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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설] 식욕
게시물ID : freeboard_203200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노일만
추천 : 1
조회수 : 48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4/09/15 11:5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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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노일만 단편선: 식욕


내 이름은 채지원. 스물한 살이다. 뭐, 오늘은 그런 설정이다. 지금은 압구정의 커피숍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다. 주문한 커피가 눈 앞에 놓여 있지만 저런 걸 먹을 생각은 없다. 내가 먹고 싶은 것들은 따로 있다.

최근들어 식욕이 부쩍 왕성해졌다. 가벼이 볼 문제가 아니다. 먹어도 너무 많이 먹는다. 그래서 이렇게 커피숍에 앉아 있다. 짧은 치마를 입고 커피숍에 앉아 있다보면 먹는 문제가 곧잘 해결되기도 한다.

문득 시선이 느껴진다. 둘러보니 바깥에서 남자 한 명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 카라가 있는 남색 반팔 니트, 그리고 펄럭이는 검은색 와이드 팬츠. 짧은 헤어를 다운펌으로 꾹꾹 눌렀다. 옷차림을 보니 살짝 노는 오빠 같았는데 얼굴은 좀 베이비페이스였다. 후하게 쳐주자면 5초 정해인?


“뭘봐요?!”

정해인이 너무 대놓고 쳐다보길래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정해인이 나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아아. 오는구나. 보나마나 인스타 알려달라고 하겠지. 그런데 내 근처로 다가온 정해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거였다.

“예뻐서 봤어요.”

예뻐서 봤다니까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뭐라고 해야 하나? 감사합니다? 아유 제가 뭘요? 

“잠깐 앉을 게요.”

정해인은 의자를 당겨 앉으면서 말했다. 당당한 스타일이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남자의 얼굴에 잔뜩 발라진 BB크림을 보고 거절하기로 했다.

“저기요. 됐습니다. 가주세요.”

그런데 남자는 당돌하게 말했다.

“아니요. 5분만요. 중요한 인연일지도 모르는데 그걸 알아보는데 5분 정도는 쓸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음. 일단 좀 볼까.

정해인은 바로 말을 이었다.

“김민수라고 합니다.”

이름이 너무 평범한데? 아무튼.

“뭐하시는 분인데 이렇게 예쁘신가요?”

김민수는 부끄러운 기색도 없이 말했다. 

“학생이에요. 그쪽은요?”

“저는 스물네 살이고, P대학 경영학과인데 군대를 좀 늦게 갔다가 얼마전에 전역했어요. 복학은 아직 안했고요. 성함 여쭤봐도 되죠?”

“아… 채지원이요.”

“이름도 예쁘시네. 한자로 어떻게 써요?”

그게 시작이었다. 그때부터 김민수는 계속 질문을 했는데, 사는 곳, 다녔던 학교, 가족구성원, 취미, 혈액형, 별자리, 가장 힘들었던 기억, 어린시절 꿈, 요새 가장 큰 고민, 이런 것들을이었다. 아무렇게나 둘러댔지만 슬슬 짜증이 났다. 배가 고팠기 때문이었다. 


김민수가 나가서 좀 걷자고 했다. 내가 술을 마시러 가자고 했더니 그는 잠깐 놀라더니 좋아하는 기색을 비쳤다. 나는 그를 ‘창고’로 데려갔다. 

“여기가 술집이에요?”

텅 빈 창고를 보며 그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옷을 벗었다. 김민수가 뜨악하는 표정을 나를 봤다. 놀라긴 아직 이르지. 나는 얼굴을 열었다. 촉수를 꺼내고 수백 개의 이빨을 드러내자 김민수가 졸도해버렸다. 나는 촉수 끝에 달린 칼날을 사용해 그의 목을 자르고 몸통부터 맛있게 먹었지만, 역시 양이 좀 모자랐다. 

다음엔 좀 살집 있는 사람이 말 걸길 바라며, 김민수의 뼈들을 창고의 ‘보관함’에 던져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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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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