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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투더코아의 詐欺 列傳]38.한신.노관열전(韓信.盧綰列傳)
게시물ID : history_155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투더코아
추천 : 11
조회수 : 83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4/28 01:14:42

투더코아의 詐欺 列傳.

http://www.podbbang.com/ch/6526   <ㅡㅡ 팟캐스트를 들으시려면 이곳을 클릭하세요~ ^^


*한신.노관열전(韓信.盧綰列傳) 


한나라가 항우를 거꾸러뜨리고 천하를 평정할때 각국제후와 여러 영웅들은 한뜻으로 한왕을 섬겼다.

그러나 오히려 천하가 크게 안정된후에 각 봉국의 제후왕이 대부분 모반 하였으니 이것이 어찌된 일인가?

처음에 지위와 석차가 정해지자 여러 군웅들은 모두 머리숙여 황제에게 복종하고 각자의 반열에 서서

북면하고 공손히 고조를 섬겼다.

그렇지만 세상의 인심은 변하여 안정된 황실은 제후 왕들의 권세가 두려워졌고

제후 왕들 역시 죄를입어 주살될것을 걱정하게 되었다.

한왕 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조를 따라다니며 충성을 다했지만 결국 사세가 변하여 흉노에게 항복하고

한나라를 배반했으며

연왕 노관은 태어나는 날부터 천하를 평정하기까지 고조를 따랐으나 존귀해진 이후에 사세에 따라

고조를 배반했다.

 

권세는 부자지간에도 나누지 않는다 하지만 평생의 벗에게 배신당한 고조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가히 짐작할수 있을것 같다.

 

초나라와 한나라가 서로 대치할때 한왕 신은 고조를 위해 영천을 진압하고,

노관은 항우의 군량운송을 차단했다.

 

지금부터 한신과 노관의 이야기를 알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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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관 과반의(盧綰 果反矣)

 

왕(韓王) 신(信)은 본래 삼진의 한나라 양왕의 얼자의 후손으로 키가 팔척 오촌이었다.

항량이 초회왕을 세울때 연.제.조.위 에는 옛 왕족들로 그 후손을 찾아 다시 왕으로 봉할수 있었지만

오직 한나라만이 적손이 없어 왕을 세울수 없었다.

그래서 한의 여러 공자들 중에서 횡양군 성 을 찾아 한왕으로 삼을수 있었다.

 

항량이 한나라의 옛땅을 진무하여 평정하려고 진격했다가 진나라 장수 장한에게 정도에서 패해 죽자

한왕 성은 초회왕에게 달려가 몸을 의탁했다.

 

패공이 군사를 이끌고 양성을 칠때 장량을 한나라 사도로 삼아 한나라의 옛 성읍들의 항복을 받아

그곳을 진무했다.

그때 한나라 공족 출신인 한신은 그 병사들과 함께 패공에게 귀의하여 무관으로 들어갔다.

 

유방이 항우에 의해 한왕(漢王)에 봉해지자 한신은 다시 한왕을 따라 한중으로 들어갔다.

한신이 유방에게 말했다.

 

"항왕은 제후들을 모두 출신지와 가까운 곳의 왕으로 삼고 오로지 대왕만 홀로 오지인 이곳에 봉했으니

이것은 좌천입니다.

대왕의 병사들은 모두 산동 출신이라 그들은 하나같이 발돋움하여 고향쪽을 바라보며

매우 간절한 마음으로 돌아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동쪽 고향을 향하고 있는 마음을 이용하여 예봉으로 삼는다면 가히 천하를 다툴 수 있습니다."

그후 한중에서 나간 고조가 다시 관중으로 돌아가 삼진을 평정했다.

고조는 즉시 한신을  한나라의 태위의 신분으로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한나라의 옛 땅들을 공략하도록 하였다. 

한나라가 한신을 시켜 옛 한나라 땅을 공략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항우는

옛날 자기가 오군에 있을 때 교유했던 오군의 수령 정창을 한왕으로 임명하여 한나라에 대항하도록 했다.

 

한왕2년

신이 한의 10여개 성을 공략하여 평정했다.

고조가 하남에 당도하자 신과 함께 정창을 맹공하여 항복을 받아냈다.

고조는 신을 한왕으로 봉했다.

한왕 신은 언제나 군사를 이끌고 고조를 수종했다.

