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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근처 유흥업소에서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송인서적의 부도로 새해 벽두부터 출판계가 패닉에 빠졌던 그해,
나도 1억 (휴지조각이 된 어음까지 합치면 2억) 넘게 물려서
인쇄비라도 벌 요량으로 시작했던 일이다.
업무는 단순했다.
거나하게 취한 손님이 나오면 인근의 호텔로 데려다 주거나,
인사불성인 손님 차를 몰고 집까지 운전하거나.
하룻밤에 대여섯 군데 업소에서 일거리를 받았다.
거기에,
내가 늘 신비롭다고 생각하던 업소 사장이 있었다.
한때의 류승룡 씨처럼 긴 머리에 롱코트 차림으로
살짝 기인 같다고 할까.
왜 그런 사람 있잖습니까,
잡기에 능하고 달변이며
엄청나게 많이 읽었구나 싶은 아우라가 온몸에서 느껴지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같은 데 나가더라도
뭐든 똑 부러지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
새벽까지 차에서 대기하던 나에게 그는 가끔 도넛을 건네곤 했다.
도넛을 무슨 상비약처럼 들고 다녔다.
궁금해서 이유를 물었더니,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항상 도넛을 먹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도넛을 밥보다 좋아하거든.
좋아하는 것을 먹었을 때 정말 맛있다면 판단력이 정상이라는 얘기지.”
반대로 도넛을 먹었는데 맛이 없을 때는
심신이 약해져 판단력이 저하돼 있다는 증거이므로
중요한 사업적 결정을 미룬다고 한다.
아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신박하네.
이후로 나는 그를 도넛 사장이라고 (속으로만) 불렀다.
한번은 업소 앞에서 진상손님과 종업원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진 적이 있다.
처음에는 말싸움으로 끝나는가 싶었지만
급기야 손찌검까지 하는 걸 보고
나도 놀라서 달려갔다.
당시 대리기사들에게는 업소와의 연락용으로
작은 무전기가 하나씩 지급됐는데
그걸 바디캠인 척하고
“손님, 방금 폭행하신 거 바디캠에 다 녹화됐어요.
어떻게, 바로 경찰서 가실래요, 그냥 집에 가실래요”
했더니 두말없이 돌아가더라.
도넛 사장이 그걸 좋게 본 모양이다.
6개월 아르바이트로 책 한권 인쇄할 비용 정도는 벌었다 싶어서 그만두려는데
사장이 대뜸 물었다.
“너, 큰돈 벌어볼래?”
에? 큰돈이라니. 어떻게.
그의 말을 요약하면 대략 이렇다.
한국처럼 부동산에 미쳐 있는 나라도 없다.
이를 일찌감치 깨달은 도넛 사장은
부동산으로 상당한 부를 축적했다고 한다.
강남역 업소는 그냥 재미 삼아 부업으로 운영하는 거라면서.
실제로 도넛 사장은
부동산 등기법, 택지건물거래업법, 도시계획법 등 부동산 거래 법령은 물론이고
자치체 조례에도 정통하며
형법이나 형사소송법 조문과 판례를 술술 암송할 정도였다.
게다가 헤겔이나 마르크스 같은 고전의 구절을 인용하며
도도하게 지론을 펴기도 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너 소설 쓰고 싶댔지. 나랑 일하면 듣도 보도 못한 경험을 할 수 있는데.
마침 나도 너처럼 순진하게 생긴 뉴페이스가 필요했고.”
그 말에 솔깃해진 나는 뭐에 홀린 것처럼 그를 따라 조직에 들어갔다.
아니, 조직이라고 하니까 좀 이상하다. 팀이라고 할까.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팀이었다.
정보를 수집하고 타깃을 물색하는 도면사,
소유자를 사칭할 배우를 고르고 교육시키는 수배사,
서류와 인감을 만드는 위조사,
돈 세탁 전문가, 그리고 이들을 지휘하여 최종 계획을 수립하는 지면사까지.
대관절 그들은 어떻게 부동산으로 큰돈을 벌어들이는가.
이것이,
본격 부동산 사기 미스터리 『도쿄 사기꾼들』의 내용입니다.
뭐야, 책 선전인가,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을 형제자매님.
말도 마십쇼(한숨).
부동산 사기 치는 이야기를 이렇게 박진감 넘치게 쓸 수 있는 겁니까.
농담 아니라 진짜 숨도 못 쉬고 읽었습니다.
사기 치는 걸 바로 옆에서 몰래 엿보는 느낌이었어요.
들킬까봐 얼마나 후달리던지.
이런 소설을 제가 직접 계약하고 편집했다는 게 자랑스러워 링크도 남겨봅니다.
속는 셈치고 한번 거들떠봐 주시길.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8556945&start=sl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