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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결혼생활 이야기 2
게시물ID : wedlock_1442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스카라라
추천 : 71
조회수 : 9675회
댓글수 : 50개
등록시간 : 2022/07/29 08:42:18
그날은 평일이었고 다음날도 평일이었다.

남편이 전화와서 오늘 술한잔 할건데

집에 안들어가도 되냐고 묻는 것이다.

?? 무슨 소리하는 거예요 당연히 안되지 꼭 들어오세요

그러자 남편은 조금 투덜거리며 알겟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새벽 3시 반이 넘어 귀가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아기 병원진료가 있어서 오전 반차를 냈었고

부산하게 병원갈 준비를 하는데

남편은 느지막히 9시쯤 깨어나서 물한잔 마시는 것이었다

? 오늘 회사 안가요?

아니 가야지

이렇게 늦게 출근해도 괜찮아요?

괜찮아

그냥 출근하지 말고 집에 있어요~

왜?

어제 술마셔서 피곤하잖아요ㅋ

남편은 대답이 없었고

나는 아기데리고 병원 갔다가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점심먹고 출근하기 위해 집에 들렀다

남편은 집에 없었다. 그래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출근했어요? 집에 없네

어 출근했지 왜

아니 혹시 출근 안했으면 같이 점심 먹으려고 했지

어 출근해야지 회사야

알겠어요

전화를 끊고 혼자서 밥 차려먹고 출근했다

남편은 출근도 늦게 하더니 퇴근도 일찍 했는지

오늘은 아기를 본인이 픽업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덕분에 모처럼 여유로운 퇴근길을 즐기고

집에 도착하니 남편이 아기 목욕도 싹

저녁밥도 싹! 왠일이지? 너무 예뻐 뽀뽀를 해주고

씻고 나는 아기와 놀아주고 남편은 소파에 앉아

노트북으로 회사업무메일을 훑어보고 있었는데

잠깐 아주 잠깐 주방으로 가기 위해 몸을 돌리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눈길이 간 노트북 화면에서

나는 보았던 것이다

"내일은 회사 창립기념일이자 휴무입니다"

라는 한줄을.

내일은회사창립기념일이자휴무입니다

내일은회사창립기념일이자휴무입니다

내일은회사창립기념일이자휴무입니다......

순간 번개같이 내 머릿속에 퍼즐이 맞추어지고

아하 그랬구나 그랬던 거였구나.

하지만 보다 정확한 증거가 필요했다.

남편이 전날 술을 진탕 마시고 왔으며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한 바로 오늘이

남편 회사의 창립기념일이자 휴무라는 사실을 입증할

증거.

다음날 회사에 출근해서 일단 남편회사 홈페이지를 뒤져봤다.

창립연월까지밖에 나와있지 않다.

진지하게 고민했다. 회사전화로 남편회사에 전화를 걸어볼까?

(혹시 어제가 창립기념일 휴무였나요?)

만에 하나 전화 받은 사람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다시 걸기라도 하면 뽀록난다. (우리회사는 네 ㅇㅇ업체입니다 하고 전화를 받는 회사다)

핸드폰으로 걸어볼까?

안된다. 내 폰번호 뒷자리는 남편번호와 동일하다.

다른사람 폰을 빌려볼까?

설명하기 귀찮아서 안된다.

고민끝에 친구에게 카톡을 했다.

야 내가 되게 별로인 부탁을 하나 할껀데

아 뭐야 듣기도 전에 별로야 하지마ㅋㅋㅋㅋ

ㅇㅇㅇ-ㅇㅇㅇㅇ 이번호로 전화걸어서 혹시 어제가 창립기념일 휴무였나요? 물어봐줄래?

ㅋㅋㅋㅋㅋㅋㅋㅋ뭐야 미친거 아냐ㅋㅋㅋㅋ

친구는 ㅋㅋㅋ를 500개 정도 보낸 후 사정을 물어보더니

남편회사 페북에서 정확한 창립기념일 날짜를 찾아 보내주었다!

오오~~~~

어제가 맞았다.