 

한왕3년

고조가 형양을 탈출하자 한왕 신과 주가 등이 형양을 지켰으나 

초나라가 형양성을 함락시키자 한신은 초나라에 항복했다가 기회를 보아 도망쳐 한나라에 돌아왔다.

고조는 다시 한신을 한왕(韓王)으로 세웠다.

 

한왕 신은 계속 고조를 수종했고 결국 유방이 항우를 격파하고 천하를 평정하는데 공헌했다.

 

한왕5년

고조는 드디어 할부를 갈라 한신을 정식으로 한왕에 봉하고 영천에 도읍하도록 하였다.

 

이듬해 봄.

고조는 한신처럼 용맹하고 재주있는 인물이 사방이 요충이며 거세고 사나운 군사들만 득실거리는곳에

위치하고 있는것이 못내 마음이 쓰여서 그의 봉읍을 옮겨주려 하였다.

그래서 고조는 조칙을 내려 한신을 태원 이북으로 옮겨 북쪽 오랑캐들의 침입을 방비케 하고

도읍을 진양으로 옮기게 하였다.

 

그때 한왕 신이 상주하였다.

 

"이곳은 흉노가 자주 침범하는데 도읍 진양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효과적으로 대응할수 없으니

청컨대 마읍으로 도읍을 옮기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요."

 

고조는 그 말을 옳다하여 허락 하였고 한왕 신은 곧 마읍으로 옮겨갔다.

 

그해 가을 흉노선우 모돈이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와 마읍의 한왕 신을 포위했다.

한왕 신은 사자를 흉노 진영으로 보내 강화를 요청했다.

 

태원이 위급하다는 소식을 들은 고조는 군사를 보내 한왕 신을 구원하려고 했다.

그러나 한왕 신은 이미 강화 했기때문에 구원병이 왔다해도 함부로 흉노를 공격할수 없었다.

 

결국 조정에서는 한신이 자기 마음대로 사자를 흉노 진영으로 보내 강화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가 두 마음을 품고 있지나 않은지 의심하고 사자를 보내 한왕 신을 꾸짖었다.

 

이에 주살되지나 않을까 걱정한 한왕 신은 마읍성을 흉노왕에게 바치고 흉노에 투항한 후에

흉노와 함께 한나라를 공격함으로 해서 공개적으로 한나라에 반기를 들었다.

 

한왕7년

고조가 친정에 나서 동제에서 신의 군사를 격파하고 부장 왕희를 베자 신은  흉노땅으로 도주했다.

 

신의 휘하장수 만구신과 왕황등이 조나라의 후손 조리 를 세워 조왕으로 삼고 신의 패잔병을 긁어 모은후

신.흉노선우 묵특 등과 연합하여 광무에서 진 치고 남하하여 진양에서 한군과 싸웠다.

그러나 흉노군이 크게 패하여 누번땅까지 도망하여 전열을 재정비 했다.

흉노는 한의 거기장군에게 다시 패하여 또다시 북쪽으로 달아나서 대 땅의 상곡으로 숨었다.

 

승승장구한 한군이 흉노를 정탐한 후에 고조가 직접 평성까지 나아가 백등산을 지날때 

느닷없이 나타난 흉노의 기병에게 고조가 포위 되었다. 

흉노가 총 공격 해오면 고조는 물론이요 한군 전체가 몰살 당할 위기에 빠지고 말았다.

 

고조가 매우 난처한 위기에 빠졌을때 진평이 계책을 내어 아뢰었다.

"제 부하중에 이곳 출신이 있어 흉노왕 묵특이 애첩 연씨와 잘 아는 사람이 있으니

그에게 큰 선물을 주어보내 애첩 연씨로 하여금 묵특을 잘 달래보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뇌물을 받아먹은 묵특의 애첩 연씨가 묵특을 달랬다.

 

"우리가 한나라 땅을 얻는다 해도 어차피 그곳에서 살것도 아닌데

양국의 군주끼리 서로 괴롭혀서 무엇이 이롭겠습니까?"

 

그리하여 7일만에 흉노가 포위를 느슨히 하고 한군에대한 감시를 소홀히 했지만

포위를 완전히 풀지는 않았다.

 

이날밤에 날씨가 크게 변해 백등산 주변에 안개가 심하게 끼어 옆사람을 알아볼수 없을 정도였다.

한나라 진영에서 사람을 시켜 정탐해본 결과 흉노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때 호군중위로 종군하고 있던 진평이 황제에게 말했다. 

