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게도 가사를 모두 외워버렸지만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는 외국노래가 낯선 존재의 출현으로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점차 잠식해져가기 시작한다.
딱딱딱딱....
나는 내가 손가락으로 장판을 신경질적으로 두드리고있던 것을 깨달았다.
다시 침을 한모금 삼킨고, 무릎에 힘을주고 그 다음엔 허리에 힘을주고.. 의식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바라본다.
나는 방문을 열고 나가려다, 책상위에 놓인 핸드폰과, 망치를 집어들고 밖으로 나간다.
일단 문을여고 나니 마치 꽁지에 불이붙은 새마냥, 계단을 삽시간에 내려온다. 왜 가져왔는지 모를, 작동되지 않는 핸드폰을 소중히 바지주머니에 넣다가 그만 망치를 바닥에 떨어뜨려버렸지만, 걸음을 멈추진 않는다.
기둥만 남은, 유릿조각과 흉물스런 건물 구석 구석을 한참이나 찾다가. 문득 목소리를 사용해보자는 단순하지만 기발하기까지한 방법이 떠올랐다. 나는 몇년동안 누군가를 불러본 적이 없었으니까...
"저... 저기요! 혹시... 거, 거기 누구 없습니까! 아니, 있습니까!"
무척이나 어색하고, 외국어를 발음하는 듯 답답하기 짝이없었다.
걸음을 걸을때마다 깨어진 쇼윈도의 유릿조각이 우지끈하고 텅 빈 콘크리트더미를 구석구석 울려댔지만, 이내, 바람소리에 묻혀 사라진다.
"거기 누구 없습니까! "
"정말 없습니까!"
몇차래 소리를 높여 외쳐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왜 핸드폰을 가져왔는가? 문득 주머니속으로 손을 넣어 핸드폰 모서리를 만지작 거리다. 고개를 들고 내려왔던 계단을 타기 시작한다. 계단을 하나 하나 오를 때마다. '역시나 잘 못 본거였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일부러 천천히, 그리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계단을 올른다.
"열..." '신이있다면 제발 누군가를 만나게 해주세요'
"열 하나..." '아 제발. 제발좀 누군가를 만나게 해주세요. 이러다 미칠 것 같습니다'
"열 둘..." '그래도 제가 헛 것을 본건 아니었죠?'
"열 셋..." '아... 아닌가...'
...
계단 하나 하나를 오를 때 마다 뭔가 묘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서른 하나'라고 나지막히 말했을 무렵, 익숙한, 너무나 익숙한 내 옥탑방이 눈에 들어온다. 옥탑방 뒤의 배경은 떠오르는 해인지, 지는 해인지가 찬란한 황금빛으로 잿빛의 도시무덤을 비추고있다.
방문을 열고 한 걸음을 내닫을 무렵. 절망감이 쇄도하는 한 편 뒷통수에 모든 신경이 곤두섰지만 바람만이 머리칼을 쓸어내렸고. 나는 한 걸음을 마저 딛고 방문을 닫는다.
똑...딱...똑...딱...
방안의 시계는 밖에서 사고를 치고온 아들을 맞이하듯, 여전히 그곳에서 차갑게 제 할일을 해내고 있다.
먼지가 그대로인 바지와 유릿조각이 박혀있을 신발을 벗지도 않고, 그대로 바닥에 누워 틀어놓았던 음악소리를 듣는다.
문 밖에는 곧 몰아칠 모래폭풍과 암담함이 그대로였고 나 또한 그대로 눈을 감고 방안의 빛이 밝음에서 어둠으로 바뀌고, 어둠에서 밝음으로 바뀔 때까지 몸을 뒤척이며 누워있었다.
이따금 밖에서 따닥 따닥하는 소리가났지만, 그것이 노크소리일 리는 절대 없다. 굵은 모래알갱이가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그것 뿐이었다.
"시바..."
나지막이 입에서 탄식이 나온다.
컴포넌트의 배터리가 다 되어가는지, 아니면 이제야 잠에 들고있는 것인지 노랫소리가 희미해져간다. 한 때는 파리의 저녁밤이 부럽지 않을, 도시의 낭만적인 소음이 가득하던 내 옥탑방이었는데... 누군가라도 너무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