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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드리는 꿈(12-4)
게시물ID : lovestory_9559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낭만아자씨
추천 : 0
조회수 : 122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4/08/22 10:4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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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

  그대에게 드리는 꿈


    12. 악마의 음모(4)



 “그러나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있지 않소. 내가 누구요, 천하의 쓰다 아니오? 내가, 이 쓰다 이치로가 동고동락해 온 동지들의 곤란을 보고만 있을 사람이라고 생각하시오? 절대로 그렇지 않소. 이 쓰다는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사는 사람이오. 그래서 내가 묘안을 짜내서 총독에게 건의를 했소. 당연히 재가도 받았소. 그래서 동지들을 이렇게 모이라고 한 것이오.”

 “......”

 다들 궁금증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박가에게로 시선을 집중시켰다. 박가는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문인들에게 총독부의 계획을 자신의 묘안으로 둔갑시키는 여유까지 부렸다.

 “내가 깡패새끼들을 동원해서 조선에 있는 독립운동한다는 놈들을 싹 다 제거하겠소. 중국・소련에서 오는 놈들도 오는 쪽쪽 해치우겠소. 그러면 쓸개 빠진 조센징놈들이 어떻게 감히 우리한테 대들겠소. 군대나 다름없는 깡패새끼들이 우리편인데 말이오. 나중에 깡패새끼들이 배신을 하면 어쩌나 걱정하지 마시오. 이미 업보를 지었는데 그 새끼들이 어쩔 것이오. 우리한테 붙어 있지 않으면 조센징놈들 손에 죽을 일만 남았는데 말이오. 허나 그 일이 나 혼자 될 거라 생각하는 동지들은 없을 거요. 동지들도 대업을 완수하는데 적극협력해주기 바라오. 이제부터 무조건 내 말을 따르란 말이오. 패망은 기정사실이오. 그러나 우리나라는 대일본제국이오. 패망한다고 해도 금세 다시 일어설 나라요. 우리가 할일을 다하고 기다리면 곧 다시 황은을 입게 될 것이오.”

 “......”

 모두 마른 침을 삼켰다. 독립운동가들의 학살에 가담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자신들이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믿었다.   

 “단결만이 우리의 살길이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오. 나를 믿고, 나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대일본제국과 천황폐하 그리고 우리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 싸우도록 합시다. 동지들은 지금부터 더 열렬히 기고도 하고, 강연도 하고, 궐기대회에도 앞장서시오. 조센징놈들 중에서도 특히 깡패놈들이 우리 대일본제국이 승리한다고 굳게 믿게 해야 된단 말이오. 원래 무식한 깡패새끼들은 문필가 동지들을 존경할 수밖에 없소. 유식한 우리 문필가 동지들이 무식한 깡패새끼들 속이는 일이야 누워서 떡 먹기 아니겠소. 안 그렇소?"

 "......"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 또한 대답을 바란 질문이 아니었다.

 "먼저 우리 단체의 명칭을 만들어야 되겠소. 이 문제는 먼저 김동지에게 의견을 묻지 않을 수 없소.”

 박가가 은전을 베풀 듯이 지목한 자는 김광주였다. 단체를 만들고 이름을 올리고 하는 것은 발을 빼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김가는 한참을 뺨에 손을 괴고 생각에 잠긴 척 하다가 입을 열었다.

 “‘황도연합’으로 하는 것이 어떨런지요?”

 “'황도연합'이라......?”

 박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황도’는 너무 많이 쓰인 이름이잖소. 그렇게 노골적인 이름보다는 우리의 결의를 다지면서 목적을 숨길 수 있는...... 뭐, 그런 이름 있잖소?”

 김가는 그만 자존심이 구겨지는 것을 느꼈다. 무식한 놈이 지가 뭘 안다고...... 제 이름자 하나 번듯하게 쓸 줄 모르는 놈이...... 김가의 주먹에 불끈 힘이 들어갔다. 그러나 마음뿐이었다. 박가에게 덤빌 만큼 어리석은 김가가 아니었다.

 “그것도 그렇군요. 그렇다면 ‘대의당’이 어떻겠습니까?”

 말을 꺼내면서 우오한은 김가의 눈치를 살폈다. 박가가 눈을 반짝거리면서 역시 은전을 베풀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뜻이오?”

 “충군애국은 황국신민의 대의지요. 우리 모두 황국을 지키는 한 사람으로서 충군애국을 다한다는 뜻으로 말이지요. 그리고 ‘대의당’이라고 하면 정당같은 냄새를 풍길 수도 있고 말입니다.”

 “그것 참 멋지오. 좋소, 아주 좋아!”