"흉노 병사들은 모두 단병에 능합니다.

그러니 우리 군사들에게 강한 쇠뇌를 모두 소지하게 하여 그 쇠뇌를 힘껏 잡아당겨

화살 2개 씩을 장전한 후 화살촉 방향을 밖으로 향하게 한 다음

천천히 이 포위망을 뚫고 빠져나가는것이 좋을듯 합니다."

과연 흉노의 저항은 없었다.

고조와 한나라 군사들이 모두 포위망을 무사히 빠져나와 평성으로 들어갔을때

마침 한나라 구원병이 당도하였다.

이 싸움에서 크게 혼이난 고조는 이 싸움이 의미가 없다하여 군사를 파하고 철수했다.

한신은 그 후에도 흉노의 군사들을 이끌고 한나라 변경을 자주 공격했다.

 

한왕10년

신은 왕황등을 시켜한나라의 진희를 설득해서한나라에 모반하도록 했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하고 진희의 몸만 망치게 했다.

 

한왕11년

신은 삼합현에서 흉노기병을 거느리고 한군에 저항했다.

이에 고조는 시장군을 보내 신을 치게 하였다.

 

시장군이 신에게 편지를 보내 타일렀다.

"황제폐하는 너그럽고 인자한 분이시니 회개하고 다시 돌아오면 반드시 그대를 용서하고

종전의 지위를 돌려줄것이오.

더구나 그대는 일시적으로 싸움에 져서 흉노에 투항한것일뿐이니 대죄도 아니오.

그러니 걱정말고 하루속히 한나라의 품으로 돌아오시오."

 

신이 시장군에게 답장을 썼다.

"폐하께서 나를 시골에서 뽑아 왕으로 삼으셨소.

그러나 나는 형양의 싸움에서 죽지 못하고 항우에게 항복 했으니 이것이 나의 첫번째 죄요.

흉노가 마읍을 공격했을때 나는 마읍을 굳게 지키지 못하고 성읍을 들어 항복하고 말았으니

이것이 나의 두번째 죄요.

지금은 오히려 흉노를 이끌고 한나라 장군에게 대항하고 있으니 이것이 나의 세번째 죄요.

옛날 대부 문종과 범려는 한가지 죄도 없으면서 죽었는데 나는 이미 세가지씩이나 죄를 지었으면서

그러고도 살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마치 오자서가 부차를 떠나지 않고 있다가 죽은것과 다름이 없소.

나는 요즘 산골에 숨어 살면서 오랑캐들에게 구걸하여 살고있소.

이제 나는 한나라로 돌아갈수 없소이다."

 

결국 양군이 교전에 들어갔다.

시장군은 삼합의 흉노를 모두 죽이고 드디어 한신의 목을 베었다.

 

신의 후손중 퇴당과 영 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한 효문제 14년에 퇴당과 영 이 부하들을 이끌고 한나라에 항복했다.

한에서는 퇴당을 궁고후. 영을 양성후로 삼았다.

그 후손들은 혹은 죄를 지어 죽기도 하고 혹은 열후의 작위를 물려받아 대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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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관(盧綰)은 풍 출신으로 고조와 같은 고을 출신이었다.

노관의 부친 역시 고조의 부친인 태상황과 사이가 좋았다.

두사람이 아들을 낳았는데 고조와 노관이 같은날에 태어나자 고을 사람들이 경사라면서

양고기와 술을 가지고 와서 이들을 축하했다.

고조와 노관은 장성해서도 사이가 좋았다.

고조가 포의시절에 죄를지어 숨어지낸적이 있는데 노관은 항상 고조를 따라다녔다.

고조가 패 땅에서 처음 봉기했을때 노관은 빈객으로 종군해 한중까지 따라들어갔고

태위가 되어 언제나 고조를 측근에서 모셨다.

노관은 유일하게 고조의 침실을 무상으로 드나들수 있었고 옷이나 음식들을 하사 받을때에도

다른 신하들이 감히 노관과 같은 총애를 바랄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소하.조참등이 특별한 예우를 받기는 했지만 노관에는 결코 미치지 못했으며 그들이 노관을 대할때도

특별한 예의를 갖추었다.

노관은 봉작되어 장안후가 되었는데 장안은 진나라 시절의 함양성 이었다.

