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없는 사람의 사냥
당신은 사냥감이 입이 막힌 채로 끙끙거리는 것을 보며, 마치 원시인들이 소리치는 모습 같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입술과 혀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방법을 모르던 사람의 곁에는, 아무도 혀를 움직여서 소리를 다스리지 못하던 시절의 사람의 곁에는 누군가가 있었을까요? 눈앞에 있는 사냥감처럼 그저 홀로 떠돌아다니는 한 마리의 짐승에 불과했을까요? 과연 그것을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었을까요? 음... 다시 생각해보니 앵무새는 혀를 사용해서 사람의 말을 흉내 냅니다. 정말로 사람은 모음을 찾은 후에 자음을 찾게 되었을까요? 그건 사람의 생각이 만들어낸 원숭이의 닮은꼴에 지나지 않은 것은 아닐까요? 원시시대의 사람보다 우월함을 느끼려는 상상의 결과가 아닐까요? 눈앞의 사냥감보다 뛰어난 당신을 느끼려고 사냥감을 묶고 입을 막아둔 것처럼요.
당신은 단지 물리지 않기 위해 사냥감의 입을 막아두었던 천이, 어쩐지 당신의 우쭐한 모습인 것만 같아서 천을 풀어주기로 합니다. 천을 풀어주니 듣기 싫은 소리가 들립니다. 당신은 다시 사냥감의 입을 막아버립니다. 이 사냥감은 미래를 생각하고 있었을까요? 이것도 꿈이라는 것을 꿀까요? 그러다 당신은 꿈이라는 단어가 상당히 이질적으로 들린다는 것을 느낍니다. 당신이 꾼 꿈을 가만히 떠올려봅니다. 애써 기억해보지만 사실 당신은 꿈을 꿔본 적이 없습니다. 꿈을 꾸고도 잊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당신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꿈은 없습니다. 당신도 사냥감도 꿈을 꾼다면, 당신은 사냥감의 마음에 공감해서 그것을 풀어주게 될까요?
당신은 꿈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것으로도 꿈을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꿈을 꾼 사람이 기억하는 것으로, 그리고 그 기억한다는 목소리들이 모인 것으로 꿈이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당신은 꿈을 기억하지 못하기에, 믿을 수 없습니다. 설사 당신이 기억한다고 해도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당신의 기억은 믿을 만합니까? 당신의 기억에 대한 믿음은 어떻게 증명할 수 있습니까? 결국 강렬한 쾌락의 기억만이 몸 깊숙이 남아, 그것이 실재했었다는 것을 말해주지 않습니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처럼. 왜 꿈에서 먹은 음식은 강렬한 쾌락을 남기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꿈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치 지나온 세월의 대부분처럼. 지금 당신이 살아있다는 증거는, 사냥감이 줄 수 있는 쾌감을 기대하는 마음이 당신 안에 있다는 것뿐입니다. 또한, 살아있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이 순간을 위해 살아왔고, 또 다른 이 순간을 위해 살아가겠지요.
당신은 이제 즐거움을 위해 사냥감의 입을 막은 것을 풀어줍니다. 풀어주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동안 지하의 음습한 공기가 악취와 함께 코안으로 들어오지만, 오히려 향기롭습니다. 풀어준 당신은 가만히 사냥감의 눈을 쳐다봅니다.
“살려주세요.”
그것이 마치 살려달라는 말을 하는 것처럼 느낍니다. 하지만 곧 살려달라는 말을 했을 리가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런 기억은 꿈과 마찬가지로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당신에게 존재하는 것은 쾌락뿐입니다. 당신은 사냥감의 옷을 벗깁니다. 아니, 가죽을 벗깁니다. 옷인지 가죽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제 즐거운 시간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