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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약간) 영화 택시드라이버 후기
게시물ID : movie_7963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민방위특급전사
추천 : 3
조회수 : 80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4/02/26 17:5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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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최근 시골생활을 하다가 흑화한 유튜버에 관련된 이야기가 인터넷에서 크게 주목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 뿐만 아니라 도시에서 살다가 시골의 목가적 전원생활을 그리며 귀촌했다가 낭패 본 이야기는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도시에서 살던 사람이 시골에서 살다가 낭패를 본 이야기도 있지만, 또 반대로 시골에서 살던 사람이 도시에서 살게 될 경우에도 적응하는 것이 만만치 않습니다. 사실 누가 잘했고 잘못한 것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주제입니다. 인문학자 게오르그 짐멜이 "대도시와 정신적 삶"이란 논문에서 밝혔듯이 도시의 생활과 시골의 생활은 전혀 다른 종류의 삶이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죠. 도시의 삶은 익명성이 보장된 사적이면서 객관적인 삶이며, 시골의 삶은 익명성이 없는 공적이며 주관적인 삶이기 때문이죠. 도시는 구성원 하나하나가 개인에게 의미를 갖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공존하기에 익명성이 보장되고 그에 따라 사생활을 존중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그 댓가로 고독함을 마주해야 하는 삶을 견뎌야 합니다. 그래서 공적인 영역은 모두 객관적인 기관에서 해결해 줘야 합니다. 삶이 어려운 사람은 국가적 차원의 복지서비스가 필요하고, 도로 건설 유지, 도시의 청결을 개인이 해결 할 수 없죠. 반대로 시골은 구성원이 너무 적어서 익명성을 바랄 수 없고, 그래서 사생활을 존중 받을 수 없죠. 내 삶과 타인의 삶이 아주 집요하게 얽혀 있습니다. 하지만 대신 고독이 설 자리는 없고 공적인 영역도 따로 없습니다. 환경 미화원이 없어도 동네는 청결하고, 동네에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국가의 지원이 부족하더라도 대체로 개인적 차원에서 복지서비스가 해결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각각이 서로 장점과 단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떤 삶이 더 우월하고, 어떤 삶이 저급하다고 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단지 내가 더 익숙하고 편한 삶이 있고, 생소하고 불편한 삶의 모습이 있는 것이겠죠. 중요한 것은 두 삶의 또 다른 차이에 객관성과 주관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독일의 법학자 엘리네크는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고 말했습니다. 도덕은 법을 포함하고 최소한 지켜야 하는 도덕을 법으로 규정한다는 뜻이죠. 이 말은 상당히 널리 퍼진 말이지만 상당히 잘못된 말입니다. 법과 도덕은 아예 다른 개념입니다. 법은 외적 강제력을 가진 준거이고, 도덕은 내적 자율성을 가진 준거입니다. 엘리네크의 말대로라면 합법적인 것은 무조건 도덕에도 타당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도덕적으로 참담한 사건들을 너무나도 많이 봅니다. 각종 파생상품을 다루는 펀드 매니저들, 법적으로 사기라고 하기엔 애매한 채권자들, 도덕적 해이에 빠진 부동산 중개인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부도덕한 합법인을 볼 수 있죠. 법은 객관적인 권리해석입니다. 내 권리와 겹치는 상대방의 권리를 분해하여 분석해서 선을 그어 주는 것이죠. 법에는 더 바람직하고 덜 바람직 한 것이 없습니다. 가치 중립적이죠. 권리가 있으면 있는 것이고, 없으면 없는 것입니다. 도덕은 가치관입니다. 바람직한 행동과 생각이 있는 것이고, 그렇지 못한 행동과 생각이 있는 것입니다. 가치 지향적이고 주관적이죠. 법은 맞고 틀림을 결정하는 준거이고, 도덕은 좋고 나쁨을 나누는 준거인 것입니다.
 
도시의 삶은 구성원의 거대함과 익명성으로 인하여 법적이고 객관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물론 도덕도 중요하지만 법이 더 큰 중요성을 갖게 되죠. 반면에 시골의 삶은 도덕이 법보다 더 중요합니다. 시골의 삶은 법만으로 영위하기에는 너무 비효율적이죠. 내 의무가 아니란 이유로 동네 청소에 빠지면, 다른 사람들이 나 대신 청소를 해야하고, 결국 법적으로 따지면 아무도 의무가 없기 때문에 그 넓은 동네를 청소하기 위하여 인력을 고용해야 하고 그 비용을 감당하기엔 구성원이 적어서 마을이 유지되기 힘들어 집니다. 동네에 마을 회관을 지을 때도 적은 인구 때문에 모두 국가나 지자체로 부터 지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십시일반 마을사람들이 추렴하기 십상이죠. 약간씩은 희생하여 사는 것이 오히려 더 효율적일 수 있는 것입니다.
 
영화 택시드라이버는 가치 중립적인 삶(법)과 가치 지향적인 삶(도덕)이 대비를 이룹니다. 주인공 트래비스는 심야 택시를 운행합니다. 트래비스는 배움이 거의 없고 해병대를 제대했다는 것 외에 다른 정보를 영화에서 제공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의 행동과 말에는 투박함과 순진함이 묻어 있죠. 그가 사랑하는 여인과 데이트 하는 장면에서도 이해가 안갈만큼 어리숙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트래비스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같이하면 여인도 좋아할 것이라 생각하고 데이트를 하지만 여인은 그를 경멸하며 떠납니다. 트래비스는 그 장면에서 그녀가 좋아하는 것을 하겠다고, 그녀에게 맞추겠다고 하지만 도시적인 그녀는 그를 헌신짝 처럼 버리고 말죠. 그러면서 어린 창녀가 포주로부터 도망치려 하는 장면을 만나게 되고, 그 순간 트래비스는 갈등을 하게 됩니다. 과거의 트래비스였다면 고민 없이 창녀를 도와 줬겠죠. 하지만 트래비스는 고민하다가 도와줄 기회를 놓치게 되고, 포주는 트래비스에게 20달러를 줍니다. 그리고 트래비스에게는 그 돈이 가슴에 대못처럼 박혀서 주머니 속에서 트래비스를 괴롭히죠.
 
영화가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트래비스의 갈등도 절정에 이릅니다. 트래비스는 유력 정치인에게 밤거리를 돌아다니는 인간쓰레기들을 다 쓸어버리라고 소리치고, 나쁜놈에게 자신의 마음속 대못이었던 20달러를 던지는 장면에서 감독은 법이냐? 도덕이냐?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트래비스의 택시와 경찰차는 교차합니다. 과연 트래비스는 도시적 삶과 시골적 삶을 조화시키고 화해할 수 있을까요? 이 영화의 결말은 아주 창의적이고 기발한 반전은 아니지만 묵직한 반전을 보여 줍니다. 아니 반전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결말을 보여주고 그래서 더욱 여운이 가시지 않게 합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마틴 스콜세지, 마틴 스콜세지 하는구나 하게 생각하게 되었죠. 간만에 좋은 영화를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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