 

한왕 4년

항우를 격파한 고조가 노관을 별장으로 임명하여 유가와 함께 임강왕 공위를 토벌하게 했다.

노관과 유가는 공위를 격파하고 7월에 개선했다.

그리고 곧바로 연왕 장도를 토벌하기 위해 출전하는 고조를 종군하여 연왕장도의 항복을 받아냈다. 

고조가 천하를 평정했을때 유씨가 아닌 제후중에서 왕위에 오른 사람이 일곱이었다.

고조는 노관을 왕으로 세우고 싶었지만 군신들의 반발이 염려되어 실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연왕 장도를 사로잡자 즉시 조서를 장군.대신 및 열후에게 내려

여러 군신들 중 공이 높은 자를 택하여 연왕으로 세우라고 했다.

군신들은 황제가 노관을 왕으로 세우려는 뜻을 짐작하고 모두 말했다. 

"태위 장안후 노관은 폐하께서 천하를 평정하실때 항상 곁에서 수행하며 그 공이 가장 큼으로

연왕으로 세우심이 마땅합니다."

 

한왕5년

고조가 드디어 할부를 갈라 노관을 연왕으로 세웠다.

제후왕들 중 연왕처럼 황제의 총애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왕11년

진희가 대 땅에서 모반했다.

고조가 친정하여 한단에서 진희를 쳤다.

노관이 종군하여 그 동북쪽을 공격했다.

 

다급해진 진희가 왕황을 사신으로 흉노에 보내 구원을 청했다.

그러한 사실을 정탐하여 알아낸 노관은 자신의 신하 장승을 사신으로 삼아 흉노에 보내어

흉노가 진희를 돕지 못하도록 교섭하려 했다.

그런데 장승이 흉노땅에 가보니 옛 연왕 장도의 아들 장연이 그곳에 도망해 있었다.

장연이 장승을 보자 이렇게 말했다.

"그대가 연나라에서 중용되는 까닭은 흉노의 사정에 밝기 때문이오.

그러나 지금 진희가 망하고 나면 그 다음은 연나라 차례요.

연나라가 망하고 나면 그대역시 한나라의 포로가 될것이니 그것은 그대를 위해 옳은 계책이 아니오."

이 말을 들은 장승도 그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장연과 장승은 서로 계책을 나누어 연왕 노관을 꾀어 흉노에 대한 공격을 늦추고

연나라와 흉노의 화친을 맺도록 하기로 하였다.

 

연왕 노관은 장승이 배반 했다고 생각하여 그 가족을 모두 죽이려 하였지만

장승이 귀환하여 상황을 설명하고 연왕에게 흉노와 화친을 맺을것을 권했다.

 

연왕은 장승의 말에 넘어가 마침내 장승과 그 가족들을 흉노로 보내 간첩이 되게 하고

범제를 밀사로 진희에게 보내어 서로 싸우는척 하고 시간만 보내기로 약속 했다.

 

한왕12년

사건의 발단은 엉뚱한곳에서 터졌다.

고조가 동쪽으로 가서 구강왕 경포를 토벌할때 진희는 대땅에서 계속 항거하고 있었다.

고조가 번쾌를 대 땅으로 보내어 진희를 토벌하고 그 목을 베었다.

그때 사로잡힌 진희의 비장이 투항하면서 실토했다.

"연왕 노관이 범제를 시켜 진희와 내통했습니다."

 

고조는 그말을 전혀 믿으려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여 사자를 보내어 노관을 소환 했다.

겁이난 노관은 병이라 핑계대고 고조에게 가지 않았다.

고조가 다시 벽양후 심이기와 어사대부 조요를 보내어 노관을 독촉하여 소환했다.

노관은 더욱 드려워서 궁궐 내에서 문을 걸어잠그고 나오지를 않았다.

 

노관은 문을 걸어 잠그고 자기 주변의 총신에게 불평하듯 넉두리를 했다.

"유씨가 아니면서 왕이된자는 나와 장사왕 뿐인데 이제 나도 위태로워 졌다.

조정에서는 작년에 회음후를 죽이고 팽월마저 주살했다.

지금 황제폐하는 병중이시라 모든 정사를 여후가 도맡고 있는데 그 잔인한 여자는

동성이 아닌 제후들을 죽이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노관은 끝내병을 핑계로하여 출두를 거부했다.

그러자 주살당할것을 두려워한 주변 신하들도 모두 달아나 숨기에 바빴다.

