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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팰리스' 그들만의 궁전/ 김신명숙
게시물ID : humorbest_15459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냄새나는당근
추천 : 45
조회수 : 5129회
댓글수 : 12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7/01/04 12:37:38
원본글 작성시간 : 2007/01/04 11:22:37
한국 사회에서 뒤통수 안 맞고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일 가운데 하나는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가능한 한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집의 의미만 하더라도 ‘가족의 사랑을 키우는 삶의 터전’ 요따위로 이해했다가는 속 터진 만두부인 꼴이 되기 십상이다. 다 알다시피 집이란 아파트고, 아파트란 위치와 평수에 따른 투기 대상이며 곧 돈이다. 즉 집은 돈인 것이다. 아파트를 돈이 아니라 집의 관점에서 보고 탐탁하지 않게 생각해 왔던 나는 최근에야 “앗, 나의 실수!”를 부르짖었다. 그리하여 열심히 발상의 전환을 모색중인데 얼마전 또 느닷없이 ‘신개념’을 주장하는 아파트가 나와 나를 더 혼란스럽게 했다. 이름도 거창한 타워 팰리스. ‘귀족 아파트’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귀족이라니, 집은 곧 돈이라는 시각으로는 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신개념인가 39억원짜리 매물이 나와 있다는 이 최첨단 초호화 아파트를 두고 말들이 많다. 우선 계층간 소외감이니 박탈감이니 하는 말들이 들린다. 그러나 남들이 그런 느낌을 갖는다고 함부로 부화뇌동할 일이 아니다. 그들이나 우리나 100억원 못되는 아파트에 살긴 마찬가지 아닌가 부자동네 아파트 값이 치솟아 주인은 가만히 앉아 1년에 몇억원을 벌고 세입자는 변두리로 밀려나야 하는 한국사회에서 암 걸리지 않고 살려면 이렇게 생각을 통 크게 키우는 게 최고다. 그러다 보면 타워 팰리스가 소외감이나 박탈감이 아니라 우리에게 뜻밖의 깨달음을 주는 의미있는 존재라는 사실도 문득 느끼게 된다. 우선 나는 타워 팰리스를 통해 우리 사회의 실상을 비로소 현실감 있게 알게 됐다. 아이엠에프(IMF) 이후 빈부격차가 더 심화됐다는 기사를 보긴 했어도 별 변화 없는 일상 속에서 긴가민가 했는데 타워 팰리스가 확실한 물증으로 나선 것이다. 그 때문에 분명한 이해가 가능했다. 얼마 전 서울시정개발원의 발표에 따르면 스스로 중산층에 속한다고 생각한 6.4%의 응답자 가운데 자산이 3억원도 못되는 비율이 절반이나 됐다고 한다. 그들 역시 타워 팰리스를 보면서 주제파악의 확실한 계기를 가졌으리라 믿는다. 다음으로 나는 철골구조 타워형으로 66층이나 치솟아 올라 주변 아파트들을 눌러버릴 기세로 서 있는 타워 팰리스를 보면서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남성적 가치가 얼마나 강고한가를 새삼 확인하게 됐다. 첫눈에 불끈 솟은 남성의 성기를 연상시키는 그것은 생김새부터가 권위적이고 오만하며 끝모르는 지배욕의 구현처럼 보인다. 그 거대한 물신의 성전에는 극도의 효율성 추구, 강자 지향, 패권적 배타성 등 남성적 가치들이 지고의 선으로 봉안돼 있다. 그래서 나는 타워 팰리스가 ‘타워 페니스’로 보인다. 잃을 것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그런지 타워 팰리스의 보안 수준은 말 그대로 철통같다고 한다. 단지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고 현관문은 지문과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열린다니 괴도 루팡 수준이나 되면 모를까 좀도둑들은 언감생심 꿈도 못꾸게 생겼다. 부자들이 전부 철통 보안을 해서 도둑들이 사라진다면 그런 생각을 하니 왠지 답답하다. 그러면서 엉뚱하게도 도둑이 있는 사회는 그래도 빈부간에 그만큼 소통의 여지가 있는 사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이런 황당한 생각도 타워 팰리스가 아니면 평생 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타워 팰리스는 또 역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자극을 준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나 역시 역사는 발전하고 있으며 시계바늘이 거꾸로 가지는 못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보라! 2002년 서울에는 이름 그대로 궁전(팰리스)이 들어섰고, 거기에 귀족들이 거주하기 시작했다. 봉건시대 경비병들이 첨단 전자장비로 바뀌었을 뿐 신분관계의 근본은 비슷하다. 특혜도 그대로고 신분세습 현상도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타워 팰리스를 지은 삼성은 입주자 문제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고 한다. 귀족은 돈만 있다고 아무나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입주자를 ‘선정한’ 삼성은 누구인가 누구에게 귀족 작위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단 한사람, 제왕밖에 없다. 세상에! 타워 팰리스를 통해 삼성은 한국 사회 제왕의 자리에 등극했다. 김신명숙/ 계간 <이프> 편집위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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