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을 얻는 것을 말한다.
무언가 배우려 할 때 관련된 어떠한 기반도 지식도 없으면 그것을 깨우치기 상당히 힘들다.
그렇지 않더라도 더욱 그 배움이라는 행위를 파고들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기에 배운다는 것은 고통을 수반하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머리로 이해하지만 내가 느끼는 고통은 이해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학창 시절 부모님과 선생님들 주변의 어른들이 그렇게나 공부하라고 하는 이유가
성실함을 바탕으로 공부를 정진하였을 때 성실함이라는 것을 배우기도 하지만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능력도 같이 성장하고 나아가 그 결과를 시험을 통해 성실함을 사회에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좋은 대학을 나온다는 것은 그동안의 성실함을 증명하듯 말이다.
하지만 그것을 깨닫기란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여태껏 성실하게 무언가를 배우려고 해본적이 없던 나는 책을 뒤로하고 하루 종일 영화를 보고 있었다.
놀 때는 놀고 공부할 때는 공부를 했으면 이라고 자신에게 외쳐도 그냥 불안함 마음을 가지고 빈둥댈 뿐이었다.
깨달았지만 실제로 행하는 건 없었다.
성실함이라는 것을 나는 30년 넘게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살아왔다.
무언가에 정말 미쳐서 열심히 살아본 기억이 없다.
단순히 나만의 가치관이나 성격이나 인격이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쉽게 흥미를 가지지만 깊게 파고들지 못하는 내가 살아온 인생의 결과는 이런 모습이다.
지금 내가 배우려고 하는 것이 정말로 깊게 알고 싶지 않고 재미를 느끼지 못했기에 그런 걸까?
더 깊이 파고들어야 그러한 재미를 느끼고 더 알고 싶은 욕망이 생길 수도 있겠다.
문득 이렇게 신세한탄 할 수 있는 것도 복 받은 인생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서른이 넘어서도 부모님 집에 얹혀살면서 제대로 된 직장도 없지만 무언가 배울 수 있는 기회라도 있다는 게 감사하기도 하다.
정말 힘든 사람들은 나라에서 제공하는 이런 기회조차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힘든 삶이니까.
용돈은커녕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지금 나의 투정은 정말 배부른 소리일 것이다.
힘든 사람은 힘들다고 말 할 힘도 없을테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참 감사한 삶이지만 감사하다고 해서 나보다 못한 사람들 보다는 낫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다.
마치 돈을 적게 벌어도 많이 벌어도 각자의 힘듦이 있기 마련이듯이 그냥 각자의 고통인 것이다.
남의 고통보다 나의 고통이 적다고 위로하는 건 그냥 위선이라는 생각만 들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