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6월 어느날이었습니다.
말 많고 시끄러운 지인이 갑자기 게임을 같이 만들 생각이 없냐고 물어왔습니다.
지인은 평소와 달리 열정적이고 진지했습니다.
지인의 눈은 마치 번식에 실패한 한마리의 야생 알파카 같았습니다.
그 똘망똘망한 눈빛과 멋진 모습에, 고추 달린 사람이라 반하진 않았지만
마침 주말에 할 것도 없고 인생이 무료하던 참이라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지인의 지인 한분 더해 팀이 만들어졌고 매 주 일요일마다 모여 게임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팀의 이름은 각자 닉네임을 따서 이름하야! 신햄카드(S.H.C)!
왼쪽이 저인데 실물이 더 잘생겼지만 금 손 디자이너분께서 캐릭터도 귀엽게 그려주셨습니다.
맨 오른쪽이 관심 종자인 지인인데 머리에 뭘 맞은 것 마냥 잘 묘사가 되어 있습니다.
첫 회의에서 지인의 지인분은 만들고 싶은 게임이 있다며 하나를 보여주었습니다.
모든 게임은 취향이 갈리지만 요즘 나오는 게임들에 비해 딱 봐도 지루해 보이고
너무 오래되서 트렌드에 맞지 않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일평생 하나뿐인 소원인 것 같아 들어드리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개발자도 행복한 게임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열렬한 회의 끝에 우리는 단순하지만 스피드 있고 플레이하기 쉽지만 깊이감 있고
스펙타클하고 아방가르드하고 럭셔리한 상점 게임을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아래부터는 본격적인 개발 과정입니다.
먼저 판매할 과일을 그려줍니다.
포토샵에서 쓱싹하면 누구나 쉽게 그릴 수 있는 과일입니다. 참 쉽죠?
물론 제가 그리진 않았습니다.
과일들은 상점 아래에 있는 지하 하수구에서 만들어집니다.
포토샵 지우개로 청소를 해둔 상태이기에 위생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만들어진 과일들은 첨단 과학의 힘을 빌려 다른 과일로 합칠 수도 있습니다.
한입 베어 물고 싶은 저 영롱한 빛깔이 보이시나요?
과학의 힘은 위대합니다!
과일을 합쳐 새로운 과일을 발견하면 알아두면 쓸데없는 지식도 나옵니다.
이번에는 과일을 구매할 손님 캐릭터를 만들어줍니다.
캐릭터는 애니메이션을 위해 절지 동물처럼 3부분으로 나눠 제작합니다.
절지 동물과 굳이 다른 점은 머리,얼굴,배로 이뤄져 있습니다.
생명이 탄생하는 과정은 다소 징그러워 보일 수 있지만
합쳐 놓으면 꽤나 귀엽습니다.
손님을 만들었으니 이번엔 본격적으로 과일을 판매해봅니다.
처음엔 초라한 가게이지만 현실과는 달리 빠르게 상점을 확장할 수 있습니다.
엿장수 마음처럼 상점을 업그레이드해 판매 가격도 높여줍니다.
터무니 없는 가격이지만 손님들은 하수구에서 만들어진 과일을 기분 좋게 구매합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상점만으로 돈을 벌기엔 부족합니다.
그래서 배달의 민족 답게 배달 서비스도 만들어 가게 밖에서도 돈을 법니다.
게임이 점점 복잡해 질수록 처음 플레이 해본 유저들이 게임 방법을 알기 어려워집니다.
유저들이 게임에 방법을 학습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가이드 퀘스트도 만들어줍니다. 뚝딱!
점점 개발 완료를 목표한 기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제서야 겨우 게임을 플레이 할 수 있게 되었는데, 남은 시간 동안 부랴부랴 밸런스도 맞춰줍니다.
유저분들의 눈에 보이진 않지만 거의 모든 게임들은 엑셀이나 스프레드 시트를 이용해 복잡한 데이터를 관리합니다.
그리고 개발이 마무리가 될 때쯤 어그로를 끌만한 앱 아이콘도 뚝딱 제작해줍니다.
앱 아이콘이 매력적이고 직관적일수록 한 명이라도 더 다운로드를 받기에 아주 중요한 작업입니다.
시간이 흘러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었습니다.
밤마다 괴롭히는 가을 모기를 잡듯이 게임에서도 해충(Bug)을 잡아줍니다.
방충망을 뚫는건지 어디서 계속 리젠되는 모기처럼 버그도 계속 리젠됩니다.
계속해서 테스트하고 버그를 잡는 일을 반복한 후
총 100시간에 걸쳐서 겨우 몇 시간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이 완성되었습니다.
마치 식물을 키우는 것처럼 게임 개발은 많은 인내가 필요한 것 같네요.
셋 모두 직장을 다니면서 틈틈히 만든터라 많이 부족하지만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끼리 만나 의기투합하여 목표 스펙까지 완성했다는 사실이 뿌듯했습니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고생한 기념으로 다같이 회식도 했습니다.
글이 길었는데 사실 이거 먹은거 자랑하려고 글 썼습니다.
자랑할 친구가 없거든요.
3가지 고기가 나오는 플래터입니다.
사진엔 없지만 맥주도 맛있었습니다.
돈 많이 벌어서 다음엔 오마카세에 가고 싶네요.
모두 부자되세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