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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글주의] 어제 은행 갔다가 바보처럼 울었어요.
게시물ID : animal_15408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다른
추천 : 20
조회수 : 928회
댓글수 : 17개
등록시간 : 2016/03/05 13:19:25
남편이랑 저랑 은행 갈 일이 있었는데, 미루고 미루다가 어제 갔어요.
마침 날씨도 좋고, 은행은 한산한 편이고.
신나게 번호표 뽑고, 창구 근처 의자로 가려는데,
창구 앞에서 한 아이를 봤어요.
커다란 눈망울에 온통 흰털, 짧고 뭉툭한 코, 납작한 얼굴 ...
휴~ 그 녀석 그리 흔히 볼수 있는 생김은 아닌데, 하필 그렇게 만났네요.

반가운 마음에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네고,
제 손 냄새도 맡게 해주고, 이마도 살짝 쓰다듬어 보려는데,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제 순서는 돌아왔고, 또 마침 업무 볼 창구 바로 앞에 있었는데,
전 눈물만 흘리며 바보처럼 그 자리에 서있었어요.

남편은 제가 또 이러니까 어쩔 줄 몰라하다가,
저한테 좀 쉬라고 하고는, 은행 창구 앞으로 갔어요.
근데 통장이며 도장이며 다 제 가방에 있는데 저 없이 뭘 하나 싶어서,
제가 바로 따라가서 필요한 물건들을 은행언니 앞에 꺼내놓기는 했는데,
눈물이 너무 나서 말을 한 마디도 못하겠는거예요.

다행히 할 일 목록을 통장 위에 붙여갔는데,
은행언니가 그걸 보고 친절히 도와주시더라구요.
제가 좀 진정되니까 은행언니가 물으시네요.

"키우던 강아지랑 많이 닮았나봐요?"
"네. 그러네요."
"오래 키우셨나봐요?"
"13년요."
"어유~ 그럼 완전히 가족이었네요. 힘들겠어요."
"그럼요. 가족이죠."
"이래서 전 동물 못 들이겠어요. 저도 정들면 이럴거 같아요."
"저도 다신 못 키워요. 그 녀석이 마지막이죠. "

그렇게 은행에서 일을 마치고,
남편은 다른 일이 있어서 가고 저 혼자 집에 돌아왔는데
내내 그 녀석의 눈망울이 아른 거려서 함참을 또 울었어요.


정신 차리고 나니
주인 허락도 없이 그 강아지에게 손 댔던 것도 미안하고 부끄럽고,
많이 당황했을텐데 따뜻하게 위로해준 은행언니에겐 고맙고 또 부끄럽고 ...
매번 이런 일을 옆에서 지켜봐야하는 남편에게도 미안하고 ...


새벽까지 이래저래 뒤척이고 잠 못 들다가
오늘 점심 때에야 일어나 거울을 보니 벌에 쏘인 듯한 눈덩이에 놀라고
어제 일이 떠올라 또 콧등이 시큰거리길래 오유에 왔어요.

그동안 오유에서 눈팅만 하다가,
가끔은 저도 한마디 끄적이고 싶은데
막상 쓰고 보면 그 녀석 얘기 뿐이라 지우고 또 지우고 그랬어요.

오늘은 그냥 한번 용기 내서 글 써 봤어요.
진짜 글을 올릴지는 모르겠어요.
글도 엉망이고, 짧게 쓰고 싶은데 혼자서 주절주절 ...
마무리는 정말 어떻게 해야할지...

음...저기요.
글 쓴 김에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 하며 마무리 할게요.
동게에 털복숭이들 사진들 보며 힘 많이 얻었어요.
항상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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