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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 나도 모르게
민들레는 밤이 되면 꽃을 오므렸다가 아침이 되면 다시 피운다는 걸
오십이 되어서야 안 것 때문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여보, 당신도 알아?
아내에게 위로라도 받고 싶어 물어보는데
꽃들은 대체로 그렇다고 대답하는 아내의 말 때문에
나도 모르게 또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나 같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민들레가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꽃을 피우고
앞마당에서 대로변까지 홀씨를 날리는 것만 같아
나도 모르게 자꾸만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신철규, 의자는 생각한다
의자는 생각하는 사람처럼 앉아 있다
수평선을 바라보며
수평선이 그려진 그림을 바라보며
구름이 왼쪽 귀로 들어와 오른쪽 귀로 빠져나간다
다정한 연인처럼
창에 비친 서로를 바라보며 낡아가고 있다
삶의 절반 동안 기억해야 할 일들을 만들고
나머지 절반 동안은 그 기억을 허무는 데 바쳐진다
아무도 모르고 지나친 생일을 뒤늦게 깨닫고는
다음해의 달력을 뒤적거린다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툭 치고
이제 문 닫을 시간입니다, 라고 말해주기만 기다리고 있다
금방이라도 무릎을 짚고 일어설 것처럼
의자 위에 물음표 하나가 앉아 있다
구름의 초대장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손택수, 완전한 생
완전히 행복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행복의 중심에 있을 때도 어딘가는 조금씩 불편했다
완전히 불행했던 적도 없는 것 같다
불해의 중심에 있을 때도 대책없는 낙관이 있었으니
완전히 진실했던 적은 있었나
진실의 중심에 있을 때조차 얼마간은 나를 의심하는 병을 내려놓지 못했다
완전히 진실하지 않았던 적도 없는 것 같다
위선의 중심에 있을 때조차 몸은 알고 수면 장애에 시달렸으니
완전히 사랑했던 적도 없는 것 같다
결혼행진곡 속에 있을 때도 나는 어딘가로 도망갈 궁리를 했다
그러나 완전히 사랑하지 않은 적이 있었나
불을 끄지 않고 기다리는 아파트 벼랑 위의 불빛이 나의 등대였으니
밥벌이 할 때는 시간이 없어 괴롭고, 시간이 남아 돌 때는 돈이 없어 괴롭고
돈도 시간도 다 있을 때는 건강이 허락치 않는구나
내게는 삶의 전부가 허락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온전한 삶의 절정이 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딘가는 아직,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가 나를 안심케 한다
조금씩은 늘 허전하고, 부끄럽고, 불만스러웠으나
중심으로 조금씩은 어긋나 있는 생이
기우뚱, 쏠리는 중심을 잡아주면서
문태준, 절망에게
당신은 허리춤에 요란한 바람과 자욱한 안개를 넣어두었네
내부는 깊은 계곡처럼 매우 신비롭네
외출을 앞둔 당신은 헝클어진 긴 머리카락을
거울 앞에서 큰 빗으로 오래 빗어 내리네, 장마처럼
저음으로 중얼거리면서
당신은 여름밤의 무수한 별들을 흩어 버리네
촛불을 마지막까지 불태워 버리네
밤마다 우리를 눈 감을 수 없게 하네
당신은 연륜 있는 의사들을 좌절시키네
지혜의 눈에 검은 안대를 씌우네
그러나 아이들의 꿈인 사과를 떨어뜨리지는 못하리
당신의 고백을 나는 기다리네
허공이 쏟아지기를 기다리는 절벽처럼
꽃을 기다리는 화병처럼
임승유, 휴일
휴일이 오면 가자고 했다
휴일은 오고 있었다
휴일이 오는 동안 너는 오고 있지 않았다
네가 오고 있지 않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지
모르는 채로 오고 있는 휴일과
오고 있지 않은 너 사이로
풀이 자랐다
풀이 자라는 걸 알려면 풀을 안 보면 된다
다음 날엔 바람이 불었다
풀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알게 된다
내가 알게 된 것을
모르지 않는 네가
왔다 갔다는 걸 이해하기 위해
태양은 구름 사이로 숨지 않았고 더운 날이 계속되었다
휴일이 오는 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