그걸 하나하나 돌아가면서 뜯어보는 행사도 그렇구요.

이 선물개봉식이 아들딸 장성해서 출가한 후에도 계속되는 건, 크리스마스에 대한 시어머님의 집념때문인 것 같아요. 남편이 일본에 유학와 있었을 때 학교 행사때문에 선물 개봉 날짜를 미루자고 했더니 말그대로 통곡을 하셨다고 하더라구요. 그 뒤로 한 번도 빼먹거나 날짜 조정한 적이 없다고 해요. 그러니 “며느리 하나 잘못 들어와서 집안이 풍비박산났다” 소리 안들으려면 저도 절대 이걸 그만 둘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크리스마스에 보이는 열정을 보면, 아마 우리가 아이를 갖게되면 똑같은 전통이 이어질 것 같아요.

내일 이거 다 열 생각하니 좋으면서도 피곤하네요. 일년에 한 번 스카이프로 얼굴보는 시부모님을 위해서 “어머, 어머님!! 제가 이거 갖고싶어하는 걸 어떻게 아시고!!” “어머, 어머님!!! 정말 센스가 넘치세요!!” 같은 멘트를 영어로 준비해 놓아야겠어요. 매년 똑같은 리액션도 5년째 되니까 질리지만, 알고 있는 표현안에서 돌려막기 해야하니 힘드네요. 획기적인 표현 있으면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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