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incheonnewspaper.com/news/articleView.html?idxno=213210
부끄럽지만 묘서동처라는 사자성어 태어나서 처음 들었는데
현 정부에 대해 이렇게 적절한 비유가 있다는 생각이..
이번주도 어김없이 나의 무지함을 깨우쳐준 넘사 필력에 감탄을 금치못하고 퍼올립니다.
언론과 정부의 잘못과 문제를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다고 정제되면서도 날카롭게
기술할 수 있는 분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이런 좋은 글이 널리 퍼지면 좋겠다는..
'어느 나라에 무능하고 새 옷만 좋아하는 사치스러운 임금이 있었다. 어느 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감으로 세계 제일의 옷을 만들 줄 안다는 두 재단사가 나타났다. 황제는 기뻐하며 그들에게 거액의 돈을 주며 그 옷감으로 옷을 만들어 오라했다. 재단사는 그 옷감은 ‘관리가 될 능력이 없거나 구제불능의 멍청이’에게는 안 보이는 옷감이라고 했다.…'
맞다! 우리가 잘 아는 덴마크의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1805~1875)이 지은 <벌거숭이 임금님>이다. 이 동화의 원제는 'Kejserens nye Klæder(황제의 새로운 옷)'이다. 일본에서 '裸の王様(벌거숭이 임금님)'으로 번역한 것을 우리가 그대로 직수입했다. 우리 동화에서는 '멍청한 사람 눈에는 안 보인다'가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인다'로 바뀌었다.
14일, 덴마크·독일 대통령 국빈·공식 순방 연기를 발표했다. 방문 나흘을 남겨 두고 일방적으로 초청국에 통보한다는 것은 국가 간 큰 외교 결례이다. 하 괴이한 일이기에 이해가 안 된다. 문득, 안데르센 동화가 생각난 이유다. 자, '멍청이 임금'은 그대로 두자. '구제불능 멍청이'에게 안 보이는 옷감으로 옷 만든다는 ‘재단사’가 꼭 우리 언론 같다. 대표적인 게 ‘대통령과 KBS 신년 대담’이다. 녹화라는 비판을 인식해서인지 7일 저녁 10시에 했던 방송 말이다.
방송 후, 아니나 다를까. 대담 진행자 박장범 앵커의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을 축소시키는 듯한 '파우치' 운운 질문 등, '권언유착'에 '최악의 방송 참사'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또 이 KBS 직원이 아닌 외주PD에 의해 은밀하게 군사 작전하듯 제작했다는 폭로도 나왔다. KBS 구성원들조차도 공영방송이 국영방송으로 전락했다며 치욕적이라 자기비하를 한다.
더욱이 '파우치' 운운이 무슨 잘못이냐는 진행자를 조롱하듯이 BBC는 다음 날인 2월 9일 <한국:대통령 '디올백 스캔들'은 정치공작이라고 말하다(South Korea: ‘Dior bag scandal’a political manoeuvre, president says)>라는 제하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에서 "윤 씨는 이런 행위가 '유감스럽다'는 짧은 사과에 그쳤다.", "국내 언론이 '디올백 스캔들'이라 명명한 이번 사건에 대한 그의 첫 발언은 시민들을 실망시키고 야당의 분노를 일으켰다."라는 기사를 송출했다.
이런데도 KBS는 설날인 10일 9시 30분, 몰염치하게도 <KBS 특별대담 대통령실을 가다>를 재편성해 전 국민의 밥상머리에 올려놓았다. 공영방송의 정의는 ‘영리에 목적을 두지 않고 공공의 복지를 위해 행하는 방송이며 공공성과 공익성을 프로그램 편성의 기본 이념으로 삼는다'이다. 그렇기에 시민들로부터 징수하는 수신료로 월급을 받고 프로그램을 운용한다.
우리 국민들을 '착한 사람 눈에만 옷이 보인다'는 말을 믿는 '구제불능의 멍청이'로 여겨서인가? "벌거숭이 임금님!"이라 해야 하거늘, 오히려 그 옷이 좋고 맵시 있다 추켜세우는 꼴이다. 그러니 벌거숭이 임금은 제가 관리 될 능력도 없는 구제불능 멍청이 벌거숭이인지도 모른다.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비판하는 기능을 수행해야 할 언론이 권력과 공생, 혹은 부역하는 기이한 현상이다. 이러한 기이한 현상을 '묘서동처(猫鼠同處)'라 한다. 고양이가 직분을 망각하고 쥐와 동거한다는 뜻이다. 종종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법을 위반한 사람의 잘못을 용인하거나 덮어주는 것, 또는 같은 편이 되어 함께 나쁜 짓을 저지르는 것을 비유하기도 한다.
언론은 사회를 지키는 파수꾼이어야 한다. 언론이 사회의 최후 보루로서 카랑카랑 서슬 퍼런 붓대를 세울 때 세상은 정의롭고 사람이 살만한 세상이 되기 때문이다. "벌거숭이 임금님!"이라는 말조차 하지 못하는 언론은, 말씀 언(言) 쓰는 언론이 아닌 '엎드릴 언(匽) 자' 쓰는 언론(匽論)이요, 기록할 기(記) 쓰는 기자가 아닌 '속일 기(欺) 자’ 쓰는 기자(欺者)일 뿐이다.
출처 : 인천신문(http://www.incheonnewspap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