결국 노관이 총신에게 한 말이 누설되었고 벽양후 심이기가 그 말을 고조에게 가서 아뢰었다.

그때까지도 고조는 그것만으로는 노관이 배반했다고 볼수 없다며 노관을 두둔하려 했다.

그러나 다시 흉노에서 항복한자가 있어 그를 취조 하였더니 그가 이렇게 말했다.

"장승이 흉노땅에 와있는데 그는 연나라 사신의 신분으로 있습니다."

고조는 크게 낙담하고 탄식했다.

"아아,노관은 과연 배반 했구나!"

 

너무도 실망한 고조는 병석에 눕고 말았다.

번쾌가 고조를 대신하여 군사를 이끌고 연나라를 토벌하러 나섰다.

 

노관은 자신의 궁인과 가속들과 기병 수천을 이끌고 장성밑으로 나와서 황제의 안부를 묻고

다행히 황제의 병이 낫게되면 죽음을 무릅쓰고 입조하여 죄를 청하고 용서를 빌겠다고 말 하였다.

 

그러나 노관은 그런 기회를 얻지 못하고 4월에 결국 고조가 붕어 하였다.

여후의 보복이 두려워진 노관은 일행을 이끌고 흉노땅으로 달아났다.

흉노는 노관을 동호의 노왕 으로 삼았다.

 

그러나 노관은 북쪽 흉노땅에 적응하지 못했고 또 주변 오랑캐들이 자주 습격하여 약탈하였기 때문에

몹시 괴로웠다,

그래서 노관은 한나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노관은 끝내 한나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일년쯤 뒤에 흉노땅에서 죽었다.

 

고후때에 노관의 아내가 흉노땅에서 도망해 한나라로 투항했다.

그러나 당시에 고후가 병들어 있었기때문에 고후를 만나지 못했다.

노관의 아내는 도성에 있는 연왕의 저택에 머물며 고후가 쾌차하면 크게 술잔치를 마련하여

고후를 뵈려 했으나 고후역시 그대로 죽고 말았다.

 

효경제 6년

노관의 손자 타지가 동호왕으로서 한나라에 투항했다.

한나라에서는 그를 아곡후에 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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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희(陳豨)는 완구 사람이었다.

그가 처음에 어떻게 고조를 따라다녔는지는 알수 없다.

 

한왕 신 이 모반했을때 고조는 평성까지 나아가 신을 쳤지만 성과없이 되돌아 왔다.

그때 고조가 진희를 열후로 삼았다.

 

진희는 그때 조나라 상국이었는데 또한 장군으로 삼아 조나라와 대나라의 변경의 군사를

감독하게 했기 때문에 변경의 군사들은 모두 진희가 거느리고 있는 셈이었다.

 

진희가 휴가를 얻어 조나라를 지나갈때 조나라 상국 주창이

진희와 그 빈객들의 행렬이 수레가 천여대나 되는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한단의 저잣거리가 그 수레로 가득하고 여관과 숙사가 모두 만원이 되어 모자랄 지경이었다.

 

주창은 빈객들이 어째서 진희를 따르는지 유심히 살펴 보았다.

진희는 빈객들이나 포의때 사귄 친구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몸을 굽혀 예로써 정중하게 대했다.

 

진희가 다시 대 땅으로 돌아가자 주창이 경사로 올라와 황제에게 접견을 청했다.

황제를 접견한 주창이 진희의 빈객들이 너무 많음을 고하고 

그것이 분명 무슨 의도가 있을것이라  하는 뜻을 설명한후

그가 군권을 갖고 오랫동안 변경에 머무르다가 혹시라도 변란이라도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고했다.

고조가 그 말을 듣고 진희가 의심이 되어 몰래 사람을 풀어 진희의 뒷조사를 하게 되었고

심지어 진희의 주변사람과 빈객들의 축재과정까지 탐문하게 했다.

 

이런사실을 진희가 모를리가 없었다.

가뜩이나 주변사람들과 빈객들이 진희와 연루되어 있었던것도 사실이었다.

 

죄를 입게 된것이 두려워진 진희는 미리 대비책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하여 몰래 사람을 보내어

왕황과 만구신과 내통을 해 두었다.

 

한왕10년

7월에 태상황이 붕어했다.

고조가 그것을 핑계로 진희를 불렀지만 진희는 병을 핑계로 내조하지 않았다.

