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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드리는 꿈(14-3)
게시물ID : lovestory_9581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낭만아자씨
추천 : 1
조회수 : 171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4/11/14 10:5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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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

  그대에게 드리는 꿈


    14. 전야(3)



 “선생님, 저놈들에게 속아서는 안 됩니다. 저놈들은 가버리면 그만이지만 우리 조선인들은 자손대대로 살아야 할 땅이 아닙니까. 저놈들에게 우리는 하나라도 더 받아내야 하는 겁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저놈들이 얼마나 악독한 종자들입니까. 저놈들이 우리 조선인들을 괴롭힌 게 얼맙니까. 우리는 왜놈들에게 있는 대로 다 받아내야 되는 겁니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자못 심각한 얼굴로 말끝마다 우리 조선인, 우리 조선인, 하는 게 가관이었다. 마치 제 놈이 대단한 독립투사 같은 투였다. 이놈아, 그래, 네놈도 조선인인 줄은 아느냐? 여운형은 마음속으로 박가의 따귀를 올려붙이고 있었다. 엔도가 박가를 앞세운 것은 일분일초라도 빨리 합의문을 받아내기 위해서였다. 

 “선생님은 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제가 확실하게 전부 받아내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시오.”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고 짐짓 너를 믿는다는 투로 한마디 던졌다. 다시 나타난 엔도에게 여운형이 말했다.

 “총감 생각대로 세부사항은 박씨와 협의하시오. 그런데 이것 한 가지만 묻겠소. 지금 조선에 어느 정도의 식량이 남아 있소?”

 “추수 때까지는 먹을 식량이 남아 있습니다.”

 “무슨 거짓말을 그렇게 하시오! 이미 당신네들이 다 실어가지 않았소?”

 뻔한 거짓말을 하고 있는 엔도에게 여운형은 버럭 고함을 질렀다. 경향각지의 양곡창고에는 쌀뿐 아니라 보리쌀 마저도 바닥이었다. 공출과 동시에 왜국으로 실어간 지 오래였던 것이다. 누구라도 아는 사실이었다. 그것을 꺼낸 이유는 꼬투리를 잡아서 치안권을 빼앗으려는 것이었다.

 “여선생님, 거짓이 아닙니다. 확인해 보시면 아실 겁니다.”

 “확인해 보면 안다고 그랬소? 그러면 지금부터 직접 확인을 해 봅시다. 서류들이야 믿을 수 없는 것이고. 큰 창고들부터 확인합시다. 자, 앞장서시오!”

 엔도가 황급히 여운형의 소매를 잡았다.

 “예. 인정하겠습니다. 사실 별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금방 탄로날 거짓말을 왜 하고 그러시오! 이렇게 거짓말을 하면서 무슨 협상을 하자는 거요? 삼척동자도 알 일도 거짓말을 하는 상대와 무슨 협상을 하겠소! 계속 이렇게 나온다면 협상은 할 수 없소!”

 “이미 비어버린 창고를 어쩌겠습니까. 너그러이 용서하시고 협상을 계속하시지요.”

 “그런 무책임한 소리하지 마시오. 아직 추수를 하려면 두 달여가 남았소. 그동안 우리 인민들은 뭘 먹고 살란 말이오? 공출이라는 게 인민들이 안정적으로 식량을 구할 수 있도록 수급 조절을 관이 주도하는 것이 목적일 터인데 가뜩이나 넉넉하지 못한 식량을 그렇게 빼돌리면 어쩌자는 말이오? 우리나라 인민들은 다 굶어죽으란 말이오?”

 “그 문제는 저희 총독부에서 수일내로 해결하겠습니다. 안 되면 본국에서 다시 실어오겠습니다.”

 “분명히 약속할 수 있겠소?”

 “그야 여부가 있겠습니까.”

 식민지 인간에게 이런 수모를 당하다니. 머리를 조아리면서 엔도는 굴욕을 느꼈다. 여운형은 속으로 웃고 있었다. 왜국에서 되실어 오리라 믿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왜국도 식량이 바닥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각부터 우리 조선의 보물이 밀반출되는 것을 막으시오.”

 “예. 그렇게 하지요.”

 “그러면 당장 치안권을 우리에게 넘기시오. 당신네 나라로 가는 배와 사람들을 전부 조사해야겠소.”

 “그건 안 될 일입니다. 치안권은 맨 나중에 이양해 드리겠습니다.”

 엔도는 또다시 당황했다. 큰일날 소리였다. 치안권을 넘겨달라는 것은 경찰이 가진 무기들도 넘겨달라는 뜻이 아닌가. 그랬다간 치안을 핑계로 조센징놈들이 왜인들을 다 죽이려 들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고 맨몸으로 치안을 맡으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 엔도의 또 하나의 고민이었다.

