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화국어' 수업시간에 전쟁소설을 가르치다가, 윤석열 대통령의 북한 선제타격론을 비판했던 경기도의 한 자율형사립고(자사고) 교사에 대해 경찰이 수사를 개시했다. 교사의 수업활동에 대해 수사기관이 개입한 것은 근래 들어 이례적인 일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관련 기사: [단독] '윤석열 발언' 비판 교사, 중징계 요구 논란 http://omn.kr/20emh ).
26일 오후 2시, 경기 안산상록경찰서는 안산지역 A자사고 B교사를 소환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이 수사를 벌이는 죄명은 '공직선거법 위반'이다. 대통령 발언 비판이 선거법 위반?
국민의힘은 지난 5월 16일 언론 공지를 통해 "안산시 소재 고교 국어교사가 선거운동 금지의무를 준수하지 않고, 고3 학생들에게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을 비방·음해한 혐의로 고발했다"고 밝혔었다.
<오마이뉴스>가 살펴본 고발장에 따르면 고발인은 "교육의 정치 중립성은 헌법(제31조4항)과 법률에 의해 보장되므로 사립학교 교원은 정치 중립의무를 준수하여야 하고 선거운동을 해서는 안 된다"면서 "그런데도 B교사는 5월 17일 윤 대통령이 '나치'로 묘사된 PPT 화면을 사용하면서 대통령의 북한 미사일 선제타격 발언을 비난했다",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언급한 '반지성'을 인용해 윤 대통령 등을 반지성주의자들이라고 언급하거나 대통령 등이 '빨갱이 선동'을 일으키고 있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로써 B교사는 6월 1일 지방선거와 관련하여 특정 정당에 대해 지지 또는 반대의 의사를 표명함으로써 선거운동을 했다"고 덧붙였다.
안산상록경찰서가 이첩 받은 고발장이 국민의힘이 수사기관에 접수한 고발장과 일치하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해당 고발장 내용에 대해 법조인들과 B교사는 "법률해석도 틀리고, 당시 B교사의 발언 내용도 확대·왜곡돼 있다"고 반박했다.
고발인이 '정치중립 위반' 근거로 든 헌법 제31조4항은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교육문제를 전문으로 다뤄온 박은선 변호사는 "이 헌법 조항은 교원의 정치적 중립의무를 규정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교육의 정치중립성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매카시 비판인데..." 발언 내용도 과장돼
고발인이 주장한 B교사의 발언 내용도 실제와 차이가 있다. 고발인은 "B교사가 '대통령 등이 빨갱이 선동을 일으키고 있다'고 발언했다"고 주장했지만, 대통령이 아닌 미국 상원의원을 비판한 것이었다.
<오마이뉴스>가 당시 수업 녹취록을 직접 살펴본 결과다. 이 녹취록은 경기도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했던 학생이 녹음한 것이다. B교사의 해당 발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반지성이 뭔지 알아요? 매카시즘이라는 열풍이 불었어요. 미국사회에. 매카시라는 상원의원인가 이 사람이 그야말로 빨갱이 사냥 선풍을 일으켰어요."
또한 고발인은 "지방선거와 관련하여 특정 정당에 대해 반대의 의사를 표명함으로써 선거운동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B교사는 당시 수업에서 특정 정당을 거론하지도, 비판하지도 않은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확인됐다. 다만 B교사는 윤 대통령의 발언과 자녀를 군대에 보내지 않은 기득권층에 대해서 비판 목소리를 냈다.
"윤 대통령을 '나치'로 묘사했다"는 고발인 주장에 대해 B교사는 <오마이뉴스>에 "한 언론사 만평을 PPT 수업자료 한 구석에 실었던 것"이라면서 "실제 수업에서는 이 만평에 대해 언급하지도 않았고, '나치'란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B교사는 "평화의 중요함을 가르치기 위한 해당 수업자료는 이미 지난 4월 중순경에 모두 만들었고 EBS 교재에 나온 박완서의 <겨울나들이>를 가르치는 시간에 맞춰 뒤늦게 활용한 것이며, 선거에 영향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앞서 경기도교육청 산하 안산교육지원청은 지난 6월 20일 A고에 '성실 의무, 품위 유지의 의무 위반'을 들어 B교사에 대해 '중징계(정직 1월)'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A고는 지난 7월 26일 교원징계위를 열었고, 지난 8월 18일 '감봉 1개월'이 적힌 징계통보서를 B교사에게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