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내각
1차 이토내각 1885년~1888년, 2차 이토내각 1892년~1896년, 3차 이토내각 1898년
4차 이토내각 1900년 ~1901년 총 재임기간 7년 7개월
이토 내각은 그야말로 일본에서 가장 위대한 내각이라고 할수 있다. 일본의 근대화된 헌법을 정립해서 기초를 다지고 1894년 당시 조선의 지도층인 고종과 민비가 자국내 일어난 죽창으로 무장한 동학농민난 하나 진압을 못하자 청나라에 군대파병을 요청해서 당시 텐진조약에 의거해서 일본군 역시 조선에 군대를 파견할수 있는 명분이 생기자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곧바로 조선에 한양으로 군대를 파견해서 경복궁을 기습공격해서 점령하고 고종을 포로로 잡아서 조선에게 자신들 친일정권을 세울 명분으로 강제로 개혁을 강요하고 자신들 입맛에 맞는 친일정권을 세우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당시 덩치만 큰 병든 호랑이인 청나라를 상대로 기습공격으로 청일전쟁을 일으켜서 압승을 거두며 승리의 대가로 대만을 얻어 마침내 일본은 해외 식민지를 거느린 제국이 되는데 성공하고 청나라의 1년 예산에 2배, 일본 1년 예산에 4배에 해당하는 막대한 배상금을 얻어서 이때 얻은 배상금으로 일본은 더욱더 빨리 군사강국으로 거듭나서 훗날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는데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 청일전쟁 이후로는 러시아가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차지하겠다고 드러내자 조선의 고종과 민비가 그런 러시아를 끌여들이자 친러세력의 수장인 민비를 제거해서 조선내 러시아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서 을미사변을 실행해서 민비를 시해하였지만 고종의 아관파천으로 이후 오히려 조선내 러시아의 영향력이 더 커져서 결과적으로 당초 목표는 실패한 셈이 되어서 일본의 조선지배는 10년은 더 힘을 모아서 때를 노려야만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부국강병을 추진해서 일본을 강력한 군사강국으로 만들고 일본을 일본제국으로 만든 큰 업적을 가진 내각이라고 평가할수 있다.
1차 가츠라 내각 1901년~1906년, 2차 가츠라 내각 1908년~1911년 총 재임기간 , 3차 가츠라 내각 1912년~1913년,
총 재임기간 7년 11개월
가츠라 내각은 러일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러시아의 견제의 필요성을 미국과 영국에 호소해서 확실하게 자신들의 편으로 끌여들어서 대규모 지원을 약속받았고 실제로 미국과 영국에 막대한 지원을 받아서 러일전쟁을 개전시키고 러일전쟁 도중에도 아카시 모토지로같은 유명한 첩자들을 러시아에 파견해서 러시아내에서 각종 혁명시위를 선동함으로서 첩보전까지 동원해서 러일전쟁을 일본의 승리로 만드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영일동맹과 가츠라 테프트 조약으로 확실하게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서구 열강들로부터 인정 받고 조선에 이토 히로부미를 파견해서 조선을 협박해 을사조약으로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시켜 조선을 확실히 일본의 속령으로 만들고 1907년 러일협약을 맺어서 러시아로부터 확실하게 일본이 조선을 병합하는 것을 묵인받고 1909년 남한대토벌 작전으로 조선내 의병들을 대규모로 토벌해서 한반도내 의병들을 뿌리를 뽑고 1910년 마침내 조선을 병합하고 1911년 서구열강들과 그동안 맺었던 모든 불평등 조약을 폐지하면서 더디어 일본이 서구열강들과 거의 대등한 취급을 받는 열강이 되는데 성공한다. 당시 일본에게 가장큰 숙제였던 러일전쟁을 외교까지 동원해서 일본의 승리로 만들고 일본의 오랫동안 숙원인 조선을 병합하고 일본이 서구열강들과 대등한 취급을 받는 제국주의 열강으로 만든 업적을 가진 내각이라고 할수있다.
이둘다 일본역사상 가장 업적이 크고 위대한 내각이지만 난 개인적으로 일본이 열강이 되는데 초석을 다진 역할을 했던 이토 내각을 가츠라 내각보다 좀더 높이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