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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겁 많은 내 생은 그대로 멈추어버렸다
게시물ID : lovestory_9372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4
조회수 : 90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2/11/01 13:35:54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박철, 반




반은 가운데인가 천의 얼굴인가 당신인가

반에 관한 두 가지 아픔이 있다

어머니 김포 들판 끝에서 피사리 할 때

하늘이 검게 뒤집히고 장대비 쏟아져 내릴 때

물주전자 들고 나는 들판의 반에 서 있었다

마을로 돌아가야 하나 내처 나가야 하나

달려가 엄마를 부르니 다리 밑에 비를 피하던 어머니는

내 등짝을 치며 왜 왔느냐 혀를 찼다

조금 더 커 한강에서 멱 감을 때

형들 따라 강의 가운데까지 가서 덜컥 겁이 나는 거라

그때 돌아올 힘으로 내처 강을 건넜어야 했다

한 번은 반을 지나쳐버렸고

한 번은 돌아와

겁 많은 내 생은 그대로 멈추어버렸다

숲으로 가는 길

이제 기어이 발길은 다시 반에 다다랐으니

반은 절벽인가 바람인가 당신인가

 

 

 

 

 

 

2.jpg

 

하재연, 0도의 밤




거의 도착한 그곳에

나는 와 있지 않았다


구부러진 시간의 반대편에서

누군가 한 번 더 사랑을 경험하고 있었다


타인처럼

잠든 후처럼

 

 

 

 

 

 

3.jpg

 

이수명, 새를 전개하다




한 마리의 새 뒤에 수백 마리의 새들이 있다

수백 마리의 새들을 뚫고 나는 나아간다

그들을 침범하지 않는다

새들이 들끓고 있다


나를 옮긴다

돌을 옮긴다

새들이 돌 속으로 들어가고 돌을 빠져나간다

새의 반대 방향으로 돌을 옮긴다

새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4.jpg

 

박명보, 방황하는 호수




타클라마칸 사막에는 떠도는 호수가 있었다지

천년도 훨씬 지나서야 제자리로 돌아오는 그리움의 주기


너무 많아 아무것도 아닌

잉여의 집합, 그 체적의 무게가

물의 길을 바꾸고

사막에 우물을 만든다지


발화되지 못한 슬픔이 출구 없는 쪽으로 몸을 밀 때

한 뼘 한 뼘 도착한 곳은

기어이 피하고 싶던 생의 저층부


상처를 가진다는 건 우물 하나 갖는 일

베이고 스친 흉터자국 늘어갈수록

우물의 깊이가 더하고

눈매 깊어지는 일


그리하여 오늘

나를 치고 가는 말도, 등 돌리는 사람도

내 이기(利己)의 변방에서

흉벽의 마른 흙들 우수수 긁어내는 일임을

버석거리는 어깨 맞대며

낮은 곳으로 함께 흐르는 일임을


길을 버리고서야 우물이 된

사막의 순례자 로프노르

이제 다시 우물을 버리고

지구에 불시착한 영혼들, 그 마른 꿈을 적시며

천년 밖의 시간을 걸어 나온다

 

 

 

 

 

 

5.jpg

 

고영, 달걀




조금 더 착한 새가 되기 위해서 스스로 창을 닫았다

어둠을 뒤집어 쓴 채 생애라는 낯선 말을 되새김질하며 살았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집은 조금씩 좁아졌다


강해지기 위해 뭉쳐져야 했다

물속에 가라앉은 태양이 다시 떠오를 때까지

있는 힘껏 외로움을 참아야 했다

간혹 누군가 창을 두드릴 때마다 등이 가려웠지만


방문(房門)을 연다고 다 방문(訪問)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위로가 되지 못하는 머리가 아팠다


똑바로 누워 다리를 뻗었다

사방이 열려 있었으나 나갈 마음은 없었다

조금 더 착한 새가 되기 위해서 나는 아직 더 잠겨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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