 “왜 안 된다는 거요? 안 그러면 우리의 보물을 밀반출하는 행위를 어찌 막겠소? 치안권도 없이 어떻게 도적들을 막으라는 말이오? 총독부를 전적으로 믿으란 말이오?”

 “그것은 우리 총독부가 책임지고 막겠다고 약속드립니다. 조선의 범법자는 곧 우리 일본의 범법자입니다. 우리 일본은 범죄행위를 가장 증오한다는 걸 잘 아시잖습니까?”

 “식량문제도 거짓말하는데 그 말을 어떻게 믿으란 말이오?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우리 조선의 많은 보물들이 오래 전부터 당신네 나라로 건너가고 있었소.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이 건너갈 것이 확실하오. 지금까지도 빼돌렸는데 영영 떠나면서 놔두고 가지는 않을 것이 아니오. 그걸 부인하겠다는 것이오?”

 여운형이 또 고함을 질렀다. 엔도는 곤혹스러웠다. 그러나 이렇게 계속 밀릴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건너간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것들은 정당하게 취득한 것들입니다.”

 “정당하다는 근거가 어디에 있소. 당신네들이 샀다고 해도 터무니없는 가격에 산 것들이오. 우리 조선의 한 지사(志士)가 그것들을 수십 배, 수백 배 가격에 되사고 있는 것이 그 증거요. 그건 총감도 익히 알 거요. 그리고 부장품들은 거의가 도굴된 것들이오. 거기엔 당신네 나라 수집가들이 직접 도굴하거나, 도굴을 조장한 의혹이 있소. 당신네 막강한 경무국은 뭐하고 그런 것 하나 막지 못한 것이오. 나는 그런 범죄를 총독부에서 방조하고 도왔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소.”

 “그 문제들은 전적으로 수집가들의 양식 문제지 총독부가 관여한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럼, 우리의 유수한 보물들이 도굴되고 도난 당한 것에 총독부는 전혀 책임이 없다는 말이오?”

 “만약 그런 것이 있었다면 제대로 막지 못한 것에 대해서 총독부도 일부 책임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어떻게 총독부의 책임이 일부 밖에 없소. 당신네 나라가 우리나라를 강점하지 않았다면 아예 없었을 일이오. 당신네 나라만 없었다면 앞으로도 수수만년 그 자리에 있을 우리의 보물들이오. 그런데 지금부터라도 밀반출되는 것을 막도록 해달라는데 왜 안 된다는 거요?”

 목소리는 높았지만 조리까지 잃은 것은 아니었다. 문화재의 밀반출을 들어 합방과 압제가 불법적임을 공박한 것이었다. 여운형은 빨리 치안권을 받아내야 했고 엔도는 최후의 순간까지 치안권 만은 지켜야 했다. 서로 속이 타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자 박가가 끼어들었다.

 “그러면 선생님께서 추천하는 사람들이 귀환하는 내지인들을 조사하는 데 참여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럴 듯한 의견이었다. 원래 협상이란 반만 받아내도 성공이 아닌가. 여운형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박가는 제딴은 제 의견에 만족해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엔도도 반색을 했다.

 “그것 참 좋은 의견이군요. 그러면 선생님도 박상의 의견에 동의하시는 거지요?”

 엔도의 말투가 갈수록 공손해지고 있었다. 그만큼 속이 타는 중이었다. 어떻게 하든지 빨리 합의문을 작성해야 하는 것이었다. 반대로 여운형은 당장 치안권을 확보해야 했다.

 “각각 동수로 해서 운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박가가 또 끼어들었다.

 “숫자는 아무래도 상관없소. 지금 당장 착수하시오! 조사는 우리측이 만족할 때까지 하시오! 이것부터 제대로 하는 지 보고 합의문에 서명을 하든지 하겠소!”

 “좋습니다. 지금 당장 시작하도록 하시지요. 근데 선생님측 인원은 있으신지요?”

 “사람이야 많소. 우선 부산부터 시작하시오!”

 드러내놓고 총독부의 통신망을 이용하니 일사천리였다. 두 시간도 못 되어 송동호와 함께 대기하고 있던 30여 명의 부산지역 청년단원들과 순사 10여 명의 합동 검색이 시작됐다. 엔도는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은 상황에 뭔가 말려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제 와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7백여 명을 싣고 막 출항하려던 배부터 제동이 걸렸다. 청년단원들의 첫 번째 임무는 최대한 출항을 지연시키는 것이었다. 문화재 밀반출을 막는 일도 중요했지만 거사 때까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왜인을 억류시켜 포로(?)로 만들어야 했다. 두 번째는 혹시 발견할지도 모를 이시이를 납치 또는 제거하는 일이었다. 청년단원들은 화물칸에 있는 큰 짐부터 승객들의 호주머니며 가방까지 샅샅이 뒤졌다. 어쩌든지 대충하려는 순사들과 어떻게 해서라도 시간을 끌려는 청년단원들의 크고 작은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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