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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드리는 꿈(12-3)
게시물ID : lovestory_9557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낭만아자씨
추천 : 1
조회수 : 156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4/08/15 10:3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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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

  그대에게 드리는 꿈


    12. 악마의 음모(3)



 둘째, 총독부가 어떤 일을 꾸미는지 모르나 은밀한 일임은 분명했다. 그런 일일수록 많은 자금이 주어졌다. 그러면 된 것이다. 자신의 격에 맞는 대우와 두둑한 보수만 있으면.

 차를 마시며 잡담을 주고받으면서도 박가는 엔도를 향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엔도가 은근하게 박가를 바라봤다.

 “쓰다 의원님, 짐작하시겠지만 우리 대일본제국의 패망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슬픈 일이올시다.”

 박가는 덤덤하게 받았다. 짐작하고 있던 일이었다. 그러나 패망한다고 해도 자신은 왜나라로 돌아가면 될 일이어서 별로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패망하지 않는 것보다야 못하겠지만 자신에게 미칠 영향은 별로 크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힘만으로 막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어차피 안 될 일은 걱정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박가의 지론이었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금광이며 땅들이 내놓은 지 두 해가 다 돼 가는데도 사려고 나서는 이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크게 아까울 것이 없었다. 그간 호의호식하며 잘 먹고 살았고, 왜국에는 훨씬 더 많은 재산이 있었던 것이다. 왜국이 이번에 패망하더라도 곧 일어나 조선을 다시 지배하게 되리라는 믿음도 있었다. 그때까지 누구에게 맡겨 놓는 방법도 있었다.

 “그래서 말입니다......”

 엔도가 계획을 설명해 나갔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누구야. 듣고 있던 박가의 표정은 갈수록 밝아졌다.

 “좋은 계획이오.”

 예상했던 대로 참으로 은밀한 일이었다.

 “그러니 쓰다 의원님이 힘을 좀 써주십시오. 우리 총독부에서 믿을 사람은 의원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또 의원님 입장으로 볼 때도 손해는 없을 것입니다. 나중에 의원님의 정치적인 입지를 강화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혁혁한 투쟁경력으로 내세울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놈들을 모조리 제거하기만 하면 우리가 다시 조선에 들어오는 것은 시간문제지요. 연합국놈들이야 조선을 알기나 합니까, 허수아비들이지요.”

 “알겠소. 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소. 힘닿는대로 해보겠소.”

 “역시 믿을 분은 의원님뿐입니다. 우리 총독부가 최대한 지원하겠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하십시오.”

 엔도가 서랍에서 한 뭉치의 돈을 꺼내 박가에게 건넸다.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려 우오한・이성건・김광주는 박가의 집으로 갔다. 아무도 와 있지 않았다. 심부름하는 아이의 안내를 받아 박가가 스스로 서재라고 부르는 방으로 들었다. 말이 서재지 책이라고는 ‘녹기’같은 잡지 몇 권만 달랑 책장에 꽂혀 있는 방이었다. 셋 다 이 방이 처음은 아니었다. 대화동맹 결성 때도 이 방에서 모의를 했던 것이다.

 “그나저나 이번에는 무슨 일이오?”

 “대화동맹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 아니오?”

 “시절이 하수상하니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지.”

 “패망할 것은 분명한 것 같지 않소?”

 “지금 전황으로 봐서는 항복은 시간문제라는 말이 맞지 않겠소.”

 “그럼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요?”

 “뭐 별일 있을라고. 지금처럼 살면 되겠지.”

 “그렇지. 바가야로 조센징놈들이 뭘 할 수 있겠소.”

 내심 불안하면서도 그렇게 주고받았다. 그렇게 됐으면 하는 바램이기도 했다. 왜나라의 패색은 날로 짙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있는데 박동한, 손용목, 안홍직 등이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낮에 총독부로부터 연락을 받은 것이었다. 심부름하는 아이를 앞세운 박가는 하오리 하까마를 입고 거들먹거리며 방으로 들어와 상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두손으로 탁자를 짚고 불량기를 폴폴 풍기며 양 옆으로 앉은 자들을 자신이 끌고 다니는 똘마니들처럼 내려보았다. 환갑이 가까운 나이에다 두 차례나 동경에서 중의원 의원을 지냈지만 아직도 깡패티가 완연했다. 다들 그런 박가가 아니꼬왔다. 그러나 누구 하나 감히 기분 나쁜 내색을 하는 자는 없었다. 잔인한 테러로 악명 높은 박가였다. 박가에게 저항한다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내놓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경성일보 사주 성주하와 사장 정만규도 박가에게 테러를 당했다. ‘각파유지연맹’의 부왜 행각을 경성일보가 사설을 통해 공격했던 것이 빌미였다. 박충금, 송병춘, 민언식 등이 결성한 조선 내 부왜단체들의 사령부격인 단체가 '각파유지연맹'이었다. 박가가 가만 있을 리 없었다. 벌집 중에도 구멍벌의 집을 건드린 셈이었다. 요담이나 나누자는 이풍조의 유인에 걸려든 둘이 요릿집에 들어오자 박가는 피투성이가 되도록 두들겨 팼다. 거기다 권총까지 들이대며 협박하는 바람에 결국 둘은 ‘인신공격을 한 것은 온당하지 못했다’ 하고 사설 내용과는 전혀 다른 각서를 쓰고 돈까지 3천원이나 빼앗기고 말았다. 박가의 재산 대부분은 그렇게 갈취한 것이었다. 

