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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가난했던 1960년대 대한민국
게시물ID : sisa_124026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대양거황
추천 : 9
조회수 : 95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24/08/12 14: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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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못해 자살까지 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필요한 분이 계시면 한쪽 눈을 팔겠습니다. 눈이 아니라도 코건, 살이건 사 가십시오.

- 1964년 5월 12일자 한국일보 기사에 실린 하해성 씨의 호소문 

 


밥을 굶고 오늘도 학교에 못 갔어요. 술지게미, 비지, 보리등겨도 떨어져 아홉 식구가 모두 굶고 있어요. 아버지는 모두 같이 죽어 버리자고 해요. 무서워 죽겠어요.

- 1964년 5월 12일자 한국일보 기사에 실린 박정자 양의 호소문

 


대통령 각하, 풀뿌리 캐 먹으며 연명하는 농민들의 한탄을 들었습니까? 강도 절도가 늘고 자살하는 사람이 느는 것은 원인이 어디 있을까요? 고관들의 부정사실이 매일같이 드러나는 요즘 각하의 심정은 어떠십니까? 5.16 공약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가난한 우리가 무얼 알겠습니까마는 아무튼 이대로는 못 살 것 같습니다.

- 1964년 5월 12일자 한국일보 기사에 실린 최형렬 씨의 호소문 

 


대통령 각하, 작년 가을 거둔 약간의 감자와 고구마로 여덟 식구가 살아나가다가 그것도 떨어졌습니다. 쑥을 뜯어다 쑨 죽을 먹으며 학교에 나가던 동생과 나는 지난 겨울부터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씨로 두었던 감자와 고구마, 콩을 다 먹어버렸고 그렇게 아끼던 유안, 중과석 비료 두 부대도 7백 원에 팔아 마분가루를 사다 죽을 쑤어 먹고 있으나 배가 아파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저와 어린 동생들까지도 부지런히 산에 가서 나무를 하고 풀도 뜯는데 왜 이렇게 못 삽니까? 배고픈 것이 무서워 죽겠습니다. 

- 1964년 4월 11일자 한국일보 기사에 실린 이종해 군의 호소문

 


대로를 시름없이 걸어가던 지게꾼이 발걸음을 멈칫, 옆으로 지나가던 필자에게 말을 건넨다. "선생 댁이 이 근처거든 잡숫다 남은 밥 한술만 주실 수 없겠습니까?"하고, 그때가 아침 아홉시 반쯤 된 영하 12도의 추운 날씨.

이런 궁기에 찬 말을 마지못해 입 밖에 내는 듯한 서른 살 안쪽의 그 사나이의 눈에선 갑자기 비장했던 눈물이 좌르르 쏟아지면서 다시 말을 잇는다. 이렇듯 지겟벌이로 살아가는 자기는 다섯 식구가 어제 아침에 죽, 저녁은 굶고, 또 그날 아침에도 빈 창자로 거리에 나왔더니 허기가 져서 다리가 허청허청 발걸음을 옮길 기운조차 없다는 것, 그리고 그의 눈앞엔 지금 이 순간 중대한 결심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그가 말하는 중대결심이란 묻지 않아도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한 가지는 죽어 버리느냐는 것, 또 한 가지는 나쁜 짓이라도 해야 되겠느냐는 것.... 이처럼 배고픈 비극은 지금 이땅에 얼마든지 있다. 도시에도 농촌에도 숱하게 많다........

- 1964년 2월 18일자 동아일보 1면 횡설수설란에 실린 기사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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