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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운, 연안으로
연안으로 가 봅시다
연안으로 밀려오는 너를 보러 나는 연안으로 건너가 봅니다
너를 마주한 나를 만나러 연안으로 나를 흘러가 봅니다
네게 잠들기 직전이라고 말해 주러
그런 내게 너는 물을 밀고 땅을 밀었다고 합니다
밀다가 놓쳤다고 합니다
밀려오는 중에 갈 곳을 잃었다고 합니다
나는 그런 네게 사이가 사라졌다고 말합니다 멀어져서
너무 멀어져 버렸다고 그러니 나를 흘러가라고 말합니다
너는 의아한 표정으로 내가 잠들어 있다고 말합니다
김미정, 자작나무는 나를 모르고
돌아오지 않는 나무들이 바닥에 뒹군다
얼굴 없는 흰 발자국만 떠다니는
숨어드는 잎사귀의 아름다운 표정들
사라지고 나타나고 다시 사라지는
자작나무는 나를 모르고
나를 모르는 너를 모르고 고요히
나무인 줄 모르는 나무의 이야기처럼
나에게 물러서라고 외치는 그대는
좁고 휘어진 길에서 뛰어내리는 중이라 말했다
입김 나는 투명한 언어들이 잘 자라는구나
안녕은 안녕이란 맨발을 꺼내 보이고
그때 하늘은 아주 검지도 하얗지도 않았는데
어떤 가지는 눈빛이 되고 기나긴 겨울이 되지
슬픔이 자라는 줄도 모르고
어딘가로 떠나는 문장들
세상의 반을 찌르고 나머지 반은 삼키며
김연필, 우산
비가 내리고 어떤 나무를 본다
어떤 나무 아래엔 어떤 심연이 있다
어떤 심연 속으로 들어가면 어떤 슬픔이 있다
나는 슬픔을 모르고 슬픔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슬픔 속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지 않는다
슬픔은 깊이 가라앉고, 나는 슬픔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비가 계속 내리고, 비가 계속 슬픔을 적시고
슬픔 속에 빗물이 고여도 나는 슬픔에 대해 궁금하지 않는다
나는 슬픔을 모르고, 모르고 싶고
모르고 싶은 채로 계속해서 슬픔을 바라보기만 한다
심연과도 한 뿌리라는 그 슬픔을 바라보기만 하고
슬픔은 심연처럼 깊어지고, 그러다가 심연이 된다
나는 심연에 대해 아는 것이 있다
나는 심연에 대해 많은 것을 안다
나는 심연을 알지만 아무 말 않는다
비가 내리고, 어떤 나무 아래 서서
끊임없이 어떤 말을 중얼대는 나를 본다
김원욱, 펭귄의 노래
바위 끝이다 파도가
출렁, 뼛속까지 스며든다
어디선가 보았을
숨죽인 면멱, 어차피 세상은 미끄럼타기다
비상한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기댈 곳이 없다는 것은
부를 노래가 없다는 것
절뚝이며 온 세월
아직 제대로 울어보지 못했는지
모른다, 어떻게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서슬 푸른 세상에 가려 병들고 지칠 때
미명 속에서 다가오는
분분한 떼울음
좀 더 가벼워지지 않고는
돌아설 수 없다
뒤뚱이지 않고는 꿈꿀 수 없다
강영란, 당신의 리을
당신이 쓰는 리을은
밑부분을 넓고 둥글게 말아
포옹하듯이 팔을 내밀지
기억과 으와 니은이 만나
생긴 리을 안에는
ㄱ으로 시작되는 당신의 모든 기억과
ㅡ로 시작되는 기억과
ㄴ으로 시작되는 모든 기억이
둥근 팔안에 소복하지
당신이 썼던 리을을
손가락으로 둥글게 따라 써 보며
ㄱ 속에 있는 “그날의 기차역”이나
ㅡ로 시작되는 “은하수 무리”나
ㄴ속에 있는 흥얼거리던 “노래” 같은 것들
어쩌다 우리는 이토록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지
천천히 오래도록 내 손가락은
당신의 리을을 다녀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