 궐련을 삐딱하게 꼬나문 채 박가가 입을 열었다.

 “다들 저녁은 먹었소?”

 “......”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대답을 기대한 질문이 아니었으므로 박가는 개의치 않고 이어나갔다.

 “우리 동지들 중에서는 밥 굶는 사람이 있을 리 없으니 각설하고...... 그나저나 큰일났소이다!”

 박가는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다들 박가의 입만 쳐다보았다.

 “다들 짐작하고 있겠지만 천황폐하와 대일본제국에 대단히 송구한 말이나 우리 대일본제국은 곧 망할 것 같소! 패망이 임박했다는 말이오!”

 “......”

 “우리 대일본제국이 패망하면 어떻게 되겠소?”

 “......”

 “우리 대일본제국이 패망해서 조선에서 물러난다는 것은 곧 우리들, 천황폐하의 충성스러운 신민들인 우리들의 안위에도 문제가 생긴다는 말이오, 그렇지 않소?”

 “......”

 모두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감을 잡지 못하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박가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소?”

 “......”

 “그렇게 되면 소위 독립운동을 한다는 놈들을 비롯한 다수의 조센징놈들이 가만 있겠소?”

 “그건 그렇지 않을 겁니다. 물러터진 조센징놈들이 뭐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지금까지도 어떻게 못한 놈들이 대일본제국이 패망한다고 해서 달라질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것도 맞는 말입니다.”

 손용목이 반론을 제기하고 나서자 이성건이 맞장구를 쳤다. 박가는 그들을 가소롭다는 듯이 일별했다.

 “동지들은 아직도 뭐를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 같소.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해서 될 문제가 아니오. 조센징놈들이 지금까지 줄곧 우리한테 당한 것은 단지 뭉치지 못했기 때문이오. 그런데 우리 대일본제국이 패망하면 임정놈들과 중국・소련에서 되지도 않을 독립운동을 합네 하고 깝죽대던 놈들까지 얼씨구나 하면서 속속 조선으로 들어올 것이 아니오. 지금 반도에 있는 놈들과 그놈들이 짝짜꿍이 되면 가만있겠소? 우리 같은 사람들을 다 죽이자고 선동질을 할 것은 분명한 일이오. 그렇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지는 거요.”

 “그놈들이 그런다면 우리는 가만있겠습니까. 우리 세력도 만만치 않은데요. 우리도 충분히 그놈들을 되칠 수 있지 않습니까?”

 “무슨 소리하는 거요? 세력이란 무엇이오? 세력은 바로 숫자요. 그런데, 대일본제국이 패망했는데, 바가야로 조센징놈들이 우리를 따르겠소, 그놈들을 따르겠소? 생각을 좀 하시오, 생각을!”

 “......”

 누군가가 반론을 펴려다가 일격을 받고 쑥 들어가 버렸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지 박가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그렇게 되면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니 그렇게 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손을 쓰자는 거요. 무슨 말인지 알겠소?”

 “......”

 “패망하고 난 뒤에는 대일본제국도 모든 사정이 어려워질 것이 분명하오. 나 같은 사람이야 내지로 가면 되지만 내지에 기반이 없는 동지들 같은 사람들은 내지로 가봤자 고생만 할 것이 뻔하오. 내지 사람들 먹을 양식도 없을 것이 뻔한데 동지들한테 돌아올 것이 있겠소?”

 “......”

 그 순간 박가가 부럽지 않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상대적으로 자신들은 더욱 궁지에 몰리는 느낌이었다. 박가는 지금까지의 힐책하는 듯하던 표정을 싹 바꾸어 부드러운 미소까지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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