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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쳐보기
게시물ID : panic_10326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whysochic
추천 : 3
조회수 : 509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24/01/09 23:36:41

그녈 훔쳐보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담배를 피러 잠깐 나간 베란다에서 처음

만나게 된 그녀. 아니 보게 된 그녀. 무슨 일인지 청순한 얼굴과 대조되는 자세와 복장으로

좀처럼 여자들이 흔히 피우지 않는 말보로 레드를 맛있게 태우면서 마치 세상을 다 산 듯이

처연한 표정으로 섧게 울고 있었다. 1년 전 보여준 단 하나의 표정이 나를 탐닉하게 만들었

다. 처음엔 그저 그 표정을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모든 걸

봐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커져갔다. 생각이 커지면서 나의 생활은 그에 맞춰 바뀌었다. 원체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해 원래 적던 친구가 없어졌다. 퇴근 후 곧장 집으로 와서 날마다 늘

새로운 그녀의 모습을 확인하는 일이 나의 일상이 됐다. 다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무언가가

끼어들 틈이 없이 나는 단지 그녀를 보는 것만으로 즐거웠고 행복하고 기뻤다. 물론 가끔씩

야시시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그녀였고(속옷 차림으로 맥주 한 캔을 하러 나온다든가. 훗.)

진실을 말하자면, 그럴 때는 그걸 보면서 현자타임을 가진 적도 많았다. 하지만 정말이지 난

짜증나게 누군가를 괴롭히고 스토킹 하는 그런 치들과는 질적으로 다름을 미리 밝힌다. 정말

가슴에 손을 얹고 난 그녀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는 평범한 소시민이니까. 그래

서 얼마 전부터는 카메라로 그녀의 모습을 녹화했다. 한 순간이라도 그녀의 모습을 놓치는 게

죽기보다 싫었기 때문이다. 물론 난 집에 난입해서 몰카를 설치하는 그런 새끼들과 다르단 걸

여기서 더 말 안 해도 알 거라고 믿는다. 그렇게 그녀의 모든 순간을 담아낼 수 있게 된 후

버틸 수 없는 행복감에 사로잡혔다. 그녀가 잠들어 관찰이 끝난 후엔 담긴 그녀의 모습을 이

리저리 자세히 훑어보는 것이 나의 또 하나의 새로운 일상이 됐다. 그런데 늘 안타까운 점은

기록된 영상 속의 그녀가 뭔가 말을 해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완

전한 그녀의 모습을 담아내는 것이 나의 의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처음으로 큰맘을 먹고

애매해서 아무도 없을 것 같은 시간대에 그녀의 집에 도청기와 카메라를 설치하러 들어갔다.

  

-9시 뉴스입니다

노량진 고시촌에서 웃지 못 할 살인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공무원 시험 준비생 A모 군이 건너편 집에 사는 B모 군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했다가 B모 군이 휘두른 흉기에 맞아 숨졌습니다. 경찰은 경위 조사 중에 A모 군이 1년 넘게 B모 군의 집을 도촬하고 그러한 관찰 사실을 마치 관찰일기처럼 상세히 기록하는 등 스토킹을 한 정황을 포착하였습니다. 평소 장발로 다니면서 피부가 희고 체구가 작은 B모 군을 여자로 오해해서 생긴 해프닝이라고 합니다. 일각에서는 B군의 살인 행위에 대해 정당방위를 적용해야 하지 않냐 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자세한 소식 김세로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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