 

그해 9월에 진희가 드디어 왕황등과 함께 한나라를 배반하고 스스로 대(代)왕이 되어

대와 조 땅을 공략했다.

 

고조가 진희의 반란소식을 듣고 친정하여 한단에 이르렀다.

고조는 진희가 차지하고 있는 지역을 살펴보고는 말하였다.

"진희는 오래가지 못한다.

진희가 남쪽으로 장수에 의지하여 한단을 지키지 않았으니 그가 무능한 자라는 것을 알겠도다."

 

반란에 가담했던 조나라와 대나라의 관리및 백성들이 고조앞으로 끌려나왔다.

고조가 직접 심문하여 물었다.

"너희가 반란한것은 본심이 아니고 진희의 협박에 못이겨서 그리 한것이 아니냐?"

"그러하옵니다."

"그렇다면 모두 용서해 주겠다."

 

조나라 재상 주창이 상산이 20여개 성이 진희의 모반에 가담했으므로 이들을 쳐야한다고 주청했다.

고조가 물었다.

"그들이 처음부터 반란에 가담했는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그들이 진희보다 힘이 약해서 그런것이다."

 

고조는 오히려 그들을 모두 용서하고 다시 상산의 군수와 위 로 임명했다.

 

고조가 주창에게 명하였다.

 

"조나라에 장군으로 삼을만한 인물이 있으면 몇명 천거하라."

그리하여 주창이 네명의 젊은 장수들을 천거하여 데려왔다.

 

고조가 그들을 굽어보고 꾸짖었다.

"이런 어린아이 놈들을 장군을 삼으라는 말이냐?"

 

네사람이 두려워 땅에 엎드려 말했다.

"저희는 아무것도 모르고 황상앞에 불려나왔을 뿐입니다.

그저 부끄럽고 두려울 뿐입니다."

 

고조가 다시 그들을 굽어보다가 말하였다.

"어쨌거나 장군을 시켜주면 잘 해보겠느냐?"

"신명을 바쳐 열심히 하겠습니다."

"좋다

너희 넷에게 천호를 봉하고 장군으로 임명하겠다."

 

고조는 뜻밖의 전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좌우의 신하들이 불평을 했다.

"폐하를 따라 죽음을 무릅쓰고 한중과 촉땅까지 들어가고 초나라를 정벌하고도

아직 논공행상을 받지 못한사람이 부지기수인데 어찌

아무 공로도 없는 저런자들에게 봉읍까지 주어가며 장군에 임명하시는 것입니까?"

 

고조가 대답 하였다.

 

"그대들의 알바가 아니다.

진희가 모반하여 한단 이북이 모두 진희의 세력이 되었는데 짐이 친정하여 천하에 격문을 띄웠건만

아직까지 아무도 달려오는자가 없으니 내가 믿을수 있는것이 누구인가?

 

오직 이곳 한단성의 병사들 뿐이다.

짐이 지금 4천호를 아껴 무엇에 쓰겠는가?

네사람을 후하게 대하여 장수에 임명한것은 조나라의 자제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여 쓰기 위함이다."

 

그제야 주변의 신하들이 감탄했다.

"과연 그러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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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가 진희의 휘하장수들에 대해 알아보니 왕황과 만구신 이라고 하였다.

고조가 말하였다.

"나도 그자들을 알고있는데 그들은 예전에 장삿꾼 출신이니 내 그들을 잡을 방법을 알겠다."

고조는 그들의 목에 천금의 현상금을 걸어 격문을 띄웠다.

 

고조 11년

한군이 진희의 장수 후창을 곡역에서 참수하고, 다시 요성에서 진희의 장수 장춘과

그 군사 1만여 명의 목을 베었다.

태위 주발이 태원과 대 땅을 공략하여 평정했다.

 

그해 12월에 고조가 몸소 동원을 공격했으나 항복받지 못하고

오히려 군사들에게 심한 욕지거리만 듣고 돌아왔다.

 

나중에 동원을 항복시키고 나서 고조는 그때 욕을 한 군사들을 잡아내어 참수하고

욕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 옆에서 잠자코 있던 자들은 경형에 처하였다.

 

왕황과 만구신은 천금의 현상금을 탐낸 그들의 부하들에게 사로잡혀 끌려와 사형을 당하였다.

