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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테타가 용두 사미로 끝난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원인은 국회 장악에 실패한것이 결정적이었다.
계획대로 장악해서 계엄 해제 투표가 진행 되지 못했다면 법적으로 계엄이 유지 되었을 테고 체포 명단에 있던 정치인들이 모두 잡혔을 것이다.
그럼 당연히 계엄 해제는 완전히 불가능해지고 윤이 바라던 일본식 유사 민주주의 사회가 왔을 수도 있었다.
그럼 왜 실패 했을까, 가장 큰 이유가 707 진입이 늦은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사실 이게 늦은 것이 아니라 바꿔 말하면 계엄 선포가 빨랐다고 하는 것이 옳다.
기습작전의 기본은 상대방이 대비할 틈을 주지 않는 것이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계엄군이 국회를 장악하고 난 다음 계엄이 선포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엔 계엄 선포되어 국회 위원들과 시민들이 국회로 모이는 과정에 계엄군이 함께 왔다.
도무지 이해 안되는 상황이다.
빨리오려고 했겠지, 맞다. 빨리 오려고 했다. 하지만 일에는 항상 변수라는 것이 있다.
뜻하지 않게 늦게 도착했다 하더라도 계엄선포를 그에 맞게 하면 될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계엄 선포를 특전사령관의 국회 장악 보고를 받고 했다면 윤의 계엄은 계획데로 진행 되었을 것이다.
그럼 왜 굳이 국회 장악 전에 먼저 했을까?
믿고 싶지 않지만 점지(?)해준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 였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12월 3일 10시 30분 계엄 선포. 十二월(王), 三일十시(王), 三十분(王). 王王王
cf, 아마 국방장관이 시간안에 국회장악이 문제 없다는 호언장담 했을 것이고 이것이 또한 오판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항상 무능한 사람들은 자기 능력 이상의 과시를 한다. 2차 대전 독일의 망테크는 스탈린그라드 전투 패배에서 시작되었고 히틀러의 오판에는
충분한 물자를 공수 지원 할 수 있다고 장담한 2인자 괴링의 호언장담이 있었다. 무능하 자들을 입맛에 맞는다고 쓰는 독재자들의 공통된 말로 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