 박가가 손뼉을 짝짝짝, 쳤다. 방정맞기는...... 나이값 좀 해라, 요놈아. 김가는 속으로 뇌까렸다. 우가를 향해서는 적의를 느꼈다. 김가가 우가에게 적개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었다. 한번 출세해 보겠다고 날뛰는 품이 불쌍해서 품어 주었더니 올라타려고 깝죽대는 게 영 정나미가 떨어졌던 것이다. 우가에 대한 적대감은 김가가 느끼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까딱하면 문화예술계의 일등 부왜파 자리를 주가에게 넘겨줄 우려가 있었던 것이다. 왜국의 패망이 기정사실이 된 지금에도 왠지 우가에게만은 지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대의당은 결성됐다. 총독부가 반왜•항왜로 분류한 조선 내 독립운동가들의 숫자는 약 3만 명이었다. 그들을 모두 제거해야 패망 후 어수선할 시기에 왜인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고 본 것이었다. 박가와 대의당은 3만 명이 아니라 30만 명이라도 제거할 각오가 돼 있었다. 대의당의 목표는 쉴 틈 없이 군중대회를 열어 이 땅의 인민들이 정신을 못 차리도록 몰아치고, 뒤에서는 독립운동가들을 학살하는 것이었다. 


 6월 하순의 어느 날 아침, 장태식은 아우들을 이끌고 경성부민관으로 향했다. 박충금이 대의당 결성식을 하니 사람을 보내달라고 요구해 온 것이 그저께였다. 다른 때 같으면 아우들 몇 명만 보내고 그만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강성종이 최대한 많은 인원을 데리고 청년단 간부들도 직접 가서 어떤 목적으로 만드는 단체고, 어떤 자가 어떤 발언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보라고 했다. 강은 청년단원들의 적개심을 더욱 키워 놓고 싶었다.

 “시불눔들이 아침부터 똥개 훈련시키는 거야, 뭐야?”

 아직도 잠이 덜깬 표정으로 장은 투덜거렸다. 장뿐만이 아니었다. 모두들 잠이 덜 깨 부스스한 몰골들이었다. 해가 돋은 지 수 시간이 지났건만 원래 야행성이라 할 그들에게 지금은 새벽이라 할 수 있었다. 더구나 재력가들의 불안감을 지속시키고, 의열대의 활동이 자작극이란 걸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 한숨도 자지 않고 열성적(?)으로 경비를 서느라고 날밤을 꼬박 새운 단원들도 있었다. 

 장은 문득 지금 독립이 되고 난 뒤 청년단 깃발을 들고 당당하게 행진하고 있는 중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더욱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에이, 시불눔들!”

 건장하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수십 명의 청년들이 거리를 가득 메운 채 몰려가자 지나던 사람들이 쭈볏거리며 길을 비켰다. 아침부터 어디 패싸움이라도 난 줄 알고 호기심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조금 더 가니 명동지역 단원들의 꼬리가 보였다. 장이 뛰어갔다. 그 대열의 맨 앞에서 남우현이 걸어가고 있었다.

 “형님!”

 장이 부르는 소리에 남이 걸음을 멈추고 기다렸다. 잠이 덜 깬 듯한 표정은 남도 마찬가지였다.

 “시불눔들이 뭣났다고 아침부터 이 지랄인가 몰라.”

 “왜, 아침이라서 더 엄숙해 보이고 좋지 않나?”

 남이 사람 좋게 웃어보였다.

 “형님은 속도 좋수!”

 장이 퉁명스럽게 쏘아부쳤다.

 “속이 좋은 게 아니야. 이것도 하나의 기회야, 이 사람아! 김동지 말도 못 들었나. 오늘 부민관에 거물이란 놈들은 모조리 올 것 아닌가. 그놈들 얼굴을 봐놓으면 다 써먹을 때가 있단 말이야.”

 “그것도 그렇지만 잠이 덜 깨서 미치겠다구, 시불!”

 장은 그래도 불만을 삭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은 냉철한 성정의 소유자답게 불만을 내비치지 않고 있었다. 남은 장이나 다른 건달들과는 달리 욕을 하는 경우도 거의 없이 언행이 점잖아 주먹잡이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복장도 항상 깔끔해서 별명이 ‘명동신사’였다. 워낙 성정도 급하지만 가라앉기도 잘하는 장은 자신이 터트린 불만이 쑥스러워 하늘을 한번 봤다.

 “태식아, 이제 그만하고 가서 아우들에게 절대 졸지 말고 그놈들 얼굴 똑똑히 기억해두라고 이야기나 해.”

 “명동 아우들한테는 이야기됐수?”

 장은 계면쩍어서 그냥 한마디 덧붙였다.

 “그럼, 이 사람아.”

 매사에 치밀한 남이 그걸 놓칠 리 없었다. 

 부민관 앞에서 합류한 마포며 용산 등 다른 지역 청년단원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벌써 많이 모여 있었다. 거물 부왜파는 다 온 것 같았다. 도꼭지들만 겨우 앉고 나머지 청년단원들은 서 있어야 했다. 더운 날씨와 사람들이 내뿜는 열기에 부민관은 찜통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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