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첫만남
게시물ID : freeboard_203252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논개.
추천 : 6
조회수 : 104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4/09/24 00:33:15

사실 너와의 첫 만남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복학한 그 해의 개강 총회였는지 아니면 신입생 환영회였는지

복학전에 F를 맞고 재수강을 듣던 1학년 수업에서였는지

그도 저도 아니면 그냥 강의실 복도를 지나가다가

또는 목적은 대충 붙인 채로 종종 모이던 술자리였던가

떠올려 보려 해보지만 아직도 알 수가 없다

 

그저 내가 처음으로 기억하는 너는

언젠가 구름다리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꾀죄죄한 얼굴로 자기 몸뚱이만 한 가방을 메고

봄이라지만 추워 보이는 옷차림을 한 채로

종종거리며 걸어가는 너를 한번 바라봤을 뿐이다

 

그 기억 때문이었을까

오월에 있던 체육대회가 끝나고 있던 잔디밭 뒤풀이에서

여전히 추워 보이는 너를 한 번씩 바라보다가는 옷가지를 건네주었다

의례적인 환호성이 뒤따랐지만 개념치는 않았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너에게는 나의 작은 관심이

그렇지 않았었나 보다 그 후로 가끔은 내가 일하는 가게에 와서 밥을 먹었고

한 번씩 소모임 황동으로 운동장에서 캐치볼을 할 때면 먼발치에서 바라보거나

굳이 안 와도 되는 담배연기 가득한 술자리를 찾아와선 연신 콜록이며 있었다

 

딱히 좋다거나 기분이 고양되지는 않았다

너에게 향했던 작은 관심은 단지 그뿐이었을 뿐

나는 아무런 여유가 없었으니까

 

학교가 끝나면 아니면 중간에라도 일을 해야 했고

어쩌다 가는 술자리나 모임은 살기 위한 찰나의 숨통이었다

그 틈에 너를 끼워 넣는다는 생각을 할 틈 조자 없었다

 

그렇게 종강이 오고 모두가 모인 자리가 있었다

그때만큼은 확연히 너를 기억한다

 

여전히 춥게 입은 옷가지와 뭐가 들었는지 모를 큰 가방과

처음엔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던 네가 한 칸씩 다가와 어느샌가 내 옆자리에 앉아

눈이 마주치자 수줍게 웃던 네가 떠오른다

 

잘해주고 싶었다

해진 신발과 옷을 새로 사주고 싶었고

웃다가도 드리우던 어두운 표정은 무엇 때문인지도 궁금했으며

힘들게 메고 다니던 가방도 가끔은 들어주고 싶었다

 

고백을 하면서 생각했다

너에게 잘 해줄 수 있을까

결국 잘 해주지 못했다

만남보다 헤어짐이 더 깊이 박혀있는 까닭일 것이다

출처 https://blog.naver.com/7hjieun/223593979307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