이리하여 진희의 모반은 패멸하였고 진희는 달아났지만

고조11년에 번쾌의 끈질긴 추격으로 영구땅에서 진희를 잡아 그 목을 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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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열전의 말미에 사마천은 이들에대해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한신과 노관은 조상대대로 덕을 쌓아 제후 왕이 된것이 아니고

한때의 권모술수와 사기.폭력으로 공을 이룬자들이다.

 

그들은 한나라가 천하를 평정하는 초기에 고조를 만나 왕이 될수 있었지만

오랑캐를 의지했기때문에 의심을 받았다.

스스로 위험을 자초하여 마침내 지모는 바닥나고 힘은 다해서 흉노로 달아났으니

어찌 슬픈일이 아니겠는가?

 

진희는 양 땅 출신으로 젊을때 위공자 신릉군을 사모했다.

변경을 수호하는 장군이 되었으나 명성이 실력보다 지나쳐서 주창의 의심을 받았다.

자신의 몸에 화가 미칠것이 두려워 무도한 짓에 빠졌으니 어찌 슬프지 않은가?

계락의 익고 설익음과 또 성공과 실패가 사람의 운명과도 깊은 관계가 있으니

그 도리는 매우 심오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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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한신.노관열전을 모두 살펴 보았다.

 

한왕신은 자기의 조상이 왕족이었던 이유로 고조에 의해 한왕에 봉해졌다.

재주와 용맹이 뛰어났으나 흉노와 내통하여 결국 몸을 망쳤으니

결국 흉노땅에서 아침저녁으로 오랑캐들에게 구걸하게 된것은 모두 자신의 잘못이었다.

마지막에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으나 이미 돌이키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으니

그 또한 운명이랄수밖에 없을듯 하다.

 

노관은 고조와 한날 태어나 평생을 친구로 지낸사람이다.

고조또한 어릴적의 우정을 잊지 못하여 국가의 기둥인 소하나 조참보다도 그를 더 귀하게 대했으나

결국 사악한 무리들의 꾐에 빠져 스스로를 망쳤다.

그가 모반했다는 소식에 고조가 몸져 누울정도였으니 고조의 배신감이 얼마나 컸을지 알듯하다.

나중에 뉘우쳐 반성하고 고조가 쾌차하면 죄를 청하려 했지만 이미 때를 놓쳐서 고조가 붕어하고 말았으니

그또한 운명이 아니겠는가?

결국 필자의 생각에는 고조의 죽음이 그에대한 배신감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한나라의 개국주를 죽게 한것은 노관이라고 말할수 있겠다.

 

진희는 황제의 신임을 받아 변방의 모든 군사를 휘하에 두고 커다란 권세를 휘둘렀지만

그는 스스로 겸손하지 못하고 사사로이 빈객을 키우고 자신의 명성을 구축했다.

전국시대때의 위공자를 흉내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듯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시절이 바뀌었음에도

몸을 낮춰 겸양하지 못하고 자신을 자랑했으니 이는 막대한 군사를 이끌고 변방에 나가있는 장수로서

취할 행동이라 할수 없다.

 

사마천이 이들 세사람을 덕이 없고 그저 권모술수로 성공한 자들이라고 평한데에 그 이유가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음이 있다.

 

이들은 모두 최고의 지위에 올라 부귀영화가 넘쳤으나 애초에 그러한 명성을 얻을만한 인물이

못되었던 사람이라고 볼수있다.

그러한 자들이 극도로 존귀해 졌으니 한편으로는 자신감이 넘쳤겟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교만함도 함께 성장 했을것으로 생각된다.

 

무릇 사람이 귀해지면 빈천했을때를 기억해야하고,성공했을때에는 어려울적을 잊지말아야 하는 법이거늘

이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사람이 성공하고 귀해졌을때 어찌행동해야 할지를 배우지 못한다면

그또한 어리석은자라 말할수밖에 없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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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라에 큰 재앙이 내려 수백명의 인명이 희생되는 끔찍한 참사가 벌어졌다.

이제 사고가 벌어진지 벌써 10여일이 지났음에도 단 한명의 인명도 구해내지 못하는

이나라의 재난 구조능력에 할말을 잊었다.

 

이미 선사로부터 선장까지, 또 대통령으로부터 총리.장관.말단 공무원까지.

그들의 마인드와 능력의 민낯이 속속이 드러났다.

