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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정지된 눈빛으로 색을 낚는다
게시물ID : lovestory_9377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5
조회수 : 104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2/11/17 21:44:32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송승언, 여름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거나

아무 생각도 하고 있지 않았다

마른 입술을 통해 겨울이 왔다

나는 장롱을 뒤져 목을 묶는 생물을 찾았다


그것은 꿈틀거리고 있었다

밖에서는 습관을 버렸다

네가 온 벤치 하나

네가 오지 않은 벤치 하나

발목 잘린 벤치 하나

온통 하나뿐인 공원에서 왜 우리는 여전히 둘일까


네 입을 벌렸다

그것은 꿈틀거리고 있었다

쓸모가 없었고 살아 있었다

내가 온 벤치에 너는 오지 않고 있었다


우리는 여전히 둘일까

목이 막혔다

개별적인 나무에서 개별적인 꽃이 피었다


얼어붙은 호수에서 너를 찾았다

너는 없고 너의 표정만 갈라지고 있었다

목이 막혔다


얼음 깨지는 소리

벤치로 왔다

나는 땀을 흘렸다

 

 

 

 

 

 

2.jpg

 

이만섭, 어항의 세계




정지된 눈빛으로 색을 낚는다


모로 누운 채 올라오는 식물성 물고기들

잠시 꽃으로 피었다가 되돌아가고


그 사이

낚인 줄 모르고 노래하는 아가미를 좇아

스쿠버다이버처럼 내려간 물의 심연이

건조한 사막이다


모래톱 위에 솟아난 패각들은

누군가 살았던 흔적이건만

아무런 감촉도 남아 있지 않다


몸에 부레를 지니고도 생의 무게를 견디느라

끊임없이 부딪히며

적막이라는 난기류를 벗어나지 못해

낚이고 방생을 되풀이하는 동안

더듬더듬 물의 사막을 건너가고 있다


모래펄에 심은 꽃나무들

방부 처리된 표면에 허파를 달고

기웃기웃 꽃 피우러 온다


세상 밖에서 투시하는 정지된 눈빛에

색이 낚이는 때를 좇아서

 

 

 

 

 

 

3.jpg

 

이미산, 나는 비를 모르고




늦은 밤 창문에 내려앉는 빗방울

저것은 비의 발바닥


발바닥 하나가 지상에 도착하기까지

나는 비의 이야기를 모르고

길목마다 조금씩 떼어주었을

발바닥만 남은 자의 안간힘을 모르고


발바닥이 발바닥을 만나

안간힘에 안간힘을 더해

일그러지는 저 기호가

내게 남겨지는 비의 전부


빗방울은 창문에 매달려 나를 바라보고

나는 창문에 비친 내 몸 가득 채운 발바닥 바라본다

우리는 마주보며 하나의 지점으로 밀려간다


내부가 내부와 겹쳐지는 순간

발바닥은 어디쯤서 허물어지는지

지워지지 않으려

발바닥 하나에 매달리는 빛과 어둠


발바닥이 발바닥을 이끌고 사라지는

어둠의 저쪽이 어디인지 나는 모르고

 

 

 

 

 

 

4.jpg

 

송종규, 벤자민을 위하여




너는 그냥 꽃, 너는 그냥 글씨

너는 그냥 눈물, 너는 그냥 사마귀

모든 상식과 사건과 사실들을 의심하는 일은

벤자민이 세상을 건너는 하나의 방식

너는 그냥 빗물, 너는 그냥 포오크

너는 그냥 계단, 너는 그냥 빛

벤자민은 이십구 층에 있다

이십구 층은 아득한 섬

슬프다, 라고 말하는 것은 진부하지만

그립다, 라고 말하는 것은 신파 같지만

그립고도 슬픈 섬, 너는

그냥 햇빛, 그냥 의자

그냥 거짓말

너는 그냥, 아득한 세월

 

 

 

 

 

 

5.jpg

 

이영옥, 허공에 갇힌 새




높은 철조망에 돌멩이가 끼어 있다

날아가던 순간이 덥석 물린 모양이다

속도를 얻은 돌이 새가 되었을 때 내일이라는 바깥이 생겼다

살이 베인 적 없는데 머큐로크롬 문댄 저녁이 왔다

수억 개의 모래들이 새를 경험한 돌을 견디고 있다

새는 돌처럼 흔들어 깨우는 것을 원치 않는다

허공에 빨려 들어간 날개를 스스로 기억해 낼 때까지

철조망은 새를 돌볼 것이다

운 좋은 새들은 모두 철조망 너머로 날아갔다

새를 기다리던 키 큰 나무가 어둠의 이파리를 흔들었다

간신히 그리운 건너편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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