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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철쭉
게시물ID : freeboard_200212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호리호오리
추천 : 4
조회수 : 738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23/01/25 13: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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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하얀 철쭉>
 ‘오늘은 무슨 콩고물이 떨어질까‘하며 부모님이 이사한 집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던 나는 서재에서 못보던 사진을 하나 발견했다. 촌스러운 녹색 액자를 한 꽃 사진이었다. (아래 사진은 아니다.) "저게 무슨 사진이야?" 내가 묻자, "성인이가 흰 철쭉 찍는다고 여행갔었쟎아.” 언니가 말했다. 몰랐다. 난 그때 외국에서 공부하던 때였으니까. 오빠는 그 여행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저깟것 찍으려고 갔다니. 역시 맹한 오빠였다. 오빠를 보낸 지 얼마 후 꿈에서 오빠를 만났다. 탈탈탈 흙먼지 내는 버스를 타고 오빠와 나는 시골길을 가고 있다. 양쪽엔 푸른 나무가 끝없이 늘어선 영화에 나올만큼 아름다운 길이다. 오빠는 까만 카메라 가방을 메고, 그 나무가 가득한 길에서 내려야 한다. 말은 없지만 느낌으로 그래야 한다는 걸 안다. 마음이 너무 아파와서 오빠더러 내리지 말라고 하고 싶은데 오빠는 빙긋 웃으면서 사진 한장을 꺼내 보여준다. 사진이 너무 선명해서 아직도 디테일까지 머릿속에 남아있다. 

 흑백사진에는 계곡에서 노는 세 남자 아이들이 있다. 깔깔대는 발가벗은 아이들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물에 뛰어 들고 있고, 눈부신 햇살은 튕기는 물방울들을 하얗게 빛나게 했다. 맨 마지막으로 물에 뛰어드는 아이의 구부린 무릎은 직전에 들어간 아이의 어깨 오른쪽에 떨어지고 있다. 어린 아이들의 표정이 햇살만큼 밝다. 사진을 받아 든 나는 버스에서 내리는 오빠를 그냥 바라보았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잠에서 깨어나면서까지 가슴이 뜨거웠다.  죽은 사람은 꿈에서 말을 안 하는 걸까. 그 이후 다시는 오빠가 꿈에서 보이지 않았고 난 오빠가 좋은 곳에 갔다고 믿게 되었다. 인생길에서 나보다 먼저 내리며 내게 준 그 사진은 설마 내가 아들 셋을 낳을 거란 뜻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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