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 [오후 10:31] <<토인비 "역사의 연구 2권" 984p>> 인간의 자유는 신 자체가 사랑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부여된 것으로, 인간은 스스로 마음으로 부터 신을 사랑하며, 신의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서 자기를 신에게 맡김으로써 신의 의지를 자기의 의지로 삼을 때 비로소 신이 내려주신 이 신성한 선물을 죽음과 악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선의를 자유로이 선택하는 데 사용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연] [오후 10:32] <<토인비 "역사의 연구 2권" 984p>> "역사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유로운 인간이 거기에 귀를 기울여 응답해주어야 할 호소이며 소명이고 섭리, 즉 신과 인간 사이에 서로 주고받는 작용이다."
[심연] [오후 10:34] <<토인비 "역사의 연구 2권" 984p>> 사랑의 법칙과 잠재 의식적인 인간성의 법칙이 모두 함께 인간사를 지배하고 있음은 틀림없는 일이지만, 이 둘은 단순히 다를 뿐만 아니라 서로 모순되는 것이며,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잠재 의식적 정신의 법칙은 신이 자유 상태에서 자신과 함께 움직이도록 불러낸 영혼을 노예 상태로 가두었기 때문이다.
[심연] [오후 10:35] 깨닫지 못한 모든 존재는 미세망상의 지배를 받죠.
[유전] [오후 10:36] 사랑의 법칙은 진리이고 인간성의 법칙은 죄 많은 자들의 무명 업식이기 때문에 석가모니가 중생들의 무아를 주장한 거죠.
[유전] [오후 10:37] 문제는 이러한 사랑의 진리 법칙을 인간들은 대부분 모른다는 거죠.
[유전] [오후 10:38] 모든 우주를 하나로 관통하는 진리 법칙. 생명존중, 대자대비심, 사랑 .....알고보면 이 셋도 하나죠.
[심연] [오후 10:39] 절대의지와 자유의지가 동시에 존재하지만 인간의 자유의지는 미세망상에 항상 휘둘립니다. 미세망상은 인식하기도 어렵죠. 이 두 의지가 항상 충돌 해온게 인류 역사이며, 부모님이 아이에게 무조건 사탕을 주지 않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주사를 맞게 하듯이 진리의 강제집행도 마찬가지죠. 사랑하는 자식이 더 큰 고통을 피하도록 하기 위해 주사를 맞히는 것과 같이 모든 것은 사랑과 자비에 따라 운영되는 역사죠.
[심연] [오후 10:49] <<토인비 "역사의 연구 2권" 986p>> 신의 사랑이 인간의 자유의 원천이며, 창조 행위를 일으키는 자유가 그와 동시에 죄가 들어올 여지를 열어두는 것이다. 모든 도전은 신으로부터의 부름이라고도 볼 수 있으며, 또 악마의 유혹이라고도 볼 수 있다.
[유전] [오후 10:49] 토인비 대단해요.
[심연] [오후 10:51] <<토인비 "역사의 연구 2권" 1039p>> 사람들은 왜 역사를 연구하는가? 필자 개인의 대답을 말한다면, 역사가는 다행히도 각자의 인생에서 저마다 목표를 지닌 다른 모든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라'(사도행전 17:27)이렇게 호소하는 하느님의 부름 속에서 나의 사명을 발견한다.
[유전] [오후 10:55] 모든 진리의 아버지, 오로지 선한 모든 인류의 아버지, 그 궁극적인 아버지의 사랑을 발견하는 일이죠.
[심연] [오후 10:55] 역사(歷史)를 통해 진리의 역사하심(役事)을 보아야 하며, 이를 통해 혼란스러운 세상속에서 길(道)을 보아야 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이것이 안되기 때문에 미래가 없습니다.
[심연] [오후 10:56] 역사를 통해 진리의 역사하심을 본거죠.
[유전] [오후 10:56] 그런거죠.
[유전] [오후 11:05] 예수가 말한 아버지는 구약에 등장하는 신이 아닙니다.
[유전] [오후 11:05] 예수 = 미륵보살
[심연] [오후 11:06] 서양 기독교 역사에서도 구약신과 신약의 예수의 성품이 극명하게 다른 탓에 둘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대한 고민이 많았죠.
[유전] [오후 11:07] (가섭불) "몸과 마음, 요술에서 났으니" (화엄경 1081쪽) "비유하면 교묘한 요술쟁이가 갖가지 환상을 보이지만"
(금강경) "여몽환포영 - 현상은 꿈, 환상, 거품, 그림자와 같다."
[심연] [오후 11:41] 인류의 역사는 외부에서 걸어오는 도전에 대해 응전해온 역사죠. 이 과정에서 정신적인 성숙이 일어나며, 자유의지가 확장되어온 역사입니다. 그런 탓에 문명이든 인간 개개인이든 어떤 특정한 것에 대한 집착 즉 우상숭배가 일어나면 자유의지적 선택권에 제약이 걸리고 결국 전쟁으로 망하거나, 내부 분열로 망하게 되죠.
[심연] [오후 11:41] 외부에서 걸어온 도전에 성공적으로 응전하면 내부적인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을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를 통해 증명하였고, 결국 내부적 고뇌에 어떻게 응전하느냐가 중요하게 되는데, 이는 자유의지로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핵심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토인비가 "자유는 사랑 자체인 신에 의해 부여된 것"이라 하듯이, 진리는 사랑과 자비이며 이를 통해서만 참된 자유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벗어나 자유의지를 휘두른다면 이는 악마가 걸어온 도전에 패배한 것이 되는 겁니다.
[심연] [오후 11:42]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인간의 자유의지는 진보하는 것이며, 여기에는 정신적 성숙과 양심의 확장이 동반됩니다. 이렇게 인류의 역사는 자유의지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며, 불교에서 모두가 부처가 될 것이라는 가르침을 향해 나아가는 중입니다. 기독교인이든 불교인이든 보이지 않는 진리의 작용이 있음을 인식해야 하며, 이러한 진리가 모든 것에 매 순간 작용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인류의 역사부터 개인의 순간까지 진리가 역사하고 있음을 완전히 꿰뚫어 보게 되면 깨달았다고 합니다.
[심연] [오후 11:42] 소승과 공사상(空)으로는 알 수 없는 경계이며 설명도 안되며 이해도 안되는 경계입니다. 대승, 보살승은 가야 이해되는 경계입니다.
[심연] [오후 11:44] <승만경 中> 세존이시여, 만일 여래장이 없으면 괴로움을 싫어하고 열반을 좋게 여겨 구할 수 없나니, 그 까닭을 말하면, 지금 있는 6식(識)과 이 알음알이 지혜[心法智]와의 일곱 가지 법은 잠깐도 머물러 있지 못하므로 모든 괴로움을 심지 못하며, 괴로움을 싫어하고 열반을 좋게 여겨 구할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장은 전제(前際)가 없어서 일어나지 아니하고 없어지지 아니하는 법이므로 모든 괴로움을 심으며, 괴로움을 싫어하고 열반을 좋게 여겨 구합니다.
[심연] [오후 11:47] <능엄경 中> 너는 원래 여래장(如來藏) 안에 성품이 색인 진실한 공[性色眞空]과 성품이 공인 진실한 색[性空眞色]이 본래 그대로 청정하여 법계에 두루 원만한 가운데, 중생의 마음을 따라 각자의 아는 능력[知量]에 응하는 줄을 모르고 있느니라.
[심연] [오후 11:49] 불교에서 얘기하는 도전과 응전이죠. 고통의 과정까지도 전부 여래장에따라 안배되는 중이죠.