 

그에대한 정보야 독자여러분도 이미 잘 알고있으려니와 더이상 언급할 가치도 없을듯 하다.

 

그러나 이제 이나라는 정말로 큰일이 났다.

이 사고에서 남은 교훈이란것이 ㅡ시키는대로 말을 듣는자는 죽는다ㅡ 라는 것 뿐이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는가?

이제 앞으로 이나라에서 대형사고가 벌어지면 더이상 통제는 이뤄지지 않을것이다.

대구 지하철 역 화재사건에서 보고 또 이번 세월호에서 보았듯이

시키는대로 말을 들으면 죽는다는것이 틀림없는 나라에서

어느누가 통제에 따를것이며 어느누가 책임자의 말을 믿갰는가?

 

그러한 일이 없어야 할것은 물론이지만 만약 차후에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을때 벌어질 끔찍함은

상상하기에도 두려울 따름이다.

 

더욱 처참한것은 이번사건이과연 끝일것인가 하는 생각이다.

이나라에서 이제 더이상 이러한 비참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것이라 확신할수 있는가?

 

필자는 오히려 그 반대의 생각을 할수밖에 없다.

 

화불단행.

화 와 재앙은 혼자 오지 않는다.

이러한 재앙이 벌어진 이유가 반드시 있을것이니 그 이유가 어디 세월호에만 영향을 미쳤을 것인가?

이제 이나라는 더이상 믿을수 없는곳이 되어버렸다.

앞으로 얼마나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는것 조차도 두려울 뿐이다.

 

어느 네티즌의 글에 이러한 글귀를 보았다.

 

"국민여러분은 이 대한민국호 에서 즉시 하선할것을 명령할...권한은 없지만 퇴선할것을 호소한다."

 

이제 국민은 각자 살아남는길 밖엔 없을듯 하다.

국가가 지켜주지 않는데 더이상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능력이 되는사람들은 퇴선하시길 필자도 권한다.

 

그러나 필자같은 사람은 퇴선하려해도 구명조끼도 없고 구명보트에 올라타려해도

그곳까지 갈 힘도 없으니 이를 어찌하란 말인가?

나와같은이가 어찌 나뿐이겠는가.

무슨 방법으로 나와 가족의 생명을 지켜낼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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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선왕이 맹자에게 물어 가로되

성군이라하는 탕왕이 걸왕을 죽이고 무왕이 주왕을 죽였다 하는데 그런일이 있었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인을 해치는자를 적 이라 하고 의를 해치는자를 잔이라 하는데 이러한 자를 일부 라 합니다.

저는 탕.무 가 개새끼를 죽였다는 말을 들어봤어도 그 임금을 죽였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라고 하였다.

 

탕.무 가 죽인것이 개새끼이지 어찌 왕이겠는가?

ㅡ임금이라도 백성을 돌보지 못하는자는 죽여야 한다ㅡ

고 하였으니 이제 내가 살기위해서 내가 무슨 일을 해야할지 알듯하다.

 

맹자가 말하기를 "인간에게는 네가지 단서가 있다" 하였는데,

측은지심=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수오지심=잘못을 미워하는 마음

사양지심=남에게 양보하는 마음

시비지심=옳고 그름을 가릴줄아는 마음

 

이 네가지를 일러 사단' 이라 하였다.

요즘말로 하면 네가지.즉 싸가지라 할수 있겠다.

 

맹자는 "이 네가지가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라고 하였는데

이제 이나라의 정권과 대통령은 저 네가지가 없다.

 

남을 불쌍히 여길줄도 모르고 잘못을 미워할줄도 모르며 양보할줄도 모르고

옳고 그름을 구별할 능력도 마음도 없다.

 

탕.무 는 그 임금을 죽였지만 그들이야 그만한 능력과 권세가 있어 그리 했을것이고

필자같은 사람이야 어디 그리 나서서 사람들을 지휘하며 남을 죽일 힘이나 있을것인가?

 

그러나 싸움이 벌어졌을때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함께 나가서 무명소졸로라도 참여하여

칼과 창을 들고 전투에 임했을때 물러서지 않고 죽는 그순간까지 분발하여 싸우겠다고 는

얘기할수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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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차가운 바닷물속에 아직도 남아있을 원통한 영혼들에게 삼가 애통한 마음을 전하며

혹시라도 남아있을 생존자에게 끝까지 힘을 내어 살아남아 돌아오기를 비는 간절한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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