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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드리는 꿈(11-1)
게시물ID : lovestory_9539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낭만아자씨
추천 : 0
조회수 : 1879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24/06/20 10:3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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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

  그대에게 드리는 꿈


     11. 조국을 향해 앞으로(1)



 우오한은 요즘 들어 영 살맛이 나지를 않았다. 전황이 자신이 느끼기에도 점점 불리해져 가는 것이었다. 이러다가 정말 패망해 버리는 것은 아닌가 불안했다. 거기다가 조선의 분할신탁통치 결정 소식도 들려왔다. 그것은 미국과 소련놈들이 승리를 확신한다는 말이고, 왜놈들이 조선에서 쫓겨난다는 말이 아닌가. 그렇게 되면 정말 큰일이었다. 다들 불안해서인가 요즘은 술자리를 주선하는 자들도 없었다.

 몇 년간은 정말 좋은 세월이었다. 총독부 학무과장도 술자리에서 부르면 자다가도 달려나왔다. 내지인들 똥구녕을 핥아주는 일도 황송할 지지리도 못난 조센징들이 총독부의 왜인 과장을 오라가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출세를 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게 다 자신이 잘난 탓이라고 우가는 굳게 믿었다. 

 우가가 출세가도(?)를 달리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되지 않았다. 김광주가 불러주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부귀영달은 없었을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그때까지 독립운동을 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우가는 오래전부터 부왜파로서 손색없는 의식을 갖추고 있었다. 단지 불러주는 자가 없었기 때문에 부왜대열에 합류를 하지 못했을 따름이었다. 총독부나 부왜선봉대인 조선문인협회 같은 데서 그때까지 끌어들이지 않은 것은 그만큼 우가가 별볼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김가 같은 자들을 보면 부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나도 한번 출세합시다, 하고 은근슬쩍 끼어들 깜냥도 못됐다. 그러던 차에 김가가 불러준 것이었다. 우가는 ‘천황폐하 만만세!’를 외치면서 쏜살같이 달려갔다.

 김가가 거드럭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우시인, 우리 같이 일등국민이 돼서 제대로 된 예술 한번 합시다!”

 “......”

 “왜, 싫소?”

 “예. 그렇게 하지요.”

 기다리고 기다리던 바였다. 그러나 우가는 한참 뜸을 들인 뒤 대답했다. 경망스럽게 웃음이 터져 나오려고 해 일부러 무표정을 가장해 보이느라 애를 먹었던 것이다. 자존심이 아직 조금은 남아 있을 때였다. 그런 우가가 가소로와 김가는 네까짓 놈이, 하면서 한마디 내뱉았다.

 “왜, 진정한 황국신민이 되는 것이 기쁘지 않소?”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김가의 일격에 뒤통수를 맞은 우가는 황망하게 손사래까지 치고 말았다.

 “그러면 왜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하지 않았소?”

 “불러 주셨어야지요.”

 “불러 주지 않아서였다?”

 우가의 바른말에 김가가 으하하하, 웃어 제쳤다. 함께 있던 다른 자들도 낄낄거리며 따라 웃었다. 심히 부끄러웠다. 그때부터 가슴속에서는 김가에 대한 증오와 질투심이 불덩이가 되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날 밤, 우가는 부왜문인들과 청화정으로 몰려가서 술을 마셨다. 왜인 기생만 있는 경성의 요정 중에서도 최고급 요정이었다. 합방 전해, ‘조선민족의 행복과 복지를 위해 조왜양국은 합방돼야 한다’는 내용의 합방성명서를 일진회 명의로 발표했다가 암살위협을 못 이긴 이영구와 송병춘이 은신하기도 했던 청화정이 바로 부왜문인들의 단골 술집이었다. 물론 우가는 그때까지 말만 들었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곳이었다. 그 집의 엄청나기로 소문난 술값은 우가의 발길을 번번이 가로막았던 것이다.

 부왜문인들의 술자리는 그 자체가 예술이었다. 우가는 탄복을 하고 말았다.

 김가가 옆에 앉은 기생의 기모노 속으로 손을 넣어 거기를 주무르면서 우가의 옆자리에 앉은 기생에게 명령을 내렸다.

 “아야꼬 이년, 뭐하느냐? 우리 주선생의 즉흥시를 감상하는 영광을 놓칠 테냐?”

 아야꼬는 돌아앉아 기모노를 들추며 부스럭거리더니 거웃 하나를 뽑아 우가의 술잔에 띄웠다. 짧고 조금 노리끼리한 거웃이었다.

 웃옷을 거의 풀어헤치고 당장이라도 교미가 가능할 자세로 기생을 끌어안고 있던 이기연이 우가를 보고 음탕하게 눈을 빛내면서 말했다.

 “우시인, 마시고 한 수 읊으시지요. 우리 모임에 처음 오는 사람은 기생년 거시기를 물고 한 수 읊는 게 관례올시다.”

