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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울음은 주름살 사이에 고여도 깊다
게시물ID : lovestory_9364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5
조회수 : 86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2/10/03 22:56:33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문태준, 아침 항구에서




바다가 아침에 내게 갈치 상자를 건네주었네

해풍에 그을린 어부들의 굵은 팔뚝으로

미로를 헤엄치는 외롭고 긴 영혼을

빛의 날카로운 이빨을

한 번도 건너지 못한 멀고 먼 곳을

깊은 풍랑을

갈치 상자만한 은빛 가슴을

푸른 바다가 검은 내게 배를 대고서

 

 

 

 

 

 

2.jpg

 

김소연, 꿀벌들의 잘난 척




꽃을 발견했을 때

꿀벌은 하루 종일 방황하던 바로 그 날개로

오로지 춤을 추기 시작했다


꽃의 아름다움에

탄복해서가 아니라 꿀이 여기 있다고

소리치기 위해서

오로지 춤의

박자와 동작을

방향과 거리와 맛을

알리는 데에 썼다


꽃이 꽃 한 송이가 아니라 오로지

밥 한 공기로 보였으므로 꽃이 아름다운 색깔을

지니게 된 진짜 이유를

잊지 않고 오로지

살았으므로

 

 

 

 

 

 

3.jpg

 

이승희, 화분




늙은 토마토는 자라는 것을 멈추고

좀처럼 늙지 않았다


나 이제 늙어서 더 늙을 게 없으니

어쩌면 좋으냐

사각의 흰 스치로폼이 거품을 물고 늘어지는 시간입니다

어두워지길 기다려 뱀처럼 고개를 쳐든 버섯들

그네 타는 아이의 흰 발목처럼

귀두를 쑤욱 내밀며

토마토의 발밑에 제 뿌리를 박아 넣고

집 한 채 짓습니다

고요조차 몸 둘 바를 몰라 비린내를 풍기는

비밀스런 동거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화분은 고요했습니다

아침이면 버섯은 실처럼 가늘어져

흔들리는 이빨을 매달고 사라졌습니다

내 생은 자꾸만 제목이 바뀌는 책

제목 없이 시작되는 영화 같습니다

 

 

 

 

 

 

4.jpg

 

이채영, 사막의 나팔꽃




줄기도 잎도 없이 곧바로 땅에서 피워 올린다

찢어질 듯 부드러운 입술로 편곡한 악몽을 모래산이 무너지도록 질러대고 있다

모래산의 높이를 알지 못한 채 다투어 피는 용기가 모래로 쏟아지는 귀가 있다

잔향이 짧아서 더욱 또렷한 조화

집요하게 두근거려 혁명을 꽃처럼 펼쳐놓고 시시각각 관찰한다

꽃잎을 뚫고 들어온 태양의 죄질은 가볍다 넘치는 소리에 뜨고 질 뿐

태양 아니고는 무엇도 그 소리에 시선이 부서지지 않는다

 

 

 

 

 

 

5.jpg

 

이성목, 그 저녁의 흐느낌처럼




어둠에 등을 대고 부음을 듣는다

목덜미를 스쳐 어깨를 넘어가는

울음은 주름살 사이에 고여도 깊다

그렇게 떠날 것은 무엇인가

기별을 꽃처럼 전할 것은 무엇인가

맺혔다가 풀리고

풀려서 수런거리는 강물이

한 몸을 받아 철렁 내려앉은 봄날

낮고 아득한 흔들림에 귀 기울이는데

꽃잎 한 장 이마를 짚는다

그 찬 손에 화들짝 깨어나면

얼굴 가득 번지는 연꽃

붉게 피었다 져도 나에게는

아직 오지 않은 사람이 있는 듯도 하건만

사는 일이 이렇게

어둑해 질 것은 또 무엇인가

당신에게 살을 섞어도 모를

나는 누구냐고 자꾸 되물으며 여자가

아이를 지우고 돌아온

그 저녁의 흐느낌처럼

아파서 손 댈 수도 없는

멍이 배에 가득 번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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