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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알콜 중독자다.
게시물ID : freeboard_200571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청년백수연합
추천 : 8
조회수 : 1398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23/04/13 03:3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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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사회에서 아무 문제 없는 일반 정상인 처럼 생활하는 나는 사실 미친 알콜 중독자다.

평소의 나는 정해진 시간보다 30분 일찍 출근하는 성실한 청년이며, 시키지 않은 일도 먼저 알아서 하는 에이스이며, 모든 사람들과 싸우지 않고 두루 지내는 친화력 있는 사람이다. 처음에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여러가지 사회적인 문제, 금전적인 문제, 일상생활에 심각한 지장이 생길 정도로 술을 퍼먹다 보니 나 스스로 심각성을 깨닫고 나는 나를 미친 알콜 중독자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내가 왜 이렇게 술을 퍼 먹게 되었는지 그런 심도깊은 이야기는 지금 다루지 않기로 한다.

고등학교 때 시험 끝나고 아이들과 한잔 두잔 하던 것이.. 대학교 때 부어라 마셔라 위장에 들이붓던 소주들이.. 힘든 일 기쁜 일 그냥 언제나 나의 일상에 함께하는 동반자가 되어 있었다. 

퇴근하고 무조건 소주2병 이상 마시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고 휴무일날 심할 때는 아침부터 시작해서 다음날 아침까지 13~14병을 마시기도 한다. 코로나 때는 집에서 맨날 병나발을 불다가 가게에 가서도 잔에 따라 먹는 것 조차 어색하게 느껴져 병에 입대고 마시다가 단골 사장님한테 등짝 스매싱을 몇번을 당했는지 모른다. 집에 있을 때는 유리병을 나발 불지도 않는다. 페트병에다가 입을 갖다 대고 그야말로 물쳐 마시듯이 삼켜낸다. 내가 스스로 중독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고 신께서도 내게 한번 기회를 주셨었다.

나는 몇해전 배가 끊어질 듯한 복통에 새벽에 응급실에 실려 갔었고, 급성췌장염 및 췌장 부분 괴사 진단을 받고 강제 입원했으며 2달간 정신과를 다니며 술을 끊었었다. 온 몸이 상쾌해졌고 심각했던 지방간과 췌장상태도 많이 건강해졌고 술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나에게 새 삶이 주어진 것만 같았다. 살면서 두 번 다시는 아니더라도 웬만하면 술 먹을 일은 없을 줄 알았다. 웬걸? 나란 인간은 이다지도 존재의 가벼움을 가지고 태어났단 말인가? 조금 힘들다는 핑계로, 안 먹으니 친구들이 떠나간다는 핑계로, 가정사가 나를 힘들게 한다는 오만 같잖은 개짓거리 같은 핑계를 수백개를 만들어 내서 오늘은 괜찮겠지 입에 댔던 술이 벌써 내 기억으로 약 684일 째 연속 술을 마시게 하고 있다.

벌써 자빠져서 앞니 부러먹은 게 몇번이며, 아끼던 동생들한테 손찌검을 하질 않나, 내가 평소 제일 혐오하는 행동인 유흥업소에 들락거리길 시작했고 다음날 아침에 수차례의 계좌이체를 통해 120만원을 날려버린 나를 보고 나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과 자괴감으로 우울증까지 온 듯 하다. 내가 살면서 아가씨를 다시 한 번만이라도 부른다면 자살한다는 다짐을 수 없이 했지만, 자세한 기억이 나지 않은 채 1주일 동안 4번을 호출했고 300만원이라는 돈이 공중분해 됐다. 모아 놓은 돈도 없고 월급도 쥐꼬리만한 내가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고 그냥 죽고만 싶을 뿐이었다. 건강하고 젊으면 돈이야 또 벌면 된다지만 내가 저질러 버린 그 죄는 어떻게 사죄해야 할지 너무 막막했다.

살면서 어떻게 가족들을 볼 것이며 하늘아래 부끄럼 없긴 개뿔, 내가 저지른 부끄러운 그 일 때문에 사람 눈도 잘 마주치지 못 하게 됐다. 

이제는 내 뇌도 한계에 부딪쳤는지 밖에서 술을 마시기만 하면 필름이 끊기고 성격도 ㅁㅊ놈처럼 변하는 것 같고 말도 어눌하게 하는 반장애인같은 놈이 됐고 더 이상 나는 이 사회에 쓸모없는 그냥 도려내야 할 암덩어리처럼 느껴졌다.  

하여 나는 4월 13일 지금 이 시각, 이 곳에 100일 동안의 금주선언을 할 것이며 앞으로 100일째 되는 날인 7월 21일까지는 술을 입에 대지 않을 마음을 먹었다. 옆에 직장동료들, 친구들, 가족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어떠한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을 작정이다.

나는 그 누구보다 내 심각함을 잘 알고 있다. 믿어 달라고는 하지 않겠다. 전과가 있고 나도 내가 해낼 수 있을지 사실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7월 21일에는 직장을 땡땡이 치고 낮술을 때리러 가든지 술 쳐 먹다 고주망태가 되어 한강물에 빠져 뒈지든지 내 알 바가 아니다.

당장에 나는 절주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100일 동안 만이라도 혀 깨물고 참아보겠다는 나의 단오한 다짐을 이 곳에 남긴다.  

출처 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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