이로써 남편이 회사 휴무인데 뻥치고 출근한 척 했다는 정황이 거의 확실시되었다.

친구는 진지하게 조언했다.

화내지 말고 조근조근 니마음을 설명해봐.

회사 휴무라서 혼자 조용히 쉬고 싶다고 하면 내가 이해 못해줄 거 같았냐.

휴무 자체를 숨겼다는게 서운하다. 부부사이에 이런 작은 일도 숨겨서야 어떻게 신뢰가 유지되겠느냐.

이렇게 말해보라고 했다.

하지만 친구는 전제부터 틀렸다.

나는 화가 나지 않았다. 아~그랬구나!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정황증거를 들이밀며 남편에게 해명을 요구할 생각도 없었다.

그냥 궁금했을 뿐이다.

궁금증을 해소한 후 나는 평소대로 회사업무를 보고

평소대로 퇴근하고 평소대로 아이를 돌보고

평소대로 남편에게 저녁밥을 차려주고 소소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단지 내 마음의 의구심이 커져갈 뿐이었다.

나는 정말 남편을 사랑하는 것인가.

아니면 사랑하지 않는 것인가.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어느날 아주 사소한 계기로

앗 하고 나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평소처럼 남편이 나에게 무언가 질문을 했고 나는 무심하게 대답을 했고

평소처럼 남편은 나에게 설교하듯 잔소리를 했다.

너는 다른사람들한테 너무 관심이 없어.

아!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사랑하는 건 남편을 사랑하는 나였구나.

남편을 사랑하고 다정한 아내의 역할에 충실하고

사이좋은 부부로 지내는 나 자신을 사랑한 거였구나.

남편을 사랑하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남편을 사랑하고 가정에 충실한 내역할 내모습을 사랑한 건 진심이었구나.

나는 어쩐지 즐거운 마음이 되어 남편에게 질문했다.

하지만 내가 다른사람 일에 관심이 없어서 당신은 나하고 사는거 편하지 않아요?

남편은 잠시 가만히 있더니 그렇지... 하고 대답했다.

여기까지 소소한 나의 결혼생활 이야기.

나는 더이상 4번째를 기다리지도 않는다.

어차피 지금까지처럼 그냥 그렇게 지나가버릴 걸 아니까.

결혼생활 6년 차

나는 남편의 월급날도 모른다.

월급이 정확히 얼마인지도 모른다. (회사 이름이랑 직급은 안다)

남편이 연차쓰고 쉬는것도 한번도 못봤다. (가족여행 갈때 휴가낸 적은 있다)

남편이 그 회사에 다닌 3년동안

남편 회사가 창립기념일에 휴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아마 남편은 내년에도 말을 안하겠지.

아이가 여름방학 중이라 나도 회사에 휴가를 내고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남편은 계속 출근한다.

휴가 시즌이지만 여름휴가도 없다고 한다.

오늘 아침 출근하는 남편의 아침밥을 차려주면서

그래도 아이 여름방학인데 평일 하루 휴가내고 다같이 놀러가지 않겠어요?

물어봤다.

장모님과 다녀오라고 한다.

다들 나와서 일하는데 어떻게 자기 혼자 쉬겠냐고 한숨을 쉰다.

그래서 나는 웃으며 말했다.

당신 회사 사장님한테 전화 한통 해야겠네~ (사장님이 친한 형)

아니~ 이럴려고 우리 신랑 데려갔어요?

여름휴가 하루도 안주고 일시켜먹으려고? 악덕 사장이네~

그럼 당신 회사 사장님이 막 당황하면서 이렇게 말하는거야.

무슨 소리예요 제수씨. 우리 회사 저번주부터 휴가였는데.

내가 말을 마치고 혼자 낄낄대며 웃자

남편은 묵묵히 밥을 먹고 출근했다.

남편을 배웅하고 나는 아기 깨어나길 기다리며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고 있다.

오늘은 아기데리고 근처 공원 물놀이터 가서 같이 물총놀이하며 재미있게 놀아야지.



출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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