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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만남의 광장 1부
게시물ID : humordata_197658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심해열수구
추천 : 0
조회수 : 155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3/01/20 21: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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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마지막으로.. 함께 가고 싶은 곳은?"  서류를 보며 질문한 남자는 상대방을 바라봤다.


이곳은 넓은 공간을 자랑하는 어느 기업의 강당. 오후의 따뜻한 햇살이 거대한 창을 통해 


테이블에 마주 앉은 두 사람을 비추고 있다. 답을 기다리며 볼펜을 돌리는 남자.


흰 가운을 걸쳤고 왼쪽 가슴에 명찰이 달렸다.  "놀이공원이요.."  고민 끝에 입을 연 상대. 


얼굴엔 여드름이 있고 안경을 썼다. 한 눈에 봐도 앳돼 보이는 학생이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가령 어떤 놀이기구를 탈 것이며 종일 기구만 타겠다든지.. 


아니면 기구를 타지 않고 구경하며 대화 위주로만 하겠다든지.."  "다 해보고 싶은데요"  


지체없이 대답하는 학생. 남자는 뜸을 들이다 서류에 무언가를 적는다. 


벽에 걸린 시계는 두 시를 가르키고 있다. 서류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남자. 


그러다 한 가지 빼먹은 게 있는 듯 말을 꺼냈다.  "혹시 추가하고 싶거나 궁금한 점은.."  


말을 할까 망설이는 학생. 그런 학생의 모습을 본 남자는 다시 자리에 앉아 부드럽게 말한다. 


"괜찮으니까 얘기해도 돼~"  "진짜.. 엄마를 만날 수 있나요..?"  물어보는 학생의 눈가는 촉촉해졌다. 


남자는 옅은 미소를 띠며 차분하게 말했다.


"제출한 여러 장의 사진과 생전에 목소리가 담긴 영상 등을 토대로 세세하게 구현될 거라


학생이 기억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과는 큰 차이는 없을 거야"  "그럼.. 얼마나 걸리나요?"

             

"음.. 학생이 원하는 세부 사항을 전부 묘사하자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기도 하고 


기기가 아직 테스트 중이라서 아무리 빨라도 9~10개월은 걸릴 것으로 봐"  


한숨을 쉬며 담담한 반응을 보이는 학생.  "후우... 오래 걸리네요.."  

 

"테스트는 며칠 뒤면 끝이니까, 그건 둘째 치더라도..진짜 문제는 따로 있지.."  


학생이 궁금해 하는 눈길을 보내자, 남자는 손목 시계를 보곤 말했다. 


"좋아, 뭐 아직 시간도 충분하니 설명 해줄게. 자 그러니까, 예를 들어 어떤 고객이 과거의 누군가와의 추억을 


재현해 달라는 요청을 한다고 치자. 그럼 추억의 장소와 보고싶은 인물 이 둘을 기기로 재구성하는 게 


핵심인데. 그렇다면 장소와 관련해서는 먼저 추억의 그날이 언제인지 알아야 되겠지. 


즉 정확한 연도와 날짜,시간 등을 확인하고 당시의 그곳과 관련된 사진 자료 등을 입수해서 


그걸 토대로 고객이 기억하는 장소를 재구성한단 말이야. 


그리고 둘째로 인물과 관련해서는 아까 말한 학생이 건네준 사진을 참고하여 먼저 얼굴과 신체 등을 구체화한 후. 


이 기본 뼈대 위에 감정이 실린 다양한 표정,말투,습관 등을 얹고 생전에 목소리까지 입혀주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생동감 있는 인물이 탄생되는 거야. 


근데 여기서 문제는 만약 어떤 고객이 그날 자신과 상호작용한 사람도 표현해달라고 할 수도 있잖아. 


무슨 말이냐면 가령, 솜사탕과 얽힌 행복한 기억을 간직한 어떤 고객이 있다고 하자. 


행복했던 그날, 마침 그곳에 있던 장사치에게 솜사탕을 산 고객은 누군가와 먹으며 즐겁게 놀았단 말이야. 


그러면 이 고객 입장에선 행복한 기억의 출발점인 장사치도 표현되기를 바라는 거지.  


더 나아가 상호작용한 사람이 한 두명이 아닌 셀 수 없이 많고 이걸 전부 재구성해달라고 요구한다면 어떻게 될까."


열변을 토하는 남자에게 반응을 꼭 해야만 될 것 같은 기분이 든 학생.  "글쎄요... 모르겠어요"  


"그냥 우리 입장이 참 난감해지는거지 허허"  남자는 씁쓸하게 웃고는 말을 이어갔다.


"뭐 방법은 없는 건 아니고 그런 경우엔 좀 더 유연한 조정 안을 우리 측이 제안하기도 해. 


어쨌든 재구성 한다고 모든 상황을 담아낼 순 없으니 고객과의 협의가 필요한 사항이지." 


듣고 있던 학생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고 남자의 설명은 계속됐다.