 우가는 당황했다. 술자리에서 추잡하게 노는 것이라면 그 누구도 따를 자가 없는 우가였으나 이런 주법은 또 처음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계집년 거기 털을 물라니? 이자들이 나를 망신을 주려고 작당을 했나. 우가는 그만 기분이 나빠지고 있었다.

 기생의 가슴을 우악스럽게 주무르고 있던 유진요가 걸쭉하게 웃어 보였다.

 “얘들아, 우시인이 아직 우리의 예술적인 술자리 문화를 잘 모르시는 모양이니 우리가 먼저 보여 드려야겠구나.”

 그러자 기생들이 저마다 돌아앉아 사타구니를 까뒤집어 거웃 하나씩을 뽑아 주전자에 띄우고 잔을 채워나갔다. 거웃이 세 개나 들어간 잔을 받은 정인석은 즉흥시 세 수를 읊었다. 거웃 하나에 시 한 수였던 것이다.

 우가는 그제야 그자들의 술자리 문화를 알아차렸다. 얼른 잔을 비웠다. 그리고 아야꼬의 거웃을 앞니 사이에 끼운 채 즉흥시 한 수를 읊어 나갔다.


 황은이

 나의 술잔에도 어리니 감개가 무량하다

 사람들이

 세상 모든 것이 황은임을 모르고 사니 그것이 안타까울 뿐

 아,

 영원히

 황은에 취해 살고 싶어라


 되는대로 내뱉은 것인데도 좌중에서 우르르 박수가 터져나왔다. 아야꼬가 탄성을 올리며 우가의 목을 끌어안고 뺨에 입을 맞추며 갖은 교태를 다 부렸다. 그 눈에 색기가 자르르 흐르고 있었다. 우가는 거시기가 아까보다 더 불끈거리는 것을 느꼈으며, 당장이라도 홀라당 벗기고 일을 치르고 싶은 것을 참아야 했다.

 김가가 호탕하게 웃으며 속보이는 칭찬을 늘어놓았다.

 "과연 절창이로소이다. 역시 우시인은 이백에 맞먹는 시선이요. 이렇게 간결하고 유려하게 주제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우시인 빼고 누가 또 있겠소. 안 그렇소, 여러분?”

 또 박수가 쏟아졌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우가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우쭐했다. 조선에서 소설은 김광주요, 시는 자신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터였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지만 예술이야말로 밤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술과 여자가 없이 무슨 예술을 논할 수 있겠는가. 인간의 끊임없는 자궁으로의 회귀열망, 그것을 표현하는 게 예술의 근본적인 목적이 아니던가. 그런 의미에서 자궁에 그 근원을 둔 거웃은 많은 것을 상징하고, 은유하고, 함축하는 것이었다. 여자의 거웃은 바로 자궁으로 가는 길에 나부끼는 깃발이요, 이정표 같은 것이 아닐까. 우가는 유진요의 말마따나 이들의 술자리가 가히 예술이라 할만하다고 생각했다. 여자의 거웃을 술잔에 띄우는 행위, 그 자체가 하나의 모던한 예술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주색잡기를 즐기는 예술가들,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예술가들이었다. 나라를 되찾겠다고 설치는 놈들, 그놈들은 이런 진정한 예술의 의미를 모를 게 분명했다. 예술가인 자신은 마땅히 그들과 같이 호흡하고 행동해야 했다. 나라를 되찾겠다고 설치는 개뼉다귀 같은 인간들하고 같이 놀아 봤자 여자는 고사하고 술 한잔 기분 좋게 마실 수 없을 것이었다. 나라를 되찾겠다고 설치는 놈들은 생각할수록 꼴같잖았다. 황은에 감사만 하면 대일본제국에서 다 알아서 잘살게 만들어 주는데 왜 그렇게 저 죽을 줄 모르고 설쳐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대일본제국이 형제의 나라로 삼아준다면―동생의 나라기는 하지만—감지덕지해야지 그걸 싫다고 난리인 것이다. 제놈들이 그렇게 풍찬노숙하며 설친다고 세상이 바뀌나?

 그날 밤, 우가는 아야꼬를 품고 잤다. 가끔씩 왜년 기생을 품어 봤지만 조선년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 어쩌자고 조선년들은 잠자리 기술까지 왜년들보다 못한 것이었다. 왜년들 중에서도 아야꼬는 단연 출중했다. 아야꼬의 감탕질이며 요분질에 우가는 뜨거운 물속을 유영하는 듯도 하고 축축한 구름 속을 둥둥 떠다니는 듯도 한 황홀경을 밤새도록 실컷 맛봤다ㅡ이러다가 온 삭신이 올올이 풀어져 자신의 존재마저 녹아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순간순간 두려울 정도였다. 과연 조선 최고의 요정이이었다. 부왜문인들이 이 집을 단골로 삼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자들은 지금까지 이렇게 즐겨온 것이었다. 거기에 자신만 끼지 못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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