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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척임
게시물ID : freeboard_20358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논개.
추천 : 8
조회수 : 85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4/11/24 20:55:36

나의 아비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 범주에 나와 엄마는 들어가 있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겐 그랬었다

 

강압적이고 폭력적이었던 행동과 표정이

집 밖으로 나갈 때면 옷을 갈아입은 것처럼

홀연히 사라진 모습이 신기해 길을 걸으며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던 게 생각난다

 

언젠가 한번 늦은 새벽 몸을 뒤척이다

코를 드릉드릉 골며 곤히 자는 그의 얼굴을 봤을 때

연민인지 무엇인지 모를 감정이 솟아올랐던 때가 있다

 

일어나서 여느 때처럼 직장을 가고 끼니를 먹고

집에 와서는 한결같이 나를 학대하고 엄마를 욕하고

여러모로 바쁜 하루를 보낸 후에 세상 편히 잠든 평온한 그 표정을 보며

솟아오르는 분노보다 왜 쏟아지는 연민이 더 컸는지는 모르겠다

 

내 위에 군림하지만 그저 결코 행복치 않을 이 삶을

나보다 좀 더 앞서 연명하고 있는 모습에 그랬는지

 

그래도 하루하루 살아가는 작은 보탬이 훗날의 빚인 걸 알고서라도

당신의 덕택임을 알고 있어서였는지

난 아직까지 그날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

 

연락 없이 끊어진 지가 어느덧 10여 년이 훌쩍 넘었다

당신이 없었어도 여전히 내 삶은

고단했지만 그래도 좀 덜하지 않았으려나

 

결코 그대가 그리워서 쓰는 글은 아니다

그냥 나는 아직도 여전히 그때에 머물러 홀로 뒤척이고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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