"자 이제 학생도 느꼈을 거야 이 과정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근데 말로만 들었을 땐 단순히 시간만 주어지면 기술자들이 고객의 주문대로


뚝딱 만들어 낼 거란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그건 절대 아니고, 과거의 상황을 재구성한다는 건  


말처럼 쉬운 게 아닌 아주 고된 작업이라는 걸 알아야 돼." 


그럼 재구성하는 작업이 힘든 이유가 뭘까. 간단해. 첨단 기기라도 아직은 전부 사람 손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야. 


즉 프로그래머가 일일히 명령어를 입력해야 하거든. 영화처럼 신체와 연결만 하면 바로 가상 세계로 접속하는 게 아니라서."  


"매트릭스..."  학생의 말에 씽긋 웃는 남자.  "후후 빙고! 상용화된 양자 컴퓨터와 강인공지능이 출현한다면 모를까 


지금 기술로는 매트릭스의 '매' 자도 어림도 없어.   


어찌됐든 프로그래머가 하는 일은 몸을 갉아 먹는 지독한 일이라 테스트 기간 중에도 퇴사한 사람이 수두룩 했어. 


그래도 누군가는 견디고 있지만.. 어후~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네."  


이 대목에서 몸을 부르르 떤 남자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는 학생. 


"그래 눈치챘겠지만 슬프게도 난 이 과정에 참여하는 프로그래머 중에 하나야. 


물론 지금처럼 고객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는 일도 하고 있지."


그때 강당 문이 열렸고 키가 크고 말쑥한 검은 정장 차림을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곧 발표 시간입니다"  


남자는 알았다는듯 고개를 끄덕인다.  "가볼 곳이 있어 학생"  의아한 표정으로 학생이 물었다.  "어딜 간다는 거죠?"  


"곧 알게 될 거야"  남자를 따라 나선 학생. 강당을 벗어나자 긴 복도가 나왔다. 저 멀리 복도 끝을 향해 걷는 세 사람. 


한참을 걷자 마침내 복도 끝에 이른 세 사람 앞엔 아주 넓은 공간이 나타났고 학생은 넋을 놓고 이 광경을 바라봤다.


아득히 높게 솟은 둥근 천장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하는 실로 거대한 규모의 홀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건물 중앙에 위치한 이곳은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갑자기 홀에 모인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한 곳을 주시했고 누군가가 사람들의 환대를 받으며 홀 중앙 쪽으로 걸어왔다. 


"회장님이야"  남자가 귀엣말로 알려줬다. 박수소리가 잦아들며 한 손에 마이크를 든 회장이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이곳을 방문해 주신 여러분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오늘 여러분 앞에 이 획기적인 기기를 소개하는 자리에 참석하게 되어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아직은 테스트 중입니다만 조만간 이 기기가 본격적으로 구동된다면 그동안 현실만의 전유물이던 인간의 모든 삶의 영역이 


가상 현실 시뮬레이터 안에서도 구현되어 실제 현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시뮬레이터는 향후에도 세대를 거듭하여 성능이 더욱 향상될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할 수 없는 


완전 몰입 가상 현실이라는 기술적 특이점이 미래 어느 시점에 도래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렇듯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진 시뮬레이터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공을 세운 인재들이 있습니다.


언제나 변화의 물결을 갈망하고 혁신을 추구하는 여러 유능한 과학자 및 기술자.


바로 그들 손에 의해 시뮬레이터가 개발될 수 있었습니다. 분명한 목적 의식을 갖고 기기 개발에 총력을 기울인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바입니다."  일제히 박수를 치는 사람들. 연설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시점이지만 회장은 


목이 불편한 듯 거듭 목소릴 가다듬는다.  "커험..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뮬레이터 탄생 과정의 배경에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서 현대 기술 문명 사회를 주도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우리 기업의 가치를 끌어올린 혁혁한 공을 세우고 기기 개발에 아낌없는 투자와 성원을 보내주신 귀빈 여러분께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열렬한 박수 갈채가 쏟아지며 발표회의 분위기는 무르익는다.


이 틈에 수행원이 다가와 회장에게 물을 건넸다. 목을 축이며 목소리를 가다듬은 회장은 박수가 끝날 때쯤 말을 이어갔다.


"이 시뮬레이터의 명칭은 '만남의 광장' 입니다. 만남의 광장이라,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친숙한 말이죠?


이렇게 명명한 까닭이 있습니다. 지난 수 년간 인류 문명의 기술은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해 왔습니다.

 

그로 인한 급변하는 사회는 인류에게 갖가지 부작용을 양산하며 풀어야할 과제를 떠안겼습니다. 


그럼 대표적인 문제를 거론해 보겠습니다. 바로 이제는 사라져 가는 공동체의 개념입니다. 


이웃과 가족 및 친인척 간에 교류 단절이 이에 해당합니다. 


반면 1인 가구를 비롯한 독거노인 등이 해마다 급증하며 기존의 개념을 대체하였습니다.


고립된 환경에 처한 이들에겐 오로지 텅빈 공허함과 외로움만이 주변을 맴돌 뿐입니다. 


인류에게 번영과 즐거움을 가져다 준 기술 문명의 이면에는 바로 이러한 고통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 2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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