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비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 범주에 나와 엄마는 들어가 있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겐 그랬었다
강압적이고 폭력적이었던 행동과 표정이
집 밖으로 나갈 때면 옷을 갈아입은 것처럼
홀연히 사라진 모습이 신기해 길을 걸으며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던 게 생각난다
언젠가 한번 늦은 새벽 몸을 뒤척이다
코를 드릉드릉 골며 곤히 자는 그의 얼굴을 봤을 때
연민인지 무엇인지 모를 감정이 솟아올랐던 때가 있다
일어나서 여느 때처럼 직장을 가고 끼니를 먹고
집에 와서는 한결같이 나를 학대하고 엄마를 욕하고
여러모로 바쁜 하루를 보낸 후에 세상 편히 잠든 평온한 그 표정을 보며
솟아오르는 분노보다 왜 쏟아지는 연민이 더 컸는지는 모르겠다
내 위에 군림하지만 그저 결코 행복치 않을 이 삶을
나보다 좀 더 앞서 연명하고 있는 모습에 그랬는지
그래도 하루하루 살아가는 작은 보탬이 훗날의 빚인 걸 알고서라도
당신의 덕택임을 알고 있어서였는지
난 아직까지 그날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
연락 없이 끊어진 지가 어느덧 10여 년이 훌쩍 넘었다
당신이 없었어도 여전히 내 삶은
고단했지만 그래도 좀 덜하지 않았으려나
결코 그대가 그리워서 쓰는 글은 아니다
그냥 나는 아직도 여전히 그때에 머물러 홀로